시줏돈 투명하게 밝히니 佛心도 환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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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5.10.20 조회4,622회 댓글0건본문
"물질적 풍요는 영원히 삶의 대답 될수없어"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시님~. 오늘 삼사순례(三寺巡禮) 끝나믄 내일은 또 서울 올라가시지예?” “아니요, 저 이제 완전히 내려왔다니까요.” 지난 24일 오후 경북 구미시 도리사 앞마당. 거동도 불편한 한 여신도와 스님의 대화가 오갔다. 이 자리는 경남 함안의 작은 절 봉불사(奉佛寺) 여신도 40여명이 주지 지정(至淨) 스님과 함께 음력 윤달에 각기 다른 지역의 세 사찰을 참배하는 ‘삼사순례’의 마지막 코스였다. 일행은 이날 새벽 봉불사를 출발해 관광버스편으로 경북 의성의 고운사, 예천의 용문사를 거쳐 마지막 일정으로 도리사에 도착했다. 노 보살의 순진한 물음에 “이제는 서울 안 간다”고 답하는 지정 스님의 얼굴은 더 없이 편안했다. 지정 스님은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신도 1만명에 이르는 서울 석촌동 불광사의 주지였다. 그는 10년 임기 중 5년을 남겨둔 채 14일 법회를 마지막으로 12년 전에 자신이 손수 짓고, 5년 전까지 머물렀던 경남 함안의 봉불사로 낙향했다. 얼핏 평범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낙향은 오늘, 우리 시대에 뚜렷한 울림을 주고 있다. 그는 지난해 말 불교 사찰로는 처음으로 자진해서 재정내역을 외부 회계사에 공개, 감사받고 그 결과를 신도들에게 공개했다. 불광사의 솔선수범은 올 초 신도 수 20여만명에 이르는 서울의 대표적 대형사찰인 능인선원까지 외부 회계감사를 받겠다고 자청하는 반향을 일으켰다. 또 조계종 총무원도 직할 사찰의 회계감사를 외부에 의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그의 결심이 우리 불교계에 사찰 재정 투명화라는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대사건을 벌여놓고 그는 홀연 5년 남은 주지 임기도 남겨두고 시골로 내려간 것. “오늘로 딱 열흘 됐고, 첫 외출입니다. 처음 사나흘은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살을 앓았는데, 이젠 달력, 시계 안 보고 그저 자연을 보면서 자유롭게 사는 생활이 좋습니다.” 그는 섭섭해 하는 신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서울을 떠난 데 대한 섭섭함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종교기관, 특히 사찰의 재정투명성 문제에 관해서는 입장이 뚜렷했다. “불광사를 창건하신 제 스승 광덕 스님이 5년 전 입적하신 후 맏상좌로서 불광사 주지를 맡았지만 오래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촌에서 중 생활하면서 늘 생각한 것이 ‘왜 우리 불교는 사회적으로 외면받고 있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결론은 신도들 시주를 받아 살면서 사회적인 봉사나 기여는 적고, 재정도 불투명하다는 점이었지요.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불광사 주지를 맡은 후 부처님 오신 날, 백중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지출 내역을 신도들에게 공개했다고 한다. 그렇게 4년여를 지내면서 ‘이제는 기틀이 잡혔다’는 느낌이 들어 불광사를 떠날 마음을 먹고, 아예 외부 회계감사를 자청했다. 추천된 회계사는 천주교 신자인 정명철씨였다. 스님은 “지금도 유치원, 출판사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도심 사찰로서 불광사의 앞으로 활동은 40~50대의 힘있고 똑똑한 ‘동생 스님’들께 맡기는 게 나이든(62세) 저의 도리”라고 덧붙였다. 아직 불광사 후임 주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자유롭다”고 했지만 서울과는 너무나 다른 환경이 아닌가. 봉불사의 신도는 100명이 채 안 되고, 대부분 농사짓는 지역 주민들이다. 또 지정 스님 외에 다른 스님도 없고, 식사 준비하는 공양주 보살밖에 없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스님은 “모든 것을 아껴야 하는 게 시골생활”이라며 “기름 보일러를 놓은 요사채도 지었지만 기름값 감당이 어려워 직접 산에서 나무를 해서 뗀다”고 했다. 절 바로 아래 농가를 매입해 텃밭에는 시금치, 상추, 유채나물 등을 심었다. 그는 “IMF와 최근의 경제불황으로 힘들어 하는 국민들이 많고, 종교에 의지하는 마음이 많은 것도 그동안의 풍요에 너무 길들여 있다가 그게 꺼져버렸기 때문”이라며 “결국 물질적 풍요는 인간의 삶에 영원한 답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봄 날씨 치고는 바람이 쌀쌀했던 이날, 점심 공양도 먼지 날리는 용문사 주차장 바닥에 앉아 각자 준비해 온 나물, 풋고추, 쑥국 등으로 떼웠지만 스님은 만면 가득 웃음을 지으며 “이젠 복잡한 서울 생활 대신 자유롭게 공부하며 살겠다”고 했다. (구미·예천=김한수기자hansu@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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