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홍 前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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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5.10.20 조회4,521회 댓글0건본문
지홍前주지 “쫓겨나듯 퇴진… 후회는 없지만 아쉬워” | ||
[경향신문 2004-06-09 19:08] | ||
그러나 더욱 지홍스님을 힘들게 하는 것은 이제 조계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여러가지 불사가 진행중인 이 순간에 별다른 이유없이 억울하게 쫓겨나듯 나가게 된 상황이었다. 지홍스님의 이런 억울한 상황은 이미 보도(경향신문 4월22일자 S6면)된 바 있다.
올초 대웅전이 바로 옆 역사문화기념관 공사로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한 점, 그리고 멸빈자 구제문제에서 반대를 했다는 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이유다.
8일 오후 2시에는 지홍스님도 속해 있는 조계종 종회의 한 종책모임인 ‘금강회’가 이번 사태에 대해 ‘법장 총무원장 스님의 독단적 종단운영과 파행적 인사의 시정을 요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 지홍스님의 조계사 주지 해임사건은 스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조계종단에 큰 파문을 일으킨 계기가 되어버렸다.
“어제 작성된 인수인계서를 보니까 지난 5년6개월이 그 서류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더군요. ‘내가 일을 많이 벌이긴 했구나’ 싶을 정도로 잘 기억나지도 않는 일들까지 하나하나 다 적혀 있었습니다. 그 일들을 했던 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정말 조계사 일에 발벗고 나서준 신도들과 종무원들, 그리고 여러 스님들에게 뭐라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님은 잠시 감회에 잠겨 말을 멈추었다.
“후회는 없지만 안타깝습니다. 보수가 진행중인 대웅전의 대들보는 올려놓고 가고 싶어서 연말까지만 있겠다고 했는데도 맘대로 안되네요. 그때까지가 정말 중요한 시기거든요. 꼭 아이 혼자 물가에 남겨놓고 떠나는 기분입니다.”
1999년 지홍스님이 주지로 부임했을 당시, 조계사는 전임주지가 12년간 전횡을 일삼으면서 1백억원대의 재산을 빼돌려 해외로 달아나고, 두차례의 종단사태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한 상황이었다. 담장은 허물어지고 신도들은 수심에 잠겼으며 분위기는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지홍스님은 우선 허물어진 담장을 일으켜 연꽃문양을 한 토담을 세우고 경내를 정비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수행프로그램과 법회를 만들고, 종무행정에 일반인을 대거 참여시켜 시스템화시켰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포교에도 나서고, 인사동 문화거리 지정과 발맞춰 조계사가 들어선 우정국로를 단장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제2의 조계사’로 불리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조계사의 숙원사업이었던 일주문 건립도 추진중이며, 무엇보다 안전성이 항상 문제가 되었지만 재원마련 때문에 섣불리 손대지 못한 대웅전 보수 불사를 시작했다.
“바로 총무원 턱밑에 있는 조계사의 주지라는 자리는 늘 정치바람을 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고산스님, 정대스님, 그리고 이번 법장스님까지 세분의 총무원장을 모셨어요. 고산스님은 10개월밖에 안계셨던 데다 저도 처음이라 서툴러서 적응하는 기간이었고, 정대스님은 몇가지 원칙만 세워주시고 모든 일을 믿고 맡기는 편이라 소신껏 일할 수 있었습니다. 법장스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 챙기는 분이시고요.”
지난 70년 부산 범어사로 출가한 지홍스님은 포교분야의 선두주자였던 스승 광덕스님 밑에서 포교에 원력을 세우고 서울 석촌동 불광사와 경기 광명시 금강정사 등에서 포교에 힘썼다.
“이 기회에 고장난 몸도 고치고 푹 쉬라는 부처님 뜻인 것 같습니다.”
지홍스님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병실에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당나라 선승 임제선사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서있는 곳이 모두 진리이다)’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고 있는 것 같았다.
〈이무경기자 lmk@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