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왼쪽부터 한암 스님, 운허 스님, 구산 스님, 광덕 스님, 석주 스님.
큰 발자취를 남겼거나 불자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던 스님들. 그 분들의 뜻을 받들어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계승사업을 계속하는 재가불자들의 모임이 있다. 한암 스님의 봉찬회, 운허 스님의 역경후원회, 구산 스님의 불일회, 광덕 스님의 보덕학회를 비롯해 현재 구순을 넘긴 석주 스님의 보문복지후원회 등이 바로 그것. 큰스님의 육신이 사라졌거나 혹은 늙어 활동하기 어렵더라도 그 원력만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인재양성-복지-역경 등 다양
상원사봉찬회는 지난 1940년대 한암(1876∼1951) 스님이 살아 계실 때 만들어진 모임으로 불자들의 신심을 키우고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취지로 발족했다. 그러나 봉찬회의 역할은 개인의 신심고취와 수행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궁핍할대로 궁핍한 절살림의 상당 부분을 봉찬회가 책임졌다. 특히 스님들의 집중적인 수행기간인 안거 때 등 수행을 위해 필요한 양식을 조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 등 한평생 후학양성에 힘쓰셨던 스님의 뜻을 받들어 수행자들을 도왔던 것이다. 한암 스님이 입적한 지 50여 년이 넘었지만 매년 음력 4월 1일부터 한달 동안 열리는 봉찬법회에는 아직도 10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역경후원회는 운허(1892∼1980) 스님이 1964년 역경원을 창립한 후 고려대장경을 한글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모임이다. 운허 스님과 인연 있는 불자들은 각자 개별적으로 역경사업을 돕다가 95년 7월 이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역경후원회를 발족했다. 이들 회원들은 운허 스님과 상좌 월운 스님의 원력이었던 역경사업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후원금이 지금까지 약 10억원. 한 권의 대장경을 번역하기 위해 2000만원 가량이 소요됐던 상황에서 후원회의 적극적인 지원은 역경사업에 있어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였다. 운허 스님을 오랫동안 모셨다는 안효범(74·정각심) 보살은 “살아생전 큰스님께서 역경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가졌었는지 잘 알고 있다”며 “그 분의 크나 큰 원력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후원회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큰스님 원력 잇는 게 참 報恩”
지난 69년 창립된 불일회도 송광사 구산(1909∼1983)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전 송광사 주지인 현호 스님이 은사 구산 스님의 선풍(禪風)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몰려든 수행납자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창립했다. 이후 신심 있는 불자들과 힘을 모아 조계총림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행·출판·장학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역경 및 세미나 지원, 스님 연구비 보조, 사찰문화연구원 지원, 수화책 발간, 청소년수련대회 운영비 지원 등 다양한 불사를 펼치고 있는 보덕학회는 불광사 광덕 스님의 보현행으로부터 비롯됐다. 지난 92년말 창립된 보덕학회는 보현행원으로 바라밀국토를 이루라고 간곡히 당부한 광덕 스님의 뜻을 받들어 10여 년이 넘게 포교사업을 착실히 진행해 오고 있는 것이다.
교계의 가장 큰 어른으로 한평생을 역경·포교·복지사업에 매진해왔던 칠보사 조실 석주(1909∼) 스님의 뜻을 이은 보문복지후원회가 지난해 12월 모임을 갖고 본격적인 지원사업에 들어갔다. 현재 18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후원회는 석주 스님의 만년에 특히 깊은 관심을 갖고 추진 중에 있는 노인복지 사업을 집중적으로 도울 계획이다.
석주 스님 상좌인 아산 보문사 주지 현보 스님은 “큰스님의 행적을 기리고 조명하는 것도 좋지만 그 분께서 하셨던 일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욱 뜻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2003-06-25/711호>
입력일 : 2003-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