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도심포교와 문서포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1974년 광덕스님의 불광회 창립과 월간<불광> 창간, 잠실 불광사가 불광의 5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점검하는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도심포교 전개과정과 성공요인을 살펴보고 광덕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겼습니다 박성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74년 9월 1일, 광덕스님은 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 그리고 생활화 등의 기치를 내걸고 도심전법활동 전개를 위해 ‘불광회’를 창립합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종로 대각사 한쪽 골방에서 전화기 한 대 없이 오직 원력으로 78쪽 짜리 조그마한 월간 불광을 출간하며 문서포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기도 위주의 법회에서 법문 위주의 법회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겁니다.
불광 창립 50주년을 맞아 잠실 불광사가 불광운동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점검하는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동명스님/불광사 주지
(우리 불광의 저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바로 그 저력은 큰스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된다는 그런 불광형제들의 굳건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믿음에 힘입어서 저도 과감하게 이번 학술행사를 진행하게 됐고요.)
‘광덕스님은 왜 불광운동을 시작하셨나’를 주제로 발표한 석길암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불교학부 교수는 월간 불광 창간에서 광덕스님의 원력을 추적해봤습니다.
석길암/동국대학교 와이즈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월간 불광 창간하고 나면 사실은 입적하실 때까지 어쩔 수 없이 글을 못 쓰는 경우 빼고 밤새 글을 쓰고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당신 힘을 떨어져도 할 말은 끊임없이 새겨야 하는 전해야 할 말은 끊임없이 새겨야 하는 제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전해야 하는 말 전법이죠.)
이어 깨달음 자체가 아닌 깨달음을 통한 실천을 중시하는 대승보살도를 통한 창조와 개혁이었을 것이라며 이에 대한 절실한 참회와 서원이 불광 운동의 시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조기룡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도심포교의 역사 속에서 불광의 운동’을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조 교수는 1970년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시기에 도심포교에 있어 불광은 간과할 수 없는 사례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불교 종단 차원의 계획적 포교보다는 소수의 출가자와 재가자 등 일부가 개별적 원력으로 도심포교를 개척했는데, 대표적으로 안양 한마음선원과 부천 석왕사 등이 그렇다고 주장했습니다.
조 교수는 도심포교 성공 사례들에서 신도 교육, 법회의 현대화, 신도 조직화, 미디어 포교, 사회복지 등을 공통적 동력이라고 봤습니다.
조기룡 /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신도를 조직화하는 것 교회 같은 경우 신도 조직화하는 게 잘 돼있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부분이 약했었는데 이런 것들을 도심대형사찰들은 잘해왔다는 말이죠. 네 번째는 미디어의 활용 미디어 포교라고 말씀드리고 다섯 번째는 사회복지활동...)
불광의 경우 신도 교육 측면에서 불광교육원, 법회 현대화 측면에서 불광법회, 미디어 포교 측면에서 월간 불광 등을 꼽아 잘 갖춰졌다고 하면서도 10년 가까이 운영한 구립송파노인요양센터의 위탁운영을 중단한 데 사회복지 측면의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이어 김상영 중앙승가대 명예교수가 ‘불광 50년, 한국 현대불교에 끼친 영향과 그 계승’을 주제로 발표와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불광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봤다면 다음달 19일 오후 2시 열릴 2차 학술세미나에서는 불광과 한국불교의 미래에 대해 토론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BTN뉴스 박성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