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 스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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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5.10.20 조회4,866회 댓글0건본문

- 바라밀 국토 구현 평생헌신 -
- 불광법회 발족 거사불교 주창 -
- 불교 대중화 현대화 이끈 선각자 -
◇광덕스님 영결다비식은 교계 원로 중진스님을 비롯 1만여명 사부대중의 애도속에 봉행됐다.
◇매년 부처님오신날 여의도 제등행렬에 참가한 광덕스님.
“전법으로 보리(菩提)를 이루라.”
광덕스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법회를 걱정하며 보현행자의 길을 걷기위해 모든 정열을 바쳤던 우리시대의 선각자였다.
1950년 범어사에서 동산 큰스님과의 만남을 통해 스님은 일찍이 보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하고 생각으로도 알 수 없는 무한의 세계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입산 출가했다.
그 무한한 세계를 중생과 함께 나누기 위해 “일체는 바로 우리의 생활속에 있는 것이며 마하반야바라밀속에 모든 것이 구족해 있다”는 바라밀관을 펼쳤던 스님은 수행과 전법을 다르게 생각하던 당시의 교단풍토를 개선하고, 전법으로 이땅에 바라밀국토를 건설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63년 대학생불교연합회 초대 지도법사를 맡아 이땅에 지성불교의 시대를 열었으며, 74년 11월 순수불교 교양지 월간 <불광>을 창간하고, 75년 10월 종로 3가 대각사에서 불광법회를 발족했다. 82년 서울 석촌동 호수가에 현대식 부처님도량 불광사를 건립해 도심 포교 전기를 이뤘으며, 당시로서는 새로운 불교운동인 불광 바라밀 운동을 통해 거사불교의 활성화를 주창하고, 보다 젊은 불교, 대중과 함께 숨쉬는 불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전법활동과 더불어 스님은 종단이 어려움에 처했을때에는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중앙종회 부의장직을 수행하며 해법을 제시하는 등 종무행정에도 탁월한 행정능력을 발휘했다.
이외에도 스님은 <보현행원품 강의> <행복의 법칙>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부모은중송’ ‘마하반야의 노래’등 찬불가를 다수 작시했다.
오랜 병고로 편찮은 와중에서도 손수 양말을 빨고, 아침예불을 빼놓지 않을 만큼 철저한 수행인이었던 광덕스님. 스님은 가셨지만 그 가르침은 자기의 진실면목을 믿음의 횃불로 삼아 이르는 곳마다 법의 광명을 밝히는 전법수행자들의 발길로 오늘도 이땅에 쉼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은자 기자(ejlee@buddhap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