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사찰 표정/서울 불광사 초하루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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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5.10.20 조회5,785회 댓글0건본문
초하루? 당연히 절에 가는 날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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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는 초하루.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초하루면 사찰에 가 기도를 했다. 절에 가기 며칠 전부터 음식을 가려 먹고,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정갈히 한 뒤, 부처님께 올릴 쌀이며 초를 정성스레 담아 절에 가는 동안에는 발걸음 하나까지 조심했던 어머니.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자라서 또 다른 어머니가 되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초하루면 으레 기도하러 사찰로 간다. 초하루 법회 따로 없던 불광사 첫 법회에 300여명 참석 열기 종단 대소사 택일 ‘음력 우선’ 사찰 달력 음력 돋보이게 인쇄 음력 2월 초하루였던 지난 2월28일, 서울 불광사.불광법회에도 신도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오래전 우리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법회가 시작하기도 전, 일찌감치 절에 도착한 이들은 제일 먼저 법당으로 향했다. 부처님께 3배를 올린 뒤 곧이어 찾아간 곳은 종무소. 이곳에서 신도들은 기도접수를 하거나 최근 진행 중인 불사모연에 원력을 내기도 한다. 초하루에는 따로 법회를 진행하지 않았던 불광사가 처음으로 초하루 법회를 시작한 날인 이날, 300여명이 보광당을 가득 메웠다. 법상에 오른 회주 지홍스님은 초하루 기도가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매월 음력 초하루부터 초삼일까지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 신중기도를 올립니다. 잘 아시겠지만, 부처님 정법을 수호하고 사찰을 지키는 신중은 부처님께 귀의해 불법을 수호하겠다고 서원한 신들입니다. 정각을 이룬 불보살들과 달리 힘과 용기로 환난과 두려움을 막아줘 중생들에게는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자신의 소원을 비는 불자들도 많습니다. 신중기도는 신중단에 기도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한 달을 살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다지는 의미가 큽니다. 여러분도 ‘화엄성중’을 일심으로 외우며 불공을 올리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열심히 기도하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인연을 위해서도 기도하라는 스님 법문에 불자들이 눈을 반짝인다. “매번 초하루 날 절에 오면 사시예불만 올리고 돌아갔는데 오늘은 스님께서 좋은 설법을 해주셔서 신심이 난다”는 차현숙(50. 법명 혜광만)씨는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을 위한 기도를 하라는 말씀이 와 닿는다”고 말했다. 법회가 끝나자마자 점심공양이 시작됐다. 자비를 실천하라는 스님의 법문이 힘을 발휘한다. 다른 신도들을 위해 공양을 나르는 불자들이 금방 눈에 띈다. 신도들은 법당에 법등별로 앉아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나눠 먹는다. 법등별 울력이나 회원들 각자의 애경사에 대한 얘기들이 오고가는 공양시간이다. 이날 처음 시작한 초하루 법회에는 많은 불자들이 참여했다. 새롭게 초하루 법회를 봉행하게 된 이유를 묻자 지홍스님은 “부처님은 대중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했지만, 대중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장소를 불문하고 법문을 했다”며 “대중이 모여 있으니 법회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많은 불자들이 절에 와서 기도할 때 법회를 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의아한 일이라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한다. 설날과 추석으로 기억되는 음력은 이제 아련한 옛 것으로 취급받는 시대고, 전국의 많은 사찰들이 재일 대신 일요법회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서 불광사가 새롭게 초하루 법회를 시작한 것은 어떻게 보면 시대 흐름과 역행하는 일일 수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불자들도 많고, 이들에게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 초하루법회는 참석하기 어려운 ‘그림의 떡’이다. 백용구 총무팀장은 “초하루 기도에 대한 전통이 불자들 사이에 남아있기 때문인지, 법회가 없어도 초하루 날에는 많은 신도들이 기도를 한다”며 법회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백 팀장의 말처럼 ‘초하루=절에 가는 날’로 인식하는 불자들을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초하루에는 꼭 절에 와서 한 달 동안 가족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길 기도해 왔다”는 홍우숙(54. 법명 법상화)씨 같은 이들이 태반이다. 이들에게는 부모 이전부터 내려온 불교의 초하루 의미가 깊이 새겨져 있다. 비단 초하루 법회 뿐만 아니다. 매월 찾아오는 약사재일, 지장재일, 관음재일 등은 많은 불자들에게 중요한 기도일이다. 주목할만한 것은 모두 음력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다. 불교 4대 명절이라 불리는 출가재일이나 열반재일, 성도재일, 부처님오신날 등 불교의 모든 행사는 음력으로 계산된다. 현대인에게는 미약하지만 유독 불가(佛家)에서만은 위력을 발휘하는 음력. 그 예는 불교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달력이다. 기업이나 단체에서 인쇄하는 달력에 비해 사찰이나 교계단체에서 발행하는 달력의 경우 유독 음력날짜가 도드라진다. 게다가 자칫 잊고 지나갈 수 있는 불교계 행사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 많은 불자들이 선호한다. 종단의 크고 작은 행사날짜를 정할 때도 음력은 기준이 된다. 포교활동이 활발한 스님들이 전국의 사찰로 흩어지기 때문에 초하루나 재일같이 법회가 있는 날을 피해서 정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사찰행사를 음력위주로 진행하다보면 모든 불자들을 포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일정하지 않은 날짜에 법회가 봉행되다보니 직장을 다니는 신도, 특히 거사들이 소외되는 일이 발생한다. 포교당의 일요법회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음력이 사찰문화를 주도하는 것에 대해 지홍스님은 “오랜 전통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포살법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음력에 기초한 인도력을 사용하고 있던 초기불교 승단에서는 매월 15일과 30일이면 수행자들이 모여 대중 앞에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를 포살이라고 한다. 스님은 “15일을 기준으로 한 것은 달 때문이기도 하다”며 “당시 유일한 조명이었던 보름달이 뜨는 15일이야말로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기에 적절한 날이었기 때문에 보름마다 포살법회를 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한 달에 6일(매달 음력 8.14.15.23.29.30일)은 일중식(日中食)을 하고 계를 지켜야 하는 육재일 또한 음력을 사용했던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전해지면서 정례화된 것이다. 부처님 당시부터 전통처럼 내려온 음력 법회.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음력에 대한 인식이 점점 낮아진다면 음력을 기준으로 한 법회나 행사도 차츰 양력으로 변화해갈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깨닫겠다는 불제자들의 원력뿐이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