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편력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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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5.10.20 조회4,651회 댓글0건본문
[중앙일보] 주름이 조글조글한 아줌마가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 노는 건 둘째치고 졸려 죽겠시다. 어디 잠 잘 방에나 데려다 주쇼.
- 조용하고 깨끗한 하숙이 있심더.
역시 사창가 골목이 역에서 멀지 않았다. 취객들과 군복쟁이들이 이리저리 복잡하게 이어진 골목의 곳곳에 보였다. 여자들은 거의 속옷 바람이었다. 뚜쟁이 아줌마는 나를 어느 빈 방에 데려다 놓고 돈까지 미리 받아갔다.
- 신발은 안에 들여노소.
비닐 장판 위에 캐시밀론 이불 한 채와 더러운 베개가 놓였다. 나는 문의 걸쇠를 안으로 걸고 자리에 누웠다. 바로 좌우의 방에서 키득거리는 소리며 신음 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일판을 벌이는 모양이다. 나는 몇 번이나 엎치락뒤치락하며 못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도 통금이 해제된 새벽 네시가 넘어서는 이 지옥 같은 동네도 제법 조용해졌다. 요란한 라디오 음악 소리에 잠이 깼는데 거의 아홉시가 다 되어 있었다. 나는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섰고 방향도 모르고 걷다보니 국제시장 어귀에 이르렀다. 순대국밥 한 그릇 사 먹고 다시 걷다가 이발소를 보자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이발소는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주인 아저씨는 신문에 코를 박고 있었고 면도사 아가씨만 반겼다. 내가 의자에 가서 앉으니 주인이 묻는다.
- 우찌 깎을랍니꺼?- 박박 밀어주세요.
- 박박… 배코로 치라고?- 하여튼 바리깡으루 확 밀어버려요.
- 후회할낀데… 군대 나갑니꺼?나는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아, 그라믄 깎는 게 낫소. 마음도 정리가 되고.
그는 훈련소 이발병들이 신병들 괴롭히려고 바리깡을 머리카락에 물린 채로 잡아 뜯는다는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머리 한복판을 이발기가 치올라 가자 제법 길었던 머리털이 얼굴로 흩어져 내렸다. 그야말로 짱구머리가 드러났다. 머리는 스님처럼 박박 밀고 면도까지 말짱하게 하고 나서니 한결 시원하기는 했지만 인상이 별로 좋아 보일 것 같지가 않았다.
다시 시외버스 타고 십여 리 길을 걸어서 범어사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갔다. 처음 찾아오던 날처럼 접견실로 찾아가니 먼젓번 당직 서던 그 스님이 내다보고 밖으로 나온다.
- 오늘은 광덕 스님을 꼭 뵈어야 하겠습니다.
- 어제 그 스님하구 같이 안갔어요?- 역에서 저를 남겨 놓고 어디로 사라졌습니다.
저희끼리 한통속이라고 편을 든다.
- 그럴 리가 있나. 광덕 스님은 안 계시구요, 하여튼 이번에는 단단히 의논을 합시다.
그림=민정기글씨=여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