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도 없는 방에서 물깊이를 잰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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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9.05.12 조회5,372회 댓글0건본문
물도 없는 방에서 물깊이를 잰 까닭은… |
하안거, 스님 2200여명 3개월 용맹정진 돌입 |
“조주(778~897) 스님이 당대의 선승인 수유화상의 방에 올라가 주장자를 짚고 왔다갔다 하니 수유화상이 말했습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입니까?’ 선사가 말했습니다. ‘물깊이를 더듬습니다.’ 화상이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한 방울의 물도 없거늘 무엇을 더듬는다는 말입니까?’ 이에 선사가 주장자를 벽에 기대놓고서 내려가 버렸습니다.(… ) 이 문답과 조주 스님이 주장자를 기대놓고 방을 나간 깊은 뜻이 무엇입니까?”
조계종 하안거 결제일인 지난 9일 법전 조계종 종정스님이 내린 결제 법어의 요지다. 전국의 100여개 선원에서 방부(안거에 참가하겠다는 신청절차)를 들인 2200여명의 스님들은 오전 결제 법회를 한 뒤 일제히 참선 정진에 들어갔다. 물도 없는 방에서 물깊이를 잰 조주 스님의 뜻은 과연 무엇인가….
조계종 하안거 결제일인 이날부터 3개월간의 수행에 들어간 이들은 전국 선원에 방부를 들인 출가 스님들뿐만 아니다. 서울과 부산의 안국선원을 비롯해 불광사, 성북구 길상사, 봉은사, 조계사, 화계사 등 서울 시내 사찰의 시민선방과 충북 충주의 석종사, 경남 합천의 해인사 원당암, 경북 문경의 대승사, 경북 봉화 대승사 등 전국에 산재한 크고 작은 재가자 선원들도 일제히 하안거를 시작했다.
재가자 전문 수행 선원인 안국선원은 약 1800명의 재가자들이 이미 지난 4월15일부터 하안거를 계속하고 있다. 7월15일까지 3개월간 계속되는 이번 하안거철에 수행을 하겠다고 방부를 들인 인원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 선원 870명, 부산 금정구 남산동 선원 900명. 안국선원에 방부를 들인 재가 수행자만 해도 전국 선원에서 수행을 시작한 출가 수행자 전체 숫자에 육박한다.
아이를 가진 학부모들의 편의를 고려, 산사의 선방보다 한달가량 일찍 하안거를 시작한 이 선원에서는 새벽 4시30분∼6시30분까지의 새벽반, 오전 10시∼낮 12시까지의 오전반, 오후 2∼4시까지의 오후반 중 편리한 시간을 골라 적어도 하루 2시간씩은 정진을 하는 것이 기본. 안국선원 홍법운영팀장인 은암거사는 “새벽반에는 주로 직장인들이, 오전반과 오후반에는 주로 주부들이 참여하고 있다”며 “그러나 수행에 열심을 내서 4시간, 6시간 정진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불광사에서도 지난 9일 50여명의 재가자들이 방부를 들이고 하안거에 들어갔다.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 중인 불광사 선원은 50분 정진에 10분 휴식이 기본. 정진시간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으나 하안거 해제일까지 3개월간 선방에서 수행한 시간이 모두 150시간이 넘어야 안거증을 준다. 불광사 관계자는 “안거철마다 50명 정도가 방부를 들여 이중 70∼80%가 150시간 이상을 수행하고 안거증을 받는다”고 말했다.
경기 안성시 죽산면의 활인선원에서는 이번 하안거에 참가하는 재가자들이 아예 선원에서 기식하며 10일간의 단식 참선을 포함한 90일간의 정진을 시작했다. 새벽 3시30분에 기상해 4시에 예불을 드린 뒤 시작하는 하루 일과도 출가 스님과 다르지 않다. 특히 선원을 이끄는 대효 스님은 수시로 수행 상태를 점검, 적절한 처방을 내리고 법문을 한다. 대효 스님은 일찍이 서옹 스님이 주석 중이던 경북 문경의 김용사에 출가, 고우(경북 봉화 금봉암 주석), 지유(부산 범어사 조실) 스님 등의 선지식과 함께 문경 봉암사 선원에서 정진하는 등 30여년간 수행정진하다 이 선원에서 재가 수행자를 지도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선방에서 연중 수행 중인 120명의 수행자들도 하안거 결제일을 맞아 마음을 새롭게 다지고 있다. 봉은사의 한 관계자는 “선방에 수용가능한 120명이 모두 차는 바람에 하안거 결제는 따로 하지 않았으나 안거철이 되면서 선방의 긴장도가 훨씬 더 높아지고 분위기도 열을 띠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직장인과 주부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참선이 스님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재가 수행자들이 크게 늘었다”며 “전국의 사찰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으며 정기적으로 수행 중인 사람들이 적어도 1만명, 많으면 2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