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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법석 - 서울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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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0.07.21 조회9,4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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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불광사 회주 지홍스님

서울 불광사 회주 지홍스님은 은사인 광덕스님이 주창한 불광(佛光)사상을 정립하고 사회적으로 확산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10일 불광연구원을 개원하고 본격적으로 은사스님의 사상 조명에 나섰다. 또 한편 오는 가을에는 지은 지 30년이 된 불광사를 신축해 2년 뒤면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지난 16일 스님을 만나 불광사 신축불사와 연구소 운영 등에 대해 들었다.




“각자가 삶과 사회의 주인 되는 밝은 세상 염원”


은사 유지 이어 복지 포교 교육활동 활발

연구원 개설이어 올 가을 신축불사 착수

“궁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게 바라밀행”


지홍스님은 지난 10일 불광연구원 개원 기념 세미나에서 은사 스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 불교가 근대화와 서구화의 격랑 속에서 좌초하지 않고 지금처럼 발전하기까지는 새의 두 날개처럼 한국불교를 받쳐준 선지식들이 있어 가능했다. 수행과 정법을 위해 신명을 바친 선승들과 교화와 전법을 위해 헌신한 큰 스님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부처님 법대로’를 기치로 봉암사 결사를 주도했던 성철스님이 수행가풍 진작과 조계종지를 드높인 선지식이라면 불광법회를 창립하고 잠실벌에 불광사를 창건한 광덕스님은 전법교화로 불교대중화의 초석을 다진 선지식이었다.

광덕스님은 1982년 불광사를 창건한 이후 한문으로 된 의례를 한글화 하고 현대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신행모델을 개척함으로써 도심 포교의 새로운 이정표를 확립했다. 나아가 ‘반야바라밀’로 대표되는 법 중심의 신행체계를 확립함으로써 기복불교의 한계를 넘어 한국불교가 지향해야 할 현대적 방향을 제시했다.”

<사진> 불광사 회주 지홍스님은 은사 광덕스님의 유지를 이어 불광연구원을 만들고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관심을 갖고 활동 중이다.

광덕스님은 한국불교현대사에서 특별한 존재다. 조계종 법치의 근간이 되는 종헌 종법 초안으로 1960~70년대 조계종단의 행정 체계를 잡았다.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종단에서 광덕스님의 발자취는 크고 넓다. 종단에서 물러난 뒤부터는 서울 종로 대각사에서 새로운 불교사상을 전개하며 포교당 운동을 전개했다. 대각사 골방에서 시작한 불광법회에는 당시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몰려 스님의 법문을 들을 정도로 인기였다.

1999년 광덕스님이 입적한 후 그 유지는 상좌인 지홍스님(불광사 회주)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님은 불광연구원을 개원하고 오는 가을 불광 창립일에 맞춰 불광사 신축불사를 시작한다. 2004년 조계사 주지를 떠나 불광사 회주를 맡을 때까지 스님은 지역에서 그리고 종단에서 많은 일을 했다. 젊은 재가자들과 지역문제 사회문제를 고민하며 노동자들의 밀집지역에 포교당을 내 활동을 펼쳤으며 조계사 주지, 포교부장 등을 맡아 종단의 발전과 사찰을 통한 사부대중공동체 구현에 관심을 기울이고 실천했다. 이 경험들을 밑천으로 삼고 실천 현장에서 만난 재가자들과 함께 이제는 불광사상을 사회와 불교계에 구체적으로 접목 실현하는 일을 화두 삼아 정진하고 있다.

불광사 불사는 몇 년 전부터 구상했지만 지난 몇 년간 주변 여건을 정비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오랫동안 한 곳에 살다보니 관련 기관이 많이 늘어 이를 재배치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이제 주변정비는 마무리됐다. 출판사는 조계사 근처로 옮기고 유치원은 새 건물을 마련해 내보냈다. 사찰 운영에 필수적인 법당과 식당 사무실을 교육원 건물로 옮기면 기존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짓는 불사를 시작할 수 있다. 올 가을에 착공해 2년 뒤면 새 불광사가 들어선다.

광덕스님이 불광사를 창건한 것은 1982년이다. 불광사는 다른 사찰과 달리 모임과 잡지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사찰을 만들었다. 사찰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이 중심이었다. 단지 사찰은 모임의 편의성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공간적 성격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초기 신자들 중에는 불광사 신축불사를 반대하기도 했다. 불광사라는 공간보다 불광회라는 모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와 상황이 많이 달라진데다 불광회가 불광사 신도회로 구체화 됐기 때문에 사찰의 기능이 중요해졌다. 실제로 모든 신행활동과 광덕스님이 주창한 불광사상이 불광사라는 공간을 통해 표출된다. 공간과 모임 그리고 사상이 현실에서는 불광사라는 공간을 통해 구체화되고 외부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외 많은 요인들이 법당을 신축하게끔 만들었다.

지홍스님의 설명이다.

“법당을 신축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1980년대 초 은사 스님께서 불광사를 지을 때와 3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새로운 법회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주변이 아무 집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아파트 밀집촌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주차장을 원하고, 이는 포교 혹은 사찰운영과 직결된다. 사찰 안에는 법회와 제사 기능 외에 다양한 모임과 사회활동 그리고 문화행사가 펼쳐진다. 지역주민들을 위한 서비스 개념도 생겼다. 이 모든 욕구를 충족하고 기능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운 공간이 꼭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간 편의성을 높이고 다양한 부대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건물이 오래되고 협소해 고쳐야 할 곳이 많다. 리모델링을 하려고 보니 새로 짓는 것 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어 신축불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새 법당이 들어서면 현재 1500평에서 3000평으로 늘어나고 주차시설도 늘어난다. 다양한 종류의 법당과 대형식당, 스님들 요사채, 전시실, 선방, 사무실에다 식당과 문화행사 공간도 생긴다.

이를 통해 광덕스님이 생전에 주창한 불광사상을 선양하는 불사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광덕스님은 ‘반야바라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신도들이 변화하고 우리 사회가 평화와 행복이 가득찬 밝은 사회를 구현되기를 원했다. 광덕스님은 생전에 반야바라밀을 부처님 진리 그 자체로 늘 염송하면 사람은 서로가 사랑하게 되고 이를 통해 사회는 밝아질 것이라고 했다.

“부처님 법의 핵심은 반야바라밀입니다. 이 법문에서 삼세제불이 출현하시며 일체 중생이 성불하며 일체 국토가 불국장엄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이 최상법문이 능히 국가를 진호하며 세계를 평화 위에 확정시키는 것입니다. 불광법회는 마하반야바라밀의 법문을 받들어 이 법문을 행하고 펴는 것이 본의입니다. 이러한 불광신앙이 능히 오늘의 우리 국가와 사회에 안녕의 토대를 만들어 가고 조국의 영원한 번영을 형성하는 것을 확신합니다. 부처님은 진리의 몸이고 법신입니다. 이 부처님을 우리는 반야바라밀이라고도 합니다. 진리 자체가 반야바라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본체는 반야바라밀입니다. 일체의 부처님은 반야바라밀에서 나왔고 그래서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홍스님이 연구원을 만든 것은 반야바라밀에 기초한 불광사상을 널리 전파하고 우리 사회에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다.

“은사 스님께서는 생전에 불교사회과학연구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시는 한국불교가 사회적 역할이 전무했다.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불교는 중생제도가 첫 번째 사명인데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 은사 스님께서는 사회과학연구소를 만들어 여기서 나온 연구결과를 종단과 사찰로 확산시키고 나아가 기복에 젖어있던 신자들을 변화시켜 불교와 한국사회를 변모시켜야한다는 원력을 갖고 계셨다. 연구원은 이 같은 큰 스님의 원력과 사상을 계승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지홍스님은 “큰 스님께서 말씀하신 불광사상은 반야사상과 순수불교사상이다. 우리 개개인은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으로 이루어진 생명임을 깨달아 아는 것이 순수불교의 입장이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반야지혜를 보살행을 통해 실천하자는 것이 바라밀행이다. 큰 스님께서는 모든 이가 자신의 삶과 사회역사의 주인이 되어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사회, 곧 바라밀국토를 만들려는 원력으로 바라밀수행을 가르치셨다”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변화가 목적이라고 했다.

유치원 운영, 복지관 위탁에다 지역 잡지 <공감플러스> 발간, 그리고 지홍스님 스스로 사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종단에서 활동하는 것 모두가 불광사상으로 우리 사회가 밝아지기를 염원했던 은사 스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



지홍스님은…

부산 범어사에서 광덕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지홍스님은 20세 때부터 서울에서 은사 스님을 시봉했다. 광덕스님의 총무원 총무부장 시절부터 대각사 불광법회와 불광사 창립까지 곁에서 지켜보고 직접 일을 도운, 광덕스님의 아난과 같은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중반 불광사에서 불교운동을 펼치던 대학생 청년 불자들을 만나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눈을 떴다. 스님의 사회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말 광명 금강정사 창건으로 이어졌다. 금강정사에서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가람 공동체를 실천에 옮기며 불교의 지역사회 기여를 고민하던 스님은 1994년 종단 개혁운동에 참여해 이때부터 종단 개혁불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포교부장을 거쳐 1999년 재정과 운영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움에 빠진 조계사를 맡아 신도들의 사찰운영 참여, 재정공개, 총본산 성역화 불사, 가람정비 등 많은 업적을 세웠다. 2004년 조계사를 나와 은사 스님이 떠난 불광사 회주를 맡아 새로운 불광을 준비하고 있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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