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칼럼-포교현장에서] 고덕양로원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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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5.03.31 조회5,214회 댓글0건본문
고덕양로원 부처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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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교서 운영하는 시립 시설 법등모임서 5~6명 월2회 법회 어르신들 작은 관심 고마워해 불광사에는 신도들의 지역모임인 ‘법등’ 모임이 활발하다. 각 가정을 돌면서 기도와 축원을 한다. 법등식구의 집을 찾아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간혹 지역에서 봉사를 하며 모임을 갖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시립 고덕양로원’을 찾아가 법회를 여는 모임이 그렇다. 이 양로원은 시에서 설립했지만 운영은 천주교 재단에서 하며, 수녀가 원장이다. 140여 명의 어르신들이 생활하는데, 대부분 오갈 때 없는 분들이다. 몇몇 분들은 시설이 좋아 들어왔다고 한다. 이곳은 소외받는 어르신들을 챙기는 곳이다. 다른 종교가 운영하는 시설이지만, 불자들이 법회를 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휴게실 같은 빈 공간을 마련해서 불자 어르신들을 모시고 간단히 기도를 하고 법문을 전한다. 양로원 법회에 참석하는 인원은 그리 많지 않다. 법등식구들이 6~7명 동참하며 법회를 갖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비슷한 숫자로 자리한다. 어르신들이 살아온 애환을 들어주는 것도 큰 역할이다. 90세가 넘는 분들도 있으나 대부분 70~80세를 웃도는 연세들이어서 다양한 인생살이가 묻어난다. 이곳에서 부처님의 인연을 맺고 가르침으로 생을 마감하려는 분들도 있다. 어르신들에게는 법등모임의 방문 자체가 소중한 인연이다. 자비사상(慈悲思想)의 신행활동을 하면서 이곳을 교화하지 못한다면 아쉬움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챙겨드리려고 한다. 양로원에서 꾸준히 법회에 동참하시는 어르신 가운데 올해로 77세이신 박순철 할아버지가 있다. 어린 시절 일본을 오가며 자란 할아버지는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기자가 꿈이었다고 한다. 대학을 신문방송학과로 진학하려 했으나 우리나라는 제대로 학과가 개설되지 않아 유학을 갔다. 그래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일본 신문사에 입사하여 종군기자로 세계 80여 개국의 분쟁지역을 취재하며 다녔다고 한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자녀들도 생겼다. 자녀들은 일찍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자리를 잡았단다. 노년이 되니 자녀들은 미국으로 건너와 함께 살자고 하지만 말년에 고향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단다. 법회에 동참하다보면 가족이 따로 없다. 봉사하는 불자들이 가족이 되고 답답함을 날려 보낼 수 있다고 하신다. 한 달에 두 번밖에 되지 않는 법회지만 당신들에 대한 관심에 감사하며 짧은 법문도 즐거운 시간이 된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그분들의 서러움을 달래주는 하나의 방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늙는다. 부처님께서도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출가수행자가 되었듯이 늙어가는 것은 피해가지 못한다. 우리사회에서 노년을 편히 지낼 수 있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식들의 눈치를 봐가며 노년의 병환을 피해가려고 한다. 정신적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어르신들을 우리는 도와야 한다. 어르신에 대한 관심은 그분들이 마음 편히 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다. 방치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관심이다. 실수를 하더라도 아이가 되어가는 어르신의 모습을 감싸주어야 한다. 천진스러운 할아버지 할머니불자의 얼굴은 천진불이 따로 없다. 이 시대가 있기까지 한 청춘을 다 바친 그분들의 노고에 답례를 해야 한다. 이마의 주름에서 삶의 향기가 우러난다. 부처님의 모습이 그들이 아닐까? 누구나 늙어가기에 부처님을 모시듯 어르신을 잘 챙겨야 한다. [불교신문3091호/2015년3월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