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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오로 수용자생활 하지만
부처님 법 만나 수행전념
퇴소 후 사찰음식 공부해…
서울 송파구에 성동구치소가 있다. 택지가 들어서기 전부터 세워진 곳인데, 지금은 아파트촌에 둘러싸여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이곳 성동구치소에서는 남자법회와 여자법회가 매주 한 번씩 진행된다. 교리공부는 포교사들이 지원하고 있는데, 남자수용자들은 숫자가 많아서 불교반을 따로 운영 중이다.
법회를 집전하는 불교반장 역시 수용자이다. 법회가 원만하게 운영되려면 법사인 나와 불교반장의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가끔 집전 잘 하는 수용자 반장을 만나면 수감기간이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한다. 반장은 신심도 깊고 불교공부도 누구보다 열심이다. 그런 반장들 가운데 법명이 ‘도운’인 불자가 있었다. 지금은 퇴소해서 사회인이 되어 있다.
수용자들은 모두 다양한 과업으로 인해서 수감되어 있다. 죄명을 직접 거론할 수는 없지만, 회사를 다니던 그는 회사가 부도나면서 임원으로서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가족과도 이별하며 긴 시간을 참회와 각성의 시간으로 보내고 있었다. 불교와 인연이 있어 불교공부를 시작했고, 반장까지 하게 됐다. 1년에 상하반기로 봉행되는 수계식에 3번이나 동참해 법명을 받았으니 이름도 많다.
구치소 내에서 그는 성실과 모범의 대명사였다. 특히 불교반장의 이미지가 컸다. 법회에 갈 때마다 친절은 기본이고 신심나게 집전을 했다. 나에게는 사경한 <반야심경>을 여러 번 보냈고, 배운 것들을 실천하고 있었다. 과업으로 인해 인생수업의 과정으로 구치소 생활을 하고 있지만, 불교를 만나며 수행하고 신심을 쌓아갔다.
그가 퇴소를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사찰에 찾아온다고 했다.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구치소의 모습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젊기도 한 그가 나를 만나서 황당한 요구라도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만나고 보니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청년이었으며, 신심 돈독한 불자였다.
퇴소할 때가 부처님오신날 즈음이라 사찰에서는 일손이 필요했다.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해서 연등 이름표 부착하는 일을 시켰다. 키도 큰 편이라 원만히 일을 도왔다. 내가 있는 불광사는 만등불사를 하는데, 만등에 이름표를 거의 다 혼자서 붙였다. 나중에는 본인이 만등을 켠 마냥 기뻐했다.
“앞으로 뭘 할 것인가”를 묻자 그는 사찰음식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앞선 직장생활과도 연관되고, 경영기술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우선 동국대 대학원에 진학해 사찰음식에 대한 연구를 하려고 한단다. 지금은 잘 다니고 있다. 사찰음식문화에 대한 연구와 보편화를 시키기 위한 기획을 구상중이다. 어릴 적 얕은 불심이, 어른이 되어 직장생활의 실패에서 더욱 불심을 다지는 계기가 되고, 이제는 불심을 키워 불교문화를 성장시키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구치소에서의 신행활동은 어디보다 굳건하며 절실하다. 갇혀 지내는 삶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신행생활은 필수이다. 한 달에 영치금(수용자의 용돈) 1만원이 없어 방내에서도 소외 된다. 작은 보살핌이 재활하여 사회에 복귀하려는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나쁜 사람, 못된 사람, 무서운 사람은 원래 없고 변화될 수 있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 부드러운 사람은 부처님의 말씀을 잘 전달하고 의지하며 실행시키는데 있다. 포교를 하는데 있어 구분을 둬도 안되겠지만 힘든 이를 위해 돕는 것이 중요하다. 수용자에게 정성을 다해 포교를 하면 그들도 분명히 변화되어 다가올 것이다.
작은 인연도 소중히 하며, 건강한 사회를 이루고자 부처님 말씀을 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불교신문3075호/2015년1월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