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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다시 만난 인연
영국 연화사에서 유학생들과
비빔밥 한 그릇으로 정 나눠
7년 전 만남이다. 내가 영국 런던의 연화사 주지를 할 때 만났다. 그는 많은 유학생 중의 하나였고, 나는 영국에서 유일한 한국 스님이었다.
고향을 떠나 먼 이국에서의 타향살이는 겪어본 자만이 안다. 좀 더 발달된 선진 문물과 경험을 쌓기 위해 영국까지 유학을 온 그들, 그들을 챙기기 위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교민들도 각자가 생업에 쫓아가기 바쁘고, 현지 외국인들은 그저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배우러 온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영국이란 나라는 성공회를 국교로 하며, 가톨릭과 개신교가 발달한 나라이다. 성당과 교회는 많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현대에 와서 종교에 의지하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큰 성당들은 오히려 공연장이나 전시장, 파티장 정도로 활용되어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인사회에서는 개신교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특히 놀고 있는 영국교회나 성당을 빌려 종교집회를 갖는다. 거기서 다양한 정보가 오고간다. 유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교회를 나가야 득이 될 수 있다.
영국 내 유일한 한국 사찰이 ‘연화사’다. 런던 중심가에선 조금 떨어져 있지만 1시간 정도만 마음을 내면 충분히 갈수 있는 곳이다. 교민들의 안식처이자 유학생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 내가 주지로 있을 때도 불자들과 학생들이 많이 찾았다. 특히 고향을 그리며 비빔밥이라도 한 그릇 챙겨먹고 싶어 하는 유학생들에게 연화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이제 소개하려는 박형근 법우도 바로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그 법우는 런던과 요크에서 공부했다. 학부를 거쳐 석, 박사과정까지 연구를 했다. 가끔이지만 연화사에 오면 밥값을 한다며 청소에, 가든 잔디정리에, 짐을 옮기는 것까지 도맡아했다. 그는 경전을 읽으며 꾸준히 신심을 키우고 학업에 정진했다.
2014년 12월, 영국에서 공부하던 박형근 법우가 나에게 인사를 하러 온다고 연락을 했다. 간혹 이메일과 문자만 주고받았는데, 오랜만이라 만날 생각을 하니 정말 반가웠다. 어서 오라고 했다.
그는 올 여름에 영국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유엔 직원으로 근무 중이다. 이번에 파키스탄으로 출장을 가는 길에 나를 찾았다고 한다.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두꺼운 책을 선물한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나에게 복잡한 박사논문을 수줍은 듯 자랑했다.
이제 장가갈 일만 남았는데, 파키스탄으로 파견근무를 가야한단다. 1년을 간다. 젊은이로선 긴 시간이다. 좋은 시절에 위험한 지역을 간다. 학업 스트레스가 쌓일 때도 경전을 읽어가며 극복했다는 그가, 이제는 위협을 받는 업무환경에서 생업을 쫓아가기 위해 경전을 읽으려 한단다. 영국에서 준 한글 법회요전과 영문판 <금강경>을 늘 지닌다고 한다. 손목에 차는 합장주는 항상 몸과 같이 챙겨 다니며, 유학시절 때도 마찬가지지만 자고 일어날 때 짧은 참선수행이 활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기리라 믿는다. 인과응보를 믿기에,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고자 정진한다. 인연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정성을 다하고 밝은 생각을 하면 변화된다고 믿는다. 좋은 변화는 보답을 해야 한다. 이러한 보답이 많이 생기면 세상도 변할 듯하다. 유학생시절의 작은 비빔밥 한 그릇이 젊은이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으로 이어져 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설해놓은 경전이 아닐까 싶다.
* 본공스님은… 혜담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91년 사미계, 1995년 구족계를 받았다. 중앙승가대 졸업 후 동국대 대학원 석사, 중앙승가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영국 런던 연화사 주지를 역임했고 현재 한양대 불교학생회 지도법사, 송파경찰서, 제2기동단, 제3기동단 경승, 성동구치소 교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서울 불광사 주지다. |
[불교신문3073호/2015년1월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