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중흥사 복원기념 학술연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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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2.04.13 조회6,872회 댓글0건본문
북한산 중흥사 복원기념 학술연찬회 |
'북한산성과 호국도량 중흥사' 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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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규모 승영(僧營) 사찰이었던 북한산 중흥사 복원을 기념하는 학술연찬회가 열린다. 불광연구원(원장 지홍)은 오는 31일 오후 2시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북한산성과 호국도량 북한산 중흥사’란 주제로 학술연찬회를 개최한다. 연찬회에는 황인규 동국대 교수가 ‘북한산지를 통해 본 북한산사의 위상과 역할’을 주제로 북한산성을 관리했던 북한산의 여러 사찰들과 중흥사의 위상에 대해 고찰한다. 이어 박재광 전쟁기념사업회 책임연구원이 ‘수도방위와 북한산성의 전략적·지정학적 가치’라는 주제로 ‘수도방위에 있어서 북한산성의 전략적 가치와 국방학적 관점에서 본 중흥사’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또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가 ‘한국불교사에서 중흥사의 위상과 역할’을 주제로 중흥사와 조계종의 관련성을 규명한다. 이경미 역사건축기술연구소 소장은 ‘승영사찰 중흥사의 가람배치와 복원방향’이란 주제를 통해 중흥사의 가람배치와 특징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토론자로는 불교중앙박물관장 흥선스님, 한울문화재연구 김홍식 원장, 문화관광부 이병두 종무관, 국립공원관리공단 최병기 자원보존과장, 고양시청 심준용 학예연구사가 참여한다. 북한산 중흥사는 1712년 북한산성 축성과 함께 수도방위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되면서 136칸에 달하는 대규모의 승영(僧營) 사찰로 확장됐다. 중흥사에는 팔도도총섭을 겸한 승대장이 머물렀고, 산성의 유지관리는 물론 승군을 지휘하는 사령부의 위상을 갖게 되면서 대표적인 호국도량으로서의 위상을 가져왔다. 그러나 1894년 승병제 폐지와 일제의 강점 이후 1904년에는 대규모 화재가 발생, 사세가 쇠락했고, 1907년에는 일본군이 도적소탕을 이유로 중흥사에 헌병대를 주둔시켜 외세의 군홧발에 짓밟히는 치욕을 당했다. 이후 불광사를 중심으로 중흥사복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10여년 간 복원불사를 추진, 오는 4월 18일 대웅전 상량식을 앞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