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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구담 스님의 카메라 너머 세상] 6. 미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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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25.03.24 조회1,0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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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인간 ‘미키’로 보는 윤회


생사 반복하는 주인공 ‘미키’

불성 보유 여부 궁금증 유도

불교의 사생 중 무엇에 해당

하는지 생각케 하는 캐릭터

 

 

 

봉준호 감독이 6년 만에 돌아왔다. ‘죽는 게 직업’인 주인공 미키의 어물쩍한 상황을 은유적으로 담은 포스터의 뜻이 알쏭달쏭하게 느껴진다. 영화 ‘미키 17’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미키 17’이란, 열일곱 번째 죽는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암시한다.

 

서기 2054년,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악덕 사채업자를 피하기 위해 우주로 떠간다. 그런데 직업을 익스펜더블(expendable), 즉 ‘소모품 복제인간’으로 잘못 선택해 버렸다. 미키는 위험한 임무나 실험에서 활용되다 죽으면 복제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이후 또다시 위험한 일에 투입돼 소모품처럼 버려졌다 다시 출력되며 인간을 대체한다.

 

사실 봉준호 감독만의 블랙코미디로 압도하는 반전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영화시작 후 내내 밋밋함에 졸거나 옆 사람의 눈치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후반에 접어들며 감독 특유의 긴장감과 급박한 상황 연출에 어느새 몰입 속도는 빨라진다.

 

어느 날 임무를 마치고 간신히 살아 돌아온 미키 17은, 미키 18번을 만나며 혼비백산한다. 금기시된 멀티플(복제인간을 중복으로 생산하는 것)에 따르면, 둘 중 한 명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이야기가 빛을 내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내러티브에서는 위험한 일에 아바타 격인 복제인간을 보내거나 함께 출동해 관객을 헷갈리게 할 테다. 그러나 이 영화는 미키17과 18의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설정으로 하나의 존재만 생존 가능한 상황을 조성한다.

 

죽기 싫어 죽음을 택했는데, 의지와 무관하게 계속 죽는 미키. 태어난 지 15분 만에 또 죽는다. 영화 속에서 미키를 에워싼 사람들이 진심인 듯 건성인 듯 묻는다. “죽는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이렇게 자꾸 죽는 미키는 과연 죽음의 분위기를 깨달았을까?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음을 욕망하고, 영원한 시간 속에서 매번 새로운 존재를 탐닉하는 중생처럼, 이제 미키도 점점 죽음에 무뎌지고 기계적 윤회에 적응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복제인간도 불성을 가지고 있을까? 불교에서는 태어남을 태생, 난생, 습생, 화생 등으로 설하는데, 그중 복제인간은 어디쯤일까?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존재의 고단함이 밀려온다. 연기적으로 상의상존하는 존엄함으로 봐야 할지,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문명의 이기로 봐야 할지, 프린터처럼 출력되는 인간이라는 과제 앞에 우리는 무력하고 작아진다는 사실을. 복제인간 자체는 선악의 대상이 아닐 텐데, 데이터와 정보의 백업이라는 업식으로 태어나는 가슴 찡한 모순을 어찌 봐야 할까.

 

‘미키 17’을 본 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1936)가 스쳤다. 웃기면서도 비극적이고 인간이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은 어째서 세월 내내 회자되며 우리에게 불편한 감동을 주는가.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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