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행복을 긷는 사람들 불광사 불광법회 혜은 이정민 법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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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교육원 작성일2015.04.08 조회5,941회 댓글0건본문
![]() 지난 연말연시 tvN 드라마 ‘미생’이 브라운관을 뜨겁게 달궜다.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인 장그래 사원과 오상식 차장처럼 이정민 불광사 불광법회 회장도 상사맨 출신이다. 심지어 미생 드라마 촬영지인 ‘서울스퀘어’ 내에 위치한 대우실업에서 10년간 근무하며 우리나라에서 만든 직물 원단을 갖고 남미와 북미, 유럽 등 전세계를 누볐다.
‘세계 경영’과 ‘하면 된다’를 주창한 대우그룹의 영향으로 글로벌 경영을 몸에 익한 이 회장은 불광법회 회장 소임 이전까지만 해도 1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냈다. 이 회장은 자신이 설립한 모다끄레아의 2년차 이상 직원들에게 “틈나는 대로 해외에 나가라”고 독려한다. 이를 통해 지난해 연매출 300억원에서 올해는 400억원, 내년에는 500억원을 목표로 삼을 만큼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13년 12월 불광법회 회장 소임을 맡은 이후, 힘이 생겨나고 회사일도 잘 풀린다”며 “향후 5년간 더 일에 매진한 뒤 여생은 ‘마음출가’를 통해 전법과 봉사 등 불교를 위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8년 기차로 서울에서 대전으로 출장 가던 이정민 불광법회 회장은 우연히 한 스님의 옆자리에 앉게 됐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불공을 드리기 위해 사찰에 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고, 성장한 뒤에도 등산가서 사찰에 잠시 놀러간 게 불교와의 인연이 전부였지만 용기를 내 스님과 대화를 시도했다.
당시 이 회장은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맹장마저 터져 복막염수술까지 받았지만 회사일 때문에 마냥 쉴 수가 없어 출장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스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그동안 막혀있던 게 뻥 뚫리는 느낌을 받게 됐다.
10~40분 기도로 일과 시작
해외출장 중에는 카페트에
큰 수건 깔아놓고 108배
“기도하면 내면 살피며
좋은 생각하게 돼
새로운 힘 생겨나고
머리도 맑고 가뿐해져
회사일 집안일도 잘 정리”
당시 조계종 교무부장 소임을 맡고 있던 그 스님은 이 회장에게 “잠실에 있는 불광사를 찾아 가 광덕스님한테 배우세요”라며 불교공부를 제안했다. 이 회장은 일요일이 되자 곧바로 불광사를 찾아갔다. 광덕스님의 법문에 이어 마하반야바라밀 정근을 하는 동안 감동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고 이 회장은 회고했다.
“당시 법문 내용은 세월이 흐르면서 잊어버렸지만 저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대중과 함께 염송하는 것도 너무 좋았지요. 제가 휘경동에 살 때인데 잠실대교를 건너서부터 집에 갈 때까지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그때 불광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게 30년 남짓 됐네요.”
이 회장은 광덕스님과의 첫 만남을 갖고 한 달 뒤 불광사 청년회에 가입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6세에 불교에 입문했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통해 2년 만에 청년회장 소임을 맡게 됐다. 불광사 청년회를 통해 부인 강수미 씨와의 사랑을 키웠으며 광덕스님이 주례까지 봐주며 둘의 사랑을 증명했다.
이 회장은 매주 일요일과 목요일마다 부인과 함께 불광사를 찾는다. 일요일에는 일요법회 참가를 위해, 목요일에는 ‘광덕큰스님 육성법문 공부모임’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지난 해 9월부터 10년 결사로 모인 육성법문 공부모임은 1982년부터 1998년까지 광덕스님의 법문을 녹음해 놓은 600~700개의 테이프를 CD로 제작하고 녹취한 뒤 도반들과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다.
“당시에 동영상 촬영장비가 어느 정도 보급돼 있었는데도 광덕스님의 동영상 자료는 TV에 출연하신 게 유일한 자료일 만큼 귀해요. 그래서 법문 테이프를 풀어 CD와 책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광덕스님께서 대각사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7시 불광법회를 시작한 것에 맞춰 매주 목요일마다 모임을 갖고 광덕스님의 가르침을 배워나가고 있지요.”
일요일 목요일 불광사 찾아
‘광덕큰스님 육성법문 공부’
“5년간 전세계 누비며
해외 지사와 법인 설립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
국내외 많은 곳에
불광법회 지원 설립
전법도량 역할 ‘서원’
![]() 이 회장은 매일 아침마다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40분 정도 기도 정진하며 하루일과를 시작할 만큼 신심이 깊다. 특히 아무리 시간적 여유가 없더라도 바라밀 정근은 빼놓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사업차 아르헨티나로 건너 가 생활하면서도 부에노스아이레스 한마음선원을 다니며 불교와 맺은 소중한 인연을 놓지 않았다.
해외출장 중에도 카페트 위에 큰 수건을 깔아놓고 운동을 겸해 108배를 올린다. 이같은 기도를 통해 머리가 가뿐해지고 에너지도 생성된다고 강조했다. “기도를 하면 자기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고 좋은 생각도 하게 되지요. 또한 새로운 힘이 생겨날 뿐만 아니라 머리도 맑아지고 가뿐해지지요. 이로 인해 회사일과 집안일 또한 잘 정리돼 매일같이 기도로써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있답니다.”
이 회장은 향후 5년간 회사 일에 매진한 뒤 ‘마음출가’를 통해 전법과 봉사 등 불교와 이 사회를 위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서원했다. 불광사 회주 지홍스님이 이번 출가재일 법문을 통해 65세가 되면 그동안의 세속적인 패턴에서 벗어나 전법과 봉사 등 불법(佛法)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게 어떠냐며 새로운 불교신행생활을 제안한 게 계기가 됐다.
“회주 스님께서 ‘마음출가’를 통해 사찰만을 위한 게 아니라 이 세상을 바꿔 나가는 원동력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한다고 당부하셨는데 전적으로 공감하며 저 또한 그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를 위해 이 회장은 5년간 전세계를 누비며 해외지사와 해외법인을 설립하는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특히 이 회장은 한국근대화의 1등공신인 섬유사업이 절대 사양사업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미래세대를 위해 섬유사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즈음해 10대 미래중점사업에서 섬유분야가 빠졌고 이후부터 사양산업이라는 말이 돌았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로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분야가 바로 패션으로 부가가치가 큰 사업”이며, “패션으로 유명한 이탈리아를 능가할 수 있는 재능 있는 민족은 한민족이 유일하다”는 미래학자와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섬유사업의 성장가능성을 내다봤다.
또한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의 ‘제2기 민족공동체 불교지도자과정 수료생 모임’의 회장 소임을 맡고 있는 이 회장은 5ㆍ24조치로 묶여 있는 남북관계가 화해국면으로 전환된다면 개성공단에 봉재나 원단공장을 운영하고 싶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섬유패션산업의 새로운 중심지인 ‘양포동(양주, 포천, 동두천)’에 소규모 섬유공장이 수천 개 몰려 있을 뿐만 아니라 의정부에 섬유수출입회사가 400개가 넘어요. 원단의 고급화와 더불어 신시장 개척과 판로 다변화 등을 위해 진력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만큼 더욱 노력해야지요. 특히 경색된 남북관계가 풀린다면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저 또한 개성공단에 공장을 내려고 합니다.”
불광법회 회장으로서 이 회장은 불광법회가 지방은 물론 해외로 더 확산돼 나갈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고 피력했다. 이를 위해 규모가 작더라도 지방은 물론 해외에도 불광법회 지원(支院)을 설립해 제2의 불광운동이 지역 속으로, 세계 속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터전을 구축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광덕스님의 가르침을 이 시대에 맞게끔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규모가 작고 불상이 없더라도 국내외 많은 곳에다가 불광법회 지원을 설립해 법회를 보며 기도, 수행, 전법도량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길 서원해봅니다. 적지 않은 도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모아가고 있으며 저부터 앞장서 실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사진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 이정민 회장은 …
1952년 8월 전북 장수에서 태어난 이정민(법명 혜은) 불광사 불광법회 회장은 서울 경희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12월 대우실업(현 대우인터네셔널)에 입사한 뒤 섬유수출부에서 의류와 직물 수출업무를 담당하는 상사맨으로서 10년간 전세계를 누볐다.
1988년 여성 의류용 고급직물 수출업체인 ‘모다끄레아’를 설립해 2015년 연매출 목표를 400억원으로 삼을 만큼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사)한국·아르헨티나협회장과 한국니트수출협의회장 등을 맡으며 우리나라의 수출 증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은 다양한 불교단체 소임을 잇따라 맡으며 불교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1988년 불광사와 인연을 맺은 이정민 회장은 불광사 청년회장을 역임한데 이어 2013년 12월부터 제9대 불광사 불광법회 회장 소임을 맡고 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와 불교아카데미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이사와 달라이라마방한추진위원, 100인 대중공사 위원 등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불광운동의 중심이었던 광덕스님 진영 앞에 선 이정민 회장. 이 회장의 향후 5년 계획은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와 개성공단 진출이다. 섬유산업이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불교신문3094호/2015년4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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