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자본주의 병폐 물들어
시대 요구와 변화 수용 못해
수행의 불교로 되돌아 가야”조계종 포교원장 지홍(사진) 스님이 “10년 내에 한국 불교가 존립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기복신앙 등에 실망해 한국불교와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한 외국인 현각 스님에 대해 “원칙적으로 현각 스님의 문제 제기가 옳다고 본다”고 밝혔다. 조계종의 고위 종책소임자가 한국불교의 위기를 직접 언급하고, 현각 스님 문제에 대해 처음 입장을 밝힌 것이다.(문화일보 7월 29일자 2면 참조)
지홍 스님은 17일 오후 ‘7대(代) 포교원 포교정책’ 발표를 하루 앞두고 가진 기자설명회에서 지난 3월 포교원장에 선출된 뒤 향후 5년간의 새 포교정책을 준비해온 소회를 피력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탈(脫) 종교화 시대에 종교가 사회의 요구와 변화를 수용하지 못했다”며 이에 따른 출가자·신도의 급감과 고령화, 군소 사찰 운영의 어려움 등을 불교의 위기로 먼저 꼽았다.
조계종의 지난해 출가자 수는 10년 전에 비해 3분의 1수준이며 비구니 출가자는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출가자의 연령이 20대에서 30∼40대로 올라갔고, 신자는 20∼30대 비중이 크게 줄었다. 지홍 스님은 “내용적으로 더 심각한 것은 종교가 자본주의 병폐에 물들어 승가(僧伽)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이래서는 안 된다는 승가의 근본적 위기의식이 있다. 이대로라면 10년 내에 불교가 존립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 자체를 위해 존립하는 종교는 존립할 수 없다. 대중을 위한 종교가 살아남는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홍 스님은 “불교를 비롯한 한국종교가 기복적 차원에 머무는데, 그것도 무속적 기복”이라고 비판하며 “이제 대중들이 눈을 떠서 수용하지 않는다”고 기복신앙의 문제를 지적했다.
지홍 스님은 위기의 대책으로 승가는 ‘부처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각오를, 신자에 대해선 불교의 최대 강점인 ‘수행의 종교’로의 변화를 제시했다. 그는 “올바른 승가가 되기 위해선 형식은 어쩔 수 없더라도 내용은 부처님 때 수행정신으로 돌아가야 불교가 되살아날 수 있다. 그 시절 ‘보살행’의 불교 수행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자들도 기복신앙보다 수행을 통한 자기변화와 생활의 질을 바꾸도록 불교가 지원해야 한다. 그런 변화가 빠르게 올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방향에 따라 포교원이 18일 발표한 포교정책에는 △신행혁신 운동과 새 불자상 확립 △플랫폼 방식의 포교자원·콘텐츠 발굴 △신도교육 내실화와 교재 개편 △포교·신도단체 자립·자율성 강화 △미래세대를 위한 전법 대안 마련 △도심 및 농어촌 지역 사찰 공동체 모델 개발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한편 지홍 스님은 최근 현각 스님의 한국불교 비판 논란에 대해 사견임을 전제로 “원칙적으로는 현각 스님의 비판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스님은 이어 “하지만 (현각 스님이) 더 적극적으로 책임 있게 이야기해야 한다”며 “페이스북이 아닌 보다 공식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해야 하고, 불교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 종교의 신행 형태를 함께 이야기해야 울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