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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불광

불광사를 세운 월간지 '불광' 5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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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6.05.23 조회5,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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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동안 한 번도 쉰 적 없어… 전시회·콘퍼런스 등 기념 행사

'불광(佛光)'(왼/쪽), 회주 지홍 스님.

'잡지가 만든 사찰'이 있다. 잡지 구독자들이 모여 법회를 열다가 십시일반(十匙一飯) 정성을 모아 사찰을 지은 것. 1974년 11월 창간된 '불광(佛光)', 그리고 1982년 창건된 서울 송파구 불광사(회주 지홍 스님·사진) 이야기다. '불광'이 6월호로 통권 500호를 맞는다. 그동안 한 달도 빠진 적 없이 42년을 완주한 것. 불교계 잡지로선 유례없는 일이다.

초대 발행인인 광덕(1927~1999) 스님이 '불광'을 창간한 것은 새로운 불교 문화 운동을 위해서였다. 당시 우리 불교엔 미신적·기복적(祈福的) 요소가 많았다. 광덕 스님은 창간호에서 '순수불교선언'을 발표, "인간이란 불성(佛性)의 실현"이라며 불교 본질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창간 당시 편집실은 서울 종로 대각사 법당 뒷방. 벽장과 책상, 전화기가 하나씩 있었다.

광덕 스님의 상좌로 창간 작업 당시 곁을 지켰던 지홍 스님은 "우리 스님은 당시 총무원 총무부장을 맡고 계셨는데 그 월급과 글 쓰고 받은 원고료를 모아 잡지를 만드셨다"며 "혼자 원고 청탁하고, 직접 원고 쓰고, 수정하고 교열 보고 다 하셨다"고 했다. 제자(題字)는 당대의 서예가 여초 김응현에게 부탁했고, 창간호엔 당시 조계종 종정 서옹 스님의 글도 실었다. 광덕 스님은 창간사인 '순수불교선언'을 비롯해 기명(記名) 기사만 네 꼭지를 썼다. 이후에도 성철·경봉·고암·석주·일타 스님과 양주동·박종홍 박사, 개신교 신학자 변선환 교수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광덕 스님의 글에 대한 자부심은 남달랐다. "불광에서 나가는 모든 글은 오자(誤字)가 있어도 안 되고, 품격이 떨어져서도 안 된다"며 꼼꼼히 체크했다. 창간호 정가는 150원. 당시 2만원을 내고 등록된 '영구회원'은 현재도 22명에 이른다.

창간 후 1년쯤 후엔 불광법회가 생겼다. 독자들이 모여서 배움을 나누는 자리였다. 그때그때 사찰을 옮겨다니며 법회를 열다가 법당 건립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그 결과 1982년 서울 송파에 불광사가 지어졌다.

'불광'은 500호를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23~26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로비에서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변화한 '불광'의 면모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열고, 27일엔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후원의 밤'도 개최한다. 6월 11일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미산·원영·금강 스님과 조성택 고려대 교수, 전현수 정신과 전문의가 강사로 나오는 '붓다 빅퀘스천' 콘퍼런스도 개최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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