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1년 2월 둘째주 일요법회 불법수행의 근본 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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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주 작성일2017.02.14 조회35,000회 댓글0건본문
불법수행의 근본 요체
원각경문수장을 중심으로
팔공총동화사 유나 지환스님
원각경은 본래부터 청정한 반야바라밀다의 방법을
문수보살의 지혜를 통해 드러낸 경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방법과 과정(인지법행(因地法行)이 무엇인가?
중생들이 지니고 있는 번뇌와 삿된 소견은 무엇인가?
인간의 행위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데,
이유는 세세생생 쌓인 업력으로 인해 잘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사회는 탐욕문명이 극대화되어 있고,
매스콤으로 이를 조장하고 있다(바로 봐야 한다)
불교의 목적은
괴로움(중생의 번뇌와 삿된 소견)을 통찰하고
열반을 실현하는데 있다.
괴로움을 통찰하되 적대시하면 안된다.
괴로움을 아는 것이 발심의 원인이 되며
괴로움의 문제는 천국에서도 해결 안 된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는 몸에 끄달리는 시간이 많다.
욕계천상에만 가도 좋고 색계천상을 더 좋으나
이것이 진정한 행복은 아니다.
깨달음의 삶은 모든 경전의 핵심
깨달음의 삶은 반야지혜와 대비로 표현된다.
에고가 중심인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며
나를 비우는 사랑을 해야함
깨달음의 삶을 궁극으로 살아가는 자가 불자이다
원각경에서는 무명을 끊어야 깨달음을 실현된다.
생로병사의 원인은 12연기의 생멸문인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에서 볼 수 있듯이
무명에서 시작된다.
불교의 윤회는 무명으로 인해 일어나지만,
무아가 바탕이 되어,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허공의 꽃,
혹은 투명한 하늘에 생긴 구름으로 본다.
꿈속의 나는 진짜가 아니다.
힌두교의 윤회는 선인선과, 악인악과인 점은 불교와 비슷하나
무아사상이 없고,
카스트제도에 묶어 결정되는 한계가 있다.
수행을 하면 적게 먹고 적게 자고 활기 넘치는 상태가 된다.
스승이 있어야 나를 바꿀 수 있다. 믿음이 근본이다.
죽을 때 까지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목적으로
불교를 믿어서는 안된다.
무명을 통한 나타나는 업식이 윤회하는 것
그러므로 깨닫기 전에는 윤회가 있다.
사대와 육진을 가지고 분별을 일으키고
내가 알고 있는 몸과 마음은 참나가 아니다.
실체시하면 세계가 실체로 보이는데 이것이 무명이다.
마치 우리가 옷을 입고 있지만 옷이 내가 아닌 것처럼
몸을 가지고 있지만 몸이 내가 아니고,
나타나는 생각도 나가 아니다.
텅빈 참마음이 바탕에 인연과 조건따라 나타나는
생각들은 참마음이 아니다.
거울(참마음)속에 비친 영상(현상)은 거울이 아니다
반야심경에는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해 오온이 공함을 통찰하고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님을 보는 것
몸과 생각, 욕망 질투 등은 내가 아니다.
단지 ‘일어나는 구나’를 알아차리고 나라고 동일시하지 않아야 한다.
물동일시(나와 동일시 하지 말라)
막실치시 (실체가 없음을 보라)
진심묘용(비어있는 가운데 모든 작용이 일어난다)
오온(나)은 안이비설신의가 생성향미촉법을 만나서 나타나는 것이다
알아차려진 내용은 하늘의 구름으로 알고 무시하고
마하반야바라밀을 관하면
번뇌가 줄어든다
불만이 일어나면 감사로 대체하라
불만과 감사는 공존하지 못한다.
힘이 빠지고 빈도수가 줄어든다.
우리는 일상에서 소욕지족을 하며
나머지 시간과 에너지는 수행에 두어야 한다.
모란이 피기 까지는
김영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슬픔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덜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치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