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3년 5월 셋째주(5/19) 일요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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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미디어팀 작성일2019.05.22 조회2,049회 댓글0건본문
불기 2563년 5월 셋째주(5/19) 일요법회
금주의 법어 - 정법(正法)을 배우자
금주의 법사 - 광덕스님 영상법문
반가운 비로 촉촉해진 석촌호수 나뭇들이 아름다운 5월 19일 일요법회는 ‘하안거 결제 및 바라밀 기도 입재’식으로 거행되었습니다. 지난 주 ‘부처님 오신날’ 장엄하던 불광법회가 72기 기본교육생 참여한 오늘 법회는 엄숙하게 진행되었습니다. .
삼귀의와 천수경 독송, 거불, 칠정례(예참), 바라밀정근, 축원, 반야심경을 한 후 광덕스님 영상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내용> 정법을 배우자
광덕스님께서는 시대 구분에서 나오는 정법, 상법, 말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법에 대응하는 정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시대 구분에 따르면 부처님이 나신 때부터 한 오백년을 법(法)과 행(行)과 증(證) 이 세가지가 갖추어진 시대로 부처님의 법도 있고 법을 행하는 진실한 수행자들도 있고 수행을 해서 법력을 갖추게 되는 정말 도를 닦아서 도를 통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 시대를 정법시대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천년동안을 법도 있고 여실한 수행도 있는데 좀처럼 증득해서 깨닫는 일은 드물다해서 상법(像法)시대라 하고, 그 다음 만년을 법을 있는데 여실한 행도 없고 증도 없는 말법(末法)시대라 하였으며 그 다음은 법멸(法滅)시대라고 합니다
사법을 정확히 알아두시지 않으면 사도에 떨어집니다. 사법은 형상으로 구하는 것, 자기의 본 성품인 본성 외에 어떤 형상으로서 무엇을 보았다거나. 무엇을 얻으려고 한다거나 들으려고 한다거나 들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형상 가운데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것으로 형상을 법으로 아는 것, 이것이 삿된 것입니다.
정법은 그 삿되 것이 아닌, 형상을 구하지 않고 자기 성품 가운데서 보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거나 수행을 해서 마음이 고요해지고 맑아질 때 집중하고 안정되었을 때 자칫하면 무엇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염불을 하고 있었든지 관법을 하고 있었든지 그런 경계가 되었을 때는 자칫 경계가 눈으로 보일때가 있습니다.
그 보이는 것은 자기이 마음이 맑아져서 나타나는 것이거나 자기의 마음이 집중이 되어 볼 수 있었던 것이거나 아니면 자기 마음 가운데에 어두운 경계가 드러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계가 보인 것을 대단하게 여겨 추구하면 염불하다가도 비뚤어지고 진언을 외우다가도 잘못 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경계를 쫓아가 잘못된 길로 빠지고 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법을 닦은 사람은 형상을 구하지 않습니다. ‘일심본무상(一心本無相);이라고 한 마음 자리 이 깨달음의 도리. 이것은 본래 형상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맑으며 그야말로 구할 것이 없는 맑고 뚜렷한 자기의 본성이 드러날 뿐이며 형상이 없습니다. 형상을 보았다면 그만큼 비뚤어지는 것입니다. 형제들 가운데서도 아마 염불을 열심히 하거나 그 외의 수행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떤 경계가 나타날 때가 있는 것을 경험해 보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이런 경계가 나타나면 나타났나보다 하고 알고 ’‘이것은 내 마음이 맑아지지 않거나 내 마음에 있는 것이 나타난 것이구나’ ‘라고 여겨서 스스로 수행으로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염불하고 있을 때 경계가 나타났다면 다시 염불을 열심히 하면 경계가 사라집니다. 경계가 나타났을 때는 염불을 하다가 생각이 멈취졌을때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이 멈춰서 혼혼(昏昏)해졌을 때 경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조금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만 마음을 돌이켜서 본래 닦는 정신을 골몰히 돌이키면 그런 형상이 바로 없어집니다. 땅에 마른 흙덩어리를 갖다 던지면 먼지가 뽀얗게 이는 것처럼 온갖 것이 나타나더라도 한 생각 돌이키면 마치 물을 뿌린 것처럼 맑아집니다. 생각은 원래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가 어렵습니다. 입에 무엇을 물고 다른 것을 또 물려면 물었던 것을 뱉어내야 하듯이 일심 가운데 수행하는데 일심 아닌 경계를 보았거나 형상을 보았으면 그것은 벌써 일심을 놓쳤을 때입니다. 일심 가운데 다른 경계가 들어 온 것입니다. 이 점은 우리 형제들 잘 살피셔서 공부하시길 바라고 만일 불확실하다고 하면 아시는 분이나 저에게 물으십시오.
‘정법은 형상이 없는 것이다. 만인의 본성인 부처님 성품은 본래 형상이 없는 본무상(本無相)이다.’ 이렇게 아는 것이 정법을 배우는 자세입니다.
정법에서 첫째로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지금 만인의 본성이 불성이며, 불성은 형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일체의 지혜 일체의 공덕이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일체가 자성 공덕이고 일체가 형상이 없는 본무상 가운데서 나타나는 빛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오직 본성․ 불성․ 진리만 있고 그밖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뿌리에 들어가면 그 진리 본성뿐이요 대립된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두는 공동체고 동일자며 동일 법성입니다. 동일자라고 아는 것은 정견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일자인 까닭에 서로 위해주고 섬기고 받들어 주고 자비로써 대하는 것이 올바른 진리입니다. 그렇지 않고 원수니 보복이니 투쟁이니 하고 대립 감정을 북돋우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자기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모두는 하나의 진리 가운데 있는 공동체이고 동일체인데 대립하고 파괴해서 그 결과로 자기가 무엇을 이루려고 생각하는 것은 깊이 있는 자기를 파괴해 버렸기 때문에 자기에게 손실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견, 즉 정법의 견해라고 하는 이 바르게 보는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을 대립으로 보지 않고 동일 법성, 동일자로 보는 것입니다. 무대립으로 보며 협동관계 공동체로 보는 것입니다. 항상 자비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진리를 쓰는 정법의 자세입니다. 정견에서 선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무한대의 부처님 공덕성이 자기 자신에게 원래로 갖추어진 것을 믿고 그것을 끊임없이 내어 써서 발휘할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게 있는 완전하고 태양처럼 밝고 지혜로운 부처님의 무량공덕 성품을 막힘없이 일체에 쓰이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큰 원이 나오는 것입니다.
불교 전체의 수행이 큰 원을 세워서 마침내 ‘일체중생(一切衆生)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를 발원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런데서 오는 큰 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큰 원으로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아주 지극히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여기는 근본가치로서 대하고 그 근본가치 인간가치에 대한 존중, 그것을 자기와 개인적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를 통해서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이 사회체제 제도를 통해서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공동협동을 통해서 성장한다고 하는 입장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법의 입장에서 보면 끊임없는 정진이 나옵니다. 보현행원품에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더라도 이 보현의 원은 다함이 없다’고 나옵니다만 이것은 끝없는 정진입니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진리가 모든 사람을 섬기고 자기 자신 가운데 있는 무한 공덕을 내어 쓰고 진리대로 살고 진리대로 환희하는 것은 자기 진실생명의 생리인 까닭에 끊임없이 그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정진 이것이 우리 불자의 길이고 정진을 하는 입장입니다. 정진을 쉬고 포기하는 사람은 진리가 원래 살아서 움직이고 끊임없는 정진상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해태(懈怠, 게으름)의 굴에 빠져드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자기가 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살은 끊임없이 정진하여 쉬지 않는 것이 정법 정견에 서는 입장입니다. 무엇이 정법인가? 이와같이 본성 청정을 믿고 본성이 무한 공덕을 믿고 무한 공덕을 끊임없이 자기 자신 가운데서 실현해 가는 것, 이것이 정법에 입각한 정견행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무엇이 삿된 것인지를 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형상으로 보려고 하는 것,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지고 특별하게 알아지는 그 무엇을 법으로 알면 큰일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호법발원한 긍지를 새로이 하고 우리의 행이 누구보다도 참되어서 호법불자다운 진실이 우리의 행 가운데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고난의 근원도 남이 갖다 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나타나 있는 것을 알아서 경계에 당하더라도 항상 평화롭고 유화하고 조화로운 마음으로써 대하고 고난을 당해서도 오히려 웃으며 대하는 지혜를 끊임없이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불광의 바라밀행자들, 특히 호법발원하신 형제들이 이 지혜를 써서 어떤 경우에도 태양처럼 웃고 사는 어떤 거친 환경에서도 항상 밝게 사는 지혜와 자세를 지켜 간다면 그것이 바로 행으로 하는 정법입니다. 우리 형제들 모두가 일상 가운데서 이렇게 바라밀 태양이 빛나서 행으로써 전법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어서 합창단이 <해탈의 기쁨>으로 음성공양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햇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금주의 다짐>
내 생명에 깃든 무진장의 힘을 긍정하고 발굴하면 무진장의 창조가 계속되고 무지와 나태로 방치하면 무
진장의 보고도 아무 구실을 못하게 된다. 정진하자. 나에게 깃든 힘과 이웃과 나라와 중생을 위해 여지없이 발휘하자. 자비와 능력은 쓸수록 발달하고 희망과 행복이 보다 높이 증진되는 것이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이어서 수석부회장 원각 오세룡 수석 부회장이 ‘부처님 오신날’ 법회 및 행사 관련 보고를 하였습니다. 지난해보다는 조금 축소하여 진행하였으며, 회주스님과 스님들께서 협조해주시고 사무직원님들과 여러 법우 형제분들의 협조로 원만히 이루어졌습니다. 앞으로는 법우형제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하였습니다.
노원구, 중랑구, 동대문구 바라밀 행자들의 봉사로 즐거운 공양이 이루어졌네요.
불광법회를 위해 곳곳에서 봉사하시는 불광바라밀 행자님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