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3년 8월 24일 관음재일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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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미디어팀 작성일2019.08.26 조회2,091회 댓글0건본문
불기 2563년 8월 24일 관음재일법회
불광사 보광당에서는 관음재일법회가 열렸습니다.
일요법회는 일반인 거사가 집전을 하는 것과 달리 관음재일법회는 모든 집전을 스님들이 무려 여섯 분이나 참석하셔서 진행을 하셨습니다.
워낙 신도가 많은 불광사이니 만큼 개인적인 축원은 할 수 없었는데 모든 스님들이 동원되어 한분 한분 이름과 주소와 생년을 불러가며 축원을 해 주십니다.
스님의 목소리는 무아지경의 경지에 몰입이 되어 잔뜩 고무된 목소리로 염불을 하십니다.
진효 주지스님의 설법이 계셨습니다.
원고 없이 두 눈으로는 광채를 번득이며 강약과 고저장단이 잘 어우러진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설법을 해 주셨습니다.
진효 스님 설법
여기 우리가 지금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내야 합니다. 이날 오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우리가 굳이 2019년 몇 월 며칠 몇 시 이렇게 정리를 해 놨습니다만 이 날짜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 날짜가 있는 것이기는 합니까? 이건 언제부터 이 날짜를 정했을까요? 오늘이라고 하는 이것은 첫날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이 날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아도 이 찰라 이 순간은 영원히 다시 올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옛날에 왔던 그 시간도 아니요 앞으로 올 시간도 아니야 오직 첫날이며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이 순간 이해가 지면 우리가 살아왔던 모양 그대로 기억되어 져서 역사 속으로 삶 속으로 그런데 이 날이 같지도 않아요.
그런데 저는 가끔 강가에 가서 강을 내려다 보기도 합니다. 옛날에 장안사 건너편에 있는 일광 해수욕장에 가서 바다를 바라보았어요. 일광은 동해바다도 되고 남해 바다도 된답니다.
일광 해수욕장 가보셨나요?
부산에서 울산 쪽으로 가면 좌천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불광사 사숙님이 장안사 주지를 한 적이 있는데 해수욕장 이름이 일광이예요..
일(日)이다고 하는데 오늘이라고 하는 거잖아요. 오늘의 광명의 해수욕장이다 그런 말이에요.
제가 오늘 얘기의 주제를 말하면서 지금 내가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을 우리가 만든 건가요? 본래 있는 거지요. 그냥 우리가 편승되어 있는 거죠. 스님은 법문 하다가 제발 질문 좀 하지 마세요 하는 요청도 있는데 나 혼자 떠들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제가 이렇게 던질 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냥 살면 되지 평생 바다의 그 얼굴도, 오늘이라는 이 날도, 똑 같은 얼굴 똑같은 날은 하나도 없어요. 우리 얼굴만큼이나 다르다고 시간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습니다.
무엇을 수행하고 계신 겁니까?
우리가 부처님께서 우리한테 말씀해 놓은 수행의 방법 오늘이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부처님은 봤을까? 대 선사들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日日是好日이다. 오늘이 그냥 좋은 날이다. 아주 심플하고 좋은 말인 것 같애 그런데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제 뜻이예요.
오늘이 정말 좋습니까? 여러분들과 대선사가 말했던 그 분이 좋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좋아야 합니까? 내가 좋아야 日日是好日 이지 내가 좋지 않은데 무슨 헛소리 내가 괴로운데 그렇죠?
이분 대선사께서 뭐라고 얘기하셨으니까 그 말에 동의가 돼? 내가 아픈데, 괴로운데, 이날은 좋은 날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싫어, 그럴 수도 있죠.
동의가 안돼 부처님은 뭐라고 했습니까?
그 대선사는 日日是好日이다. 멋지게 얘기를 하셨는데 오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오늘이라고 하는 주제를 조금 확대를 해 보면 오늘이 합쳐지면 한 달이 되고 더 합쳐지면 일년을 사는 것이고 더 합쳐지면 일생을 사는 겁니다.
부처님이 사바세계는 감인(堪忍)의 세계다 했던 말과 日日是好日이라는 말은 정면으로 대치됩니다.
사바세계는 고통의 세계입니다.고 하는 부처님의 말씀하고 어떻게 다른가. 어느 말이 맞아요. 중 말이 맞습니까? 부처님 말씀이 맞습니까? 아니면 내 말이 맞습니까? 여기에 자기 주관을 싣지 못하면 종교도 허망한 것이 됩니다.
종교를 허망하게 만들면 부처님의 말씀을 허망하게 만드는 짓이 됩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오늘은 是好日입니까? 사바세계는 고통의 세계입니까? 그 중간쯤 됩니까?
잘 모르겠습니까? 전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하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같이 한번 풀어 봅시다.
좋든 나쁘든 이 순간이 합쳐져서 일생이 됩니다.
이것이 합쳐지면 업이라는 것이 형성됩니다.
나라고 하는 어떤 형체가 보여집니다.
실이 모여지면 옷감이 됩니다. 실을 가지고 짠 것을 옷감이라고 하잖아요. 오늘이라고 하는 것을 날줄과 씨줄로 짜면 그것이 내가 되는 겁니다.
그것이 인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여기에는 누가 개입할 수가 없어, 누가 시킨다고 그대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은 내가 짜는 것입니다.
누에고치가 자기집을 자기가 짖는 것입니다. 여기가 잠실 벌 아닙니까? 잠실 석촌동이잖아요. 부처님 경전 하나도 몰라도 되고요 우리가 사는 잠실 석촌동 동네이름 우리가 사는 현실, 오늘, 이 현 공간.
잠실은 누에고치가 자기 집을 짖는 곳이예요.
금강반야바라밀. 어려운 거 그렇게 읽는다고 금강반야바라밀이 바로 읽어지는 거 아니예요. 금강경 원전으로 읽으면은 금강반야바라밀이라는 말 없어요. “벼락으로 쳐라” 예요. 전혀 다른 말이네요. 한문으로 그렇게 멋있게 써 준 것이지요. 잠실 이게 금강반야바라밀이예요.
지금 이 순간 여기 오늘 현실 잠실동 여기에 우리가 둥지를 틀고 있는 겁니다. 나의 실로 나의 집을 짖고 있는 것이에요.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해 주신 거예요. 그 소중한 시간에 그 소중한 광경을 볼 수 있는 눈으로 남의 허물만 보지 말고, 내 허물은 전혀 없죠. 눈은 그렇습니다. 눈이 하는 짓이 그래요.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할 때 눈을 맨 앞에다 놓은 것입니다. 눈아 제발 그러지 말아 그래서 무 딱 한마디 하신 거예요. 눈아, 귀야, 머리야, 생각이야, 좀 잘 해라. 눈이 참 희한하죠 이 세상의 온갖 허물은 다 봅니다. 자기 허물만 빼고 그렇죠. 이 세상 소리를 다 듣습니다 귀가. 온갖 세상을 머리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의식이라고 하는 애가, 그런데 정녕 봐야 할 오늘, 이 현실을, 이게 다시 오지 않아요
저 흘러가는 바닷물 같아서 매 순간 매 찰라 똑같은 순간이 없는 거예요. 우리는 착각하고 있죠. 한번 미운 사람은 영원히 미운 거예요. 한번 마음이 틀어지면 영원히 틀어져 무슨 일편단심 민들레도 아니고 그렇게 마음 먹으면 절에 오는 사람 아닙니다.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 안 하셨어요. 나는 한번 미운 놈은 끝까지 미워, 혹시 그러고 사는 것은 아니죠?
오늘은 관음재일입니다. 그게 자비하고 부합됩니까? 부처님 가르침하고 부합됩니까? 오늘은 가장 소중한 영원히 다시 만 날수 있는 그날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늘 일어나셔서 오전 아침 일찍 절에 오셨으니까 이 마음 잘 유지하시고 오늘 하루의 옷을 잘 짜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광자 덕자 큰스님의 말씀하셨던 우리는 무량공덕 생명의 모든 완전 구족자로 완성자다. 누구를 비방해도 안되고 비방 받을 자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중 누구를 비방했으면 오늘 이 자리에서 바로 참회하십시오.
비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누구를 비방하고 지적 질하고 할수 있는 재주는 누구든지 다 갖고 있어요.
아가도 엄마가 마음에 안 들어, 그렇지 않나요. 우리는 아가가 아니잖아요. 절에 오는 어른들이잖아요. 부처님을 만나려는 수행자가 아닙니까? 아가 같아서야 되겠습니까?
부처님이 우리를 당신의 언어로, 당신의 신념으로, 우리한테 나는 광명을 놓았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의지해서 가야 할 광명 같은 것이에요.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 아니라, 지나가는 소리로 들을 것이 아니라, 광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를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정법입니다.
반야선에 올랐을 때 천수경에 나오죠. 반야선에 속히 올라지이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 도량의 큰 반야선에 올라 탄 것입니다.
오계를 잘 다스리고 殺盜淫妄酒(살도음망주) 오계가 다른게 아닙니다. 몸으로 살아 있을 때 가능한 겁니다.
물이 끝없이 세상을 돌고 돌듯이 오늘 지은 이 업이 내일의 나의 얼굴이 되고 나의 업이 되고 나의 복이 됩니다.
물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물이 때로는 우유 물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뱀의 독이 될 수도 있고 나무의 물이 될 수도 있고 저 바다의 물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표정을 짓더라도 내가 명등회의에 가니까 저보고 좋은 말씀을 해 주시더구먼요 스님 눈이 무서우니까 제발 웃어 주세요. 그러시는데 제가 보살님들의 법문을 듣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내가 여기에 와서 웃지 않는구나 그렇게 법문을 주셔서 보살님들께 되게 고마웠어요.
우리 서로 누구한테 웃으라고 얘기하지 말고요 본인 마음으로 웃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웃지 않는 것은 여러분이 다 볼 수 있지만 저도 여러분 한번에 다 볼 수 있어요 본인은 웃는가 묻고 싶었는데 내가 이 자리에서 묻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진짜 행복합니다. 내가 여러분 만나기 전에 제가 잘 살지 않았겠어요? 잘 살았을 것 같아 못 살았을 것 같아요. 잘 살았어요
행복하게 재미있게 똑 같습니다.
여러분을 만나던, 오늘을 만나던, 세상을 만나던, 이 공간을 만나던, 저는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일도 대수롭지 않게 봅니다. 진짜입니다. 여러분도 제 애기를 들었으니까 오늘 이 순간부터 인생별거 없습니다. 대수롭게 보십시오. 대수롭게 본다는 얘기는 크게 본다는 얘기야 대수롭지 않다 큰 게 큰 것이 아니고 작은 게 작은 것이 아니고 그 또한 바닷물 같아 끊임없이 변한다.
이게 바로 제행무상입니다. 이떤 것이든 항상 하지 않다. 항상 함 자체가 병이야, 항상 해도 안됩니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함께 외치겠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성불하십시오.
스님들도 가죽 운동화를 신는 것이 일상화 된 요즘 아직도 검정고무신 신는 스님이 계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