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법문] 진리의 순수생명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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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20.03.28 조회1,971회 댓글0건본문
금주의 다짐
"매일 아침이 우리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다. 부처님의 완전한 지혜와 위덕이 나에게서 넘치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자. 비록 어려운 문제를 당하더라도 고난을 생각하지 말자. 오히려 나를 향상시키는 소재로서 감사하며 맞자. 불신력 앞에 만사는 필경 해결된다."
금주의 법문
진리의 순수생명을 살자
(1983년 6월 4일, 잠실법당)
☞ 육성법문 들으러 가기『BTN반야의 지혜로 세상을 밝히다 금하당 광덕스님, 방영일 : 2018.04.17 (화)』http://www.btn.co.kr/btntv/detail.asp?ls_StSbCode=CATPR_15&PID=P979&DPID=77475
우리들 기도를 한다, 정진을 한다 하고 목표를 세워서 무엇을 한다고 하는 것은, 이 인간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있어서 모든 장애가 있고 내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한다고 하는 문제가 전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좀 그냥 평범하게 넘어갈 대목이 아닙니다.
우리들 믿음에 의하면 원래 이 국토는 죄업의 국토가 아닙니다. 부처님의 국토고 온 우리, 온 세상 어느 시간 어느 구석도 부처님의 자비하신 진리광명이 충만하지 아니한 때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온 생명, 온 국토, 온 존재가 진리의 광명, 진리의 위신력의 표현인데 어찌해서 우리들은 장애와 고난과 부여의가 있느냐? 부처님의 진리세계는 그러면 어떤 한정된 국토, 말하자면 천국이라는 국토만 있거나 불국토라는 국토만 부처님 광명이 미치고 우리 범부세계 하고는 별도의 것이냐? 이것을 우리들은 기도하기에 앞서서 일단의 의심이 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정리를 좀 하셔야 합니다. 이 생각이 깨끗이 정리가 돼야 합니다.
원래 진리세계, 진리세계는 여기는 진리세계고, 저기는 범부세계고 하는 차별이 없습니다. 온 세계, 온 시간이 그대로 진리의 표현이라고 하는 말은 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진리의 성품 이것은 뚜렷하고 원만해서 일체에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더라. 다만 사람들이 미혹해서 마음이 천 가지 차별로 움직이기 때문에 마음이 경계를 보고, 내 생명이 진리의 생명이건만 진리가 진리 자체로 살지 아니하고, 진리가 진리 자체에 광명, 슬기로움, 신령한 그 자체를 자기가 인정함으로써 자기가 자기에 속아요.
경계를 보고 경계를 인정함으로써, 경계와 인정하는 자와 인정함으로써 얻어지는 자와 이런 분열이 생겨 버려요. 최초에 진리세계 뿐인데도 불구하고 중생세계가 생긴다고 하는 것은 중생세계가 확정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진리세계는 엄연히 있건만 진리세계에서 무단히 망념을 일으켜서 거기서 망념의 구름을 일으켜서 구름 속에 파묻히기 때문에, 마치 꿈꾸는 것처럼 실지는 없건만 그 사람의 의식 속에서만 그런 세계가 나타나는 거예요.
마음이 천 가지로 차별해서 이런 말들은 바로 망념이 동해서 망념된 경계가 동했기 때문에 이 동한 경계에 따라가지고 안팎으로 경계에 집착하고, 처음에는 경계를 보고, 경계에서 좋고 나쁜 것을 따지고,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을 멀리하고 그 다음에 방어책을 세우고, 거슬리면 성을 내고 이런 식으로 진리 대광명 가운데 본래 있으면서도 경계를 인정함으로부터 거기서 차별을 하고, 취착 분별하고 이렇게 해 가지고 미움과 애착이 서로 교차되고 이런 가운데서 첩첩이 그 망념의 벽이 두꺼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제 제가 「생의 의문에서 그 해결까지」라고 그러는 그 대목에 ‘중생의 시작, 세계의 시작’이란 것을 조금 적어 놓은 것이 있습니다만 그 기본 논리가 이것입니다. 진리의 세계, 부처님 세계는 없는 망념이 막연하게, 막연히 그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망념의 토대가 돼 가지고 중생세계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꿈꾸듯이 우리의 범부세계가 이렇게 있어서 인간은 인간대로, 아귀는 아귀대로, 천상 사람은 천상 사람들 제 나름대로의 미혹한 상태를 가지고 자기 세계를 만들어서 형성하고 있지만, 그리고 미혹한 사람이 그런 세계에 살고 있지만 깨달음의 세계, 진리의 세계는 조금도 변함이 없어.
진리의 세계, 부처님 국토는 조금도 변치 않고 그대로 변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들의 미혹한 생각으로 인해서 제각기 업을 짓고, 제각기 과보를 받아서 그 속에 빠져드는 거야. 그러니까 지옥에 빠졌다 할 정도의 업을 지었다 하더라도 그것도 하나의 망념이야. 망념의 순간이기 때문에 한 번의 지혜에 사무쳐버리면 지옥변생연화지(地獄變生蓮花地) 지옥세계가 금방 변해 가지고 불국토, 연꽃 피는 국토가 되어 버린다. 그런 말이 거기서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얘기가 좀 어려운 얘긴 것 같습니다만 실로는 부처님의 국토, 실로는 은혜의 세계가 온 구석, 온 시간, 온 장소 빈틈없이 충만 돼 있건만 우리들이 무단히 경계를 집착하고, 망념을 일으키고, 거기서 분별하고, 취착하고, 거기서부터 증오를 일으키고 혹은 애착을 일으키고 이것이 반복하는 가운데에 두꺼운 중생의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보면 중생이 되어진 것, 중생국토가 된 것은 누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야.
말하자면 인간세계가 이렇게 만들어내고 혹은 천상세계를 만들어 내고 혹은 지옥세계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 적당히 마음에 들면 올려주고 내려주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 모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내 생활 터전이 일단은 나 자신의 여하에 따라 가지고 평화도 되고, 전쟁도 되고, 형무소도 갈 수도 있고 또한 보다 즐겁게도 살 수 있고, 남한테 도움을 주어서 남에게 칭찬을 받을 수도 있고 자기에 달린 것처럼 온 국토, 온 세계, 중생 차별세계도 각자가 그와 같이 미혹해서 스스로 만드는 거여.
조물주가 있고 창조주가 있다 그러면 바로 자기 자신이여. 각자가 지어먹은 그 마음 상태에 따라서 어두운 마음을 지으면 어두운 세계가 나타나고, 밝고 착하고 거룩한 행을 하면 밝고 착하고 거룩한 세계가 나타나요. 그 정도에 따라 가지고 그 세계가 이루어져. 그렇기 때문에 지옥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 마음 바꾸면 상대가 바뀐 것이고 천국에 산다하더라도 천국을 나타나는 마음 상태로 바꿔 버리면 또한 그 상태도 바꿔 버려요.
이 기세간에 모두가 그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환경,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내 몸에 일어나는 현장까지, 현실까지도 우리의 마음 씀씀이에 따라 가지고 순간순간 바뀌는 겁니다. 표정이 바뀌고, 심장의 고동이 바뀌고 또 얼굴빛이 바뀌고 이렇게 해 가지고 우리 몸뚱이에 대한 윤곽마저 바뀌는 이것들은 우리 마음 쓰기, 감정 쓰기 따라서 바뀌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부처님의 광명국토, 진리세계는 일찍이 변함이 없다. 이 대천세계가 찬란한 태양광명 가운데 그대로 있는 것을 장님이 눈을 감고 스스로 어둡다 그러고, 굴을 파고 땅 속에 들어가서 깜깜하다고 그러고 하는 것은 태양이 어둡게 한 것은 아니야. 오히려 이 비유는 태양이 미치지 못하는 굴이 있다고도 비유가 됩니다만 본래 부처님 국토는 그렇지 않은 거야. 우리가 살고 있는 온 세계가 이러한 진리국토 다만 미망, 탐착, 취착, 삼독심 등에 의해 가지고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꾸면, 꿈을 깨면 즉시 그 국토가 광명국토임을 아는 거야. 그게 법성, 부처님의 진리의 성품 이것은 원만하고 원융하다. 고금의 조금도 차별이 없이 본래로 구족하다. 만 가지 공덕이 그대로 구족하다. 다만 지연불각(只緣不覺) 다만 깨닫지 못하는 이것, 이것 때문에 만 가지로 생각을 일으키고, 번뇌를 일으키고, 망상을 일으키고, 취착해서 심동천차(心動千差) 마음의 천 가지 차별로 움직이고 그와 같이 해서 업을 짓고는 그래가지고 과보를 받는 것이 중생세계다.
이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미혹의 세계, 어둠의 세계, 고난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미혹의 세계, 고난의 세계를 만들어 낸 근본 마음을 돌려야 할 것이며 동시에 우리들 생명에 원래부터 저물지 않는 태양 국토라고 하는 진리의 태양 국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조금 더 반복을 합니다만‘육체다, 물질이다’가지고 있는 이것은 원래는 내 마음의 평화한 진리 그대로의 마음 상태에서 거친 생각의 파동, 거친 염파를 일으켜서 그 염파의 차이에 따라 가지고 육체화, 물질화가 진행돼서 국토가 달라지고 인간세계가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비록 겉모양은 천 가지 만 가지로 차별이 나오지만 그 깊은 속은 부처님의 공덕세계고, 깊은 속은 진리뿐이다. 저는 이것을 ‘불성’이라고 그래 왔고, 경에 말씀대로 빌려서‘법성’이라고도 그러고 또는‘진여’라고도 그럽니다. 우리들은 이 자리에서 우리들의 ‘순수생명’이라고 이렇게 봐 와도 좋을 겁니다.
말하자면 우리들의 순수생명 상태는 바로 부처님의 광명이 끊임없이 빛나고 있는 그러한 완전무결한 진리, 그렇기 때문에 순수생명 자체에는 항상 화합과 환희와 성취와 그리고 건강과 용기와 자신이 이 순수생명 가운데 너울치고 있는 것이 생명의 참된 모습입니다.
이것이 우리 불광(佛光)에서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마하반야바라밀의 세계, 이것은 바로 내 생명 순수생명이고 바로 부처님의 공덕세계고 부처님의 생명입니다. 부처님이 마하반야바라밀로 바라밀을 이루어서 성불하셨다고 그러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성불할 수 있는 성불의 근원적인 힘인 마하반야바라밀이 내 생명의 원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우리는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표면을 덮고 있는 현상들 고난이다. 장애다, 어려움이다, 미움이다, 사랑이다, 절망이다 하는 이런 것들은 미혹해서 나온 것인 까닭에 꿈속에 있는 것이고 공상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괴롭고 어둡고 나쁘다 하더라도 그것은 없다.
『반야심경』에 아주‘무(無)’그랬습니다만 그건‘무’다. 미혹의 세계에서는‘유(有)’지만 깨달음의 세계는‘무(無)’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무’라고 하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야 할 텐데. 그‘무’라고 그러는 사실 알지 못하고 눈에 나타나고 생각이 꽉 끼여 있고, 귀로 들려오고 하는 이 현상적인 세계를 집착하고 있다 보면 끝까지 진리에서 어긋나는 부조화 상태라든가, 불건전한 상태라든가, 고난 상태라든가, 장애 상태라고 하는 것이 계속해서 우리의 의식표면을 감싸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기본적인 이론을, 우리는 이해를 해서 우리들은 마음속에서 스스로의 완전을 회복하는 준비를 해야 해요. 이 완전을 회복하는 준비에 골격이 될 만한 것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각(自覺)’ 내 생명의 뿌리가 지금은 비록 꿈꾸듯이 혹은 망념에 덮인 듯이 혹은 구름에 덮인 것처럼 이렇게 내 세계가 답답한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가장 분명한 현실인 진리의 세계 이것은 바로 나의 생명 이 자체다. 내 생명 깊이에 있는 부처님의 무한 공덕세계를 믿어야 한다. 이것은 깨달은 자각이고,
둘째는 그러한 ‘자각된 상태’ 그 마음을 항상 지켜 나가야 한다. 이것은 ‘생각하는 힘’이라고 그럽니다.
지켜나가야지 이 생각을 놓쳐 버리면 바람이 들어옵니다. 이 생각을 놓쳐 버린다고 하는 것은 진리세계는 본래 내 생명에 깊이에 있는 부처님의 진리세계는 평화와 화합과 성취와 행복 이것이 원래 넘쳐 있는 것인데, 원래 있는 그건데 그걸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지켜보고 그 상태를 유지하고 밝고 기뻐하고 자신 있는 그런 맑은 상태, 너그럽고 착한 그런 마음 상태 그건 그렇게 순수하게 지켜 나가고 있으면 진리 공덕대로 살아가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고 그런 상태가 끊기고 중단하고 다른 생각이 들어왔을 때
바깥의 경계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것, 손으로 만져지는 것, 이론 지식으로 들어온 것 이러한, 그러한 진리와는 어긋난 상태에서 상태를 받아들이면, 마음속에 받아들여 마음에 담아 버리면 그것은 중단이 되어서 불행의 시작은 거기서 와요.
첫째는 자각할 것,
둘째는 생각을 끊기지 않을 것, 그런 상태 자각 상태를 계속할 것,
사실 우리들은 말로 배우고 혹은 배우고 생각해서 뭐를 어느 경계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그건 그때뿐입니다. 그때뿐이고, 금방 귀에선 들려오기를 누가 나를 거슬리는 말을 해 오거나 혹은 나한테 좀 못 마땅하게 누가 대해 오거나, 좋지 않은 것이 눈에 보이거나 하면 그건 간 데 없습니다. 간 데 없고 들어오는 것, 들리는 것 거기에 빠져서 상대를 해서 또 풍파가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런 만큼 내 마음 내 생명 깊이에 있는 진리세계는 그런 생각이 들어 왔을 때 끊어져 버려요. 중단돼요. 중단돼 버릴 때 우리의 마음의 표면은, 지어먹은 생각 내가 깨달았다고 알고 있는 생각은 어디 가버리고 밖에서 들어온 말하자면 거슬리는 것, 미워하는 것, 원망하는 것, 놀라움, 공포감 이러한 것들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와서 그것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주변에는 모든 것이 나타나 불행이 나타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 어두움이 깃들지 못하게, 불행이 나타나지 못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