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법문] 진리의 행자가 되자 (1985년 10월 2일, 잠실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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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20.04.25 조회2,264회 댓글0건본문
금주의 다짐
오늘은 이 몸이 가지는 가치,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가? 거기에 대해서 조금 생각을 하고 아마 이 몸 그러면 나 각자의 몸이든지, 서로가 보는 몸이든지 이 몸에 대해서 제각기 느끼는 게 있고 생각이 있을 겁니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합니다만 사람의 모습 하나하나는 제각기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개성 자체는 참으로 훌륭한 것입니다. 그 훌륭한 표현이 표정일 수도 있고 모습일 때도 있고 행동일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아름답다고도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맞지 않는다고 해서 추하다거나 나쁘다고 그렇게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쁘다 좋다 얘기는 어떠한 표준을 세워서 하나의 잣대를 만들어 가지고 그걸로 재니까 그렇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개성의 표현으로 볼 때 사람들의 표정과 그 모습들은 사실인 즉 다 아름답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나타나고 있는 겉모습, 그 모습은 제각기의 개성을 지니고 있고 그 개성의 바탕이 진리 바탕에서 나타난 것임을 생각할 때 우리들이 편파적인 눈을 가지고 평가하지만 않는다면 그 모두가 가장 가깝고 친한 사람이 곱게 보고 아름답게 칭찬하는 것처럼 서로 그런 존재가 아니겠는가 하고 우선은 생각을 합니다.
하여튼 우리들의 삶에는 이러한(생로병사) 기본적인 네 가지 고통 그 밖의 애증(愛憎) 사랑과 미움, 사랑은 헤어져야 하고(愛別離苦애별리고) 미움은 만나야 하고(怨憎會苦원증회고) 구하는 것은 제대로 다 얻지 못하고(求不得苦구부득고) 우리들은 끊임없이 변화해가고 그 다음에 오음성고(五陰盛苦)라고 그렇게 해서 팔고라고 그럽니다.
대개 우리의 겉모습인 육체를 놓고 평가해보면 어쨌든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어가는 것입니다만 그 가운데는 이러한 수많은 것들이 우글거리면서 우리들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순간순간 새 것을 향해서 살아가는 가운데서 혹은 잊어버리고 혹은 웃고 해가면서 그야말로 살아갑니다.
둥둥 떠가는 물거품과 같이 종국적인 종말은 정해져 있지 않아도 조만간 꺼진다고 하는 그러한 상황 가운데 우리들은 그저 포말 같은 생을 하고 있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닌가. 딴 사람은 몰라도 여기 계신 우리 형제들은 포말에 대해서 또 하나의 준비를 하고 계실 겁니다.
말하자면 오온이다 하는 것은 겉모습이고 반야바라밀, 반야의 눈, 지혜의 눈으로 본 바의 본성의 성품이 또 있다. 이것을 아마 우리 불광형제들은 아실 겁니다.
저는 다른 많은 얘기를 하지 않고 모두가 ‘참으로 있는 것은 무엇이냐, 참으로 나를 구원해 줄 것이 무엇이냐’하는 반야바라밀의 문제에 대해서만 항상 말씀을 드리고 그 밖에 지식이 되고 말장난이 되는 얘기는 별로 하지 않고 지내옵니다만 그러는 만큼 우리 형제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겉모습인 즉 이렇게 나무 이파리가 봄에 피고 여름에 무성하고 가을에 단풍지고 마침내 우수수 지는 것처럼 인생은 그렇게 변해가지만 인생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만 내 생명은 나무 이파리가 아니다. 나무 가지가 아니다. 새로 나온 싹이 아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항상 보다 커가는 나무의 생명, 나무의 뿌리에 깃든 생명, 봄이 오면 새싹을 피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고 또 한 생을 거듭하면서 반복 커가는 이러한 불멸의 생명이 나에게 있다. 반야바라밀의 생명이 있다, 불성생명이 있다, 법성 생명이 있다, 진여생명이 있다 하는 것을 우리 형제들은 아실 겁니다.
불법에서 구원을 말하고 불법에서 해탈을 말한다고 하는 근거는 여기에 있고, 부처님께서 부처님이 되신 것도 생사를 벗어나서 불멸의 법이 되신 것도 바로 이것을 보신 데서 이루어집니다.
겉모습은 오온이로되 우리의 본 성품인 즉은 불성이다. ‘반야바라밀, 나의 생명 부처님 생명 마하반야바라밀.’ 나의 진실생명인 즉은 부처님의 그 불성이요 법성이어서 반야바라밀, 이 바라밀이야말로 나의 진실생명이어서 불멸의 생명이다.
봄이 몇 번 가고 가을이 몇 번 되풀이 되고 찬바람이 불어와서 천지가 눈에 덮인다 하더라도 나의 생명, 땅 속 깊숙이 힘을 축적하고 새로운 봄을 기약하고 새로운 수확을 준비하는 그러한 불멸의 생명이 나에게는 깃들어 있다. 죽음이 아무리 닥쳐오더라도 이 죽음을 이겨서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 이것을 우리 반야바라밀을 믿는 형제들은 아실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아까 말했던 육체가 어떤 것이다 하는데서 본성생명 이것이 진실생명이다. 우리들이 육체로 살고, 물질의 공급으로 살고, 환경의 조건의 영향을 받아가면서 살아가되 나의 본성은 불성이다, 절대적인 자존이다.
절대적인 자존이라고 그러는 말은 바로 부처님이 불멸인 것처럼 진리가 불멸인 것처럼 내 생명이 바로 그 진리여서 불멸이다. 무한의 지혜와 덕성 능력이 갖추어지고 일체와 더불어 함께 한 완전조화를 이룬 상태에 있는 것이 나의 본성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지금 살고 있기를 육체로 살고 있습니다. 이 육체로 끊임없이 고통이 닥쳐오고, 끊임없이 죽음이 몰려오고, 끊임없이 불안의 바람이 휘돌아가고 있는 이 가운데에 오욕삼독이 부글부글 끊어가면서 그러면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겉모습입니다. 세찬 바람 앞에 흔들리는 나무나 그 이파리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본 생명인 즉은 불멸의 생명, 반야바라밀 생명, 부처님의 공덕생명 이것을 아는 까닭에 우리들은 이 부처님의 공덕생명, 불멸의 생명을 목표로 삼아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것을 자기의 본신(本身)으로 알고 믿음으로 삼고 살아가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불자의 삶에 독특한 겁니다.
이 불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가 육체인 줄만 알고, 물질인 줄만 알고, 욕심만 다 채우면 행복한 줄만 알고 세상은 다 이런 것이려니 하고 그저 요령껏 살아가는 것으로써 인생의 보람을 그 가운데서 거두려고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두는 낙엽을 모아 놓은 것, 가량잎을 모아 놓은 것처럼 세월이라고 그러는 바람이 불어가면 훅 날아가 버리는 거예요.
그러나 불법을 믿는 사람이야말로 불멸의 땅을 보고, 불멸의 땅을 가고, 불멸의 땅의 가진 공덕을 사는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들은 바로 바라밀, 저 언덕이라고 그럽니다만 완전, 이 부처님 땅의 완전 이것을 믿고 이것을 알고 그것을 자기 생명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값있는 사람이다. 살아가는 목표가 완전한 진리를 회복한다고 하는 성불이죠, 성불을 목표로 해서 살아가고 또 행의 가치는 성불을 목표해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나 혼자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될 때 우리 집안과 우리 사회 우리 국토가 한꺼번에 잘 되어가는 정토실현, 마침내는 불국토를 이루는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는 성불이지만 성불로 나아가는 과정 가운데 한 걸음 한 걸음 기쁨과 보람,행복을 구현해 가고 있는 삶 이것이 불법을 믿는 사람들의 삶이다.
지금 말씀드린 것을 돌이켜서 다시 정리를 해보면 육체위주로 살고 있는 삶은 그게 정말 미혹의 삶입니다. 육체 위주로 해서 공급하고 그것을 통해가지고 따뜻하고 그걸 통해서 안전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바람 가운데에 흔들리는 생의 존재여.
그러나 우리 불자들의 믿음처럼 본성생명을 믿을 때, 부처님 공덕생명을 믿을 때, ‘내생명이 겉껍데기는 육체지만 알맹이인 즉은 부처님 공덕생명이다. 부처님이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생활의 목표가 분명해서 생활의 목표 행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해 완전한 성불처럼 완전한 공덕을 성취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하루하루 생활은 행도(行道)야. 도를 행하는 거야. 우리들은 ‘보현행원’을 존중하고 닦아갑니다. 보현행원에서 예경하고 찬탄하고 혹은 공양 올리고 혹은 참회하고 혹은 함께 수희하고 오래 살기를 선지식께 청하고 혹은 청법을 하고 혹은 지은 바 공덕을 회향하고 뭐 여러 가지가 나옵니다만 우리들이 하루하루 생활 가운데서 부모님 존경하고 이웃 존경하고 형제 존경하고 친구 존경하고, 존경하고 예경하고 부처님께 잘하고 하는 예경생활 하루하루, 그리고 모든 사람 잘못하는 것보다는 잘 하는 것을 끊임없이 발견해주고 ‘그 사람의 본성이 부처님의 공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성불할 사람이다, 착한 사람이다’ 이렇게 지혜의 눈으로 깊이 그 사람을 봐 주고 찬탄해주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정말 깊은 우정을 주고 사는 이 삶 하루하루는 내가 기쁜 하루하루고, 내가 행복한 하루하루이지만 마침내는 그렇게 해서 성불하는 거여. 불법을 믿는 사람들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해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쌓아올려서 성불하고 불국토를 만드는 거여.
아까 처음에 우리들의 인간이라고 그러는 것이 오온의 몸통이요 삼독이 부글거리고 오욕이 또한 그 가운데서 치성하게 일고 팔풍에 휘둘려서 항상 불안 가운데서 살고 죽음을 순간순간 맞이해가면서 가고 있는 것이다. 이 불법을 믿는 사람들은 이와 같이 해서 성불을 향해 나아가고 불국토 완성, 건설을 위해서 나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쁨, 행복, 보람의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된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 이것을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다른 경우에 다른 분들을 만나볼 때 이것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요. 우리의 삶은 참으로 보람이 있는 것이다. 가치가 있는 것이다. 기쁨이다. 왜? 이 ‘왜’에 대한 대답이 없어 못 나와요. 못 나오고 ‘이 세상은 허망한 거여, 불안한 거여, 마침내 죽는 거여, 세상은 고(苦)야, 부처님께서는 다 고(苦)라고 그랬어.’ 기껏해야 그것까지만 알고 있다고.
겉껍데기, 허물어지는 것 이게 매달리고 있으면 그건 허무한 거야. 그렇지, 그건 고(苦)지.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니까. 부처님이 보시기를 겉껍데기는 그렇다 이거여. 그런 까닭에 “너희들은 겉껍데기에 매달려 가지고 그것이 좋다 최고다 그러지 말아라. 눈길을 높이 돌려라.” 그래 가지고 그 깨달음의 세계를 부처님은 말씀하시는데 깨달음의 세계를 보지 아니하고 겉껍데기 버려야하는 거기만 매달려 가지고 ‘아이구, 모든 것은 고(苦)다. 마침내는 변한다, 죽는다, 무상하다, 허망하다.’ 불교는 무상하고 허망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 이 말이여. 그건 멍텅구리, 불교는 모두가 허무하다고 그러고 고(苦)라고 하는 비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건 아직 불교의 반도 모르는 사람들이야. 겉껍데기를 말해요.
집착하고 있는 거,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거, 참으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거 그리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붙잡고 있는 육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이런 것이다. 이래서 허무하고 고(苦)다 하고 이렇게 해서 일러줌으로부터 거기서 집착을 떼고 진실에 눈뜨라’ 이거야.
우리들은 겉껍데기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고 진실 가운데 깃든, 내 생명에 깃든 이 진실로서 살고 진실을 살아갑니다. 뭐 특별히 견성(見性)을 해 가지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에요. 물론 견성을 하면 그렇게 살겠지만 견성을 못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행하면 되는 거여.
행하는 것은 우리 육바라밀도 거기 있고 「보현행원품」의 십종행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반야바라밀을 통해서 십종행원을 닦고 있는 것이 핵심입니다만 십종행원의 맨 앞에 나오는 예경하는 거, 부처님께 예경한다는 거, 이 부처님께 예경을 모든 사람 가족 부모, 모든 사람에게서 부처님을 보고 예경하는 예경, 찬탄, 공양 이것이 그대로 성불행(成佛行)이예요.
하루하루 성불하는 거예요. 보람이고 기쁨이고 성취하는 길이에요. 이렇게 볼 때 우리들의 하루하루의 삶은 고귀한 삶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불성생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불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고 정토불국토를 실현하는 사람이고 부처님께서 이 세상을 밝히고 중생을 구하고자 그 진리의 말씀을 닦고 남한테 전해주는 사람들이고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행복을 구현해 가는 사람들이다.
저는 이런 점에 있어서 인간은 아주 귀한 삶이고 인생은 고귀한 삶이라고 거듭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정말 귀하게 살아야 하고 값있게 살아야 하고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기쁘게 살고 값있게 살고 귀하게 산다고 하는 것은 이 본성생명 불성생명을 살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무얼 가지고 사느냐 이 말이야. 허무한 거예요. 단풍드는 것 같이 변해가는, 죽음을 세어가는 이 오욕팔풍이 뒤흔들고 있는 이 몸에만 매달려 가지고 이것에 보람을 누리고 한다는 것은 그건 안 되죠. 해봐야 허무하게 허물어지는 건대.
저는 오늘 우리 불광형제들의 삶이 정말 귀한 삶이고 값있는 삶이고 정말 보람 있는 삶이고 기쁨의 삶이다. 하루하루의 행복은 나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는 이렇게 닦아가고 닦아갈 때 내가 기쁘고 우리 집안이 기쁘고 우리 이웃이 기뻐지고 불국토가 되고 내가 성불하고 이웃도 성불한다. 이래서 확신을 가지고 하루하루 기쁨의 행을 닦아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