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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법정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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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6.01.25 조회1,6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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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길상사 창건8주년 법회서 법정스님 법문

     

올 한해도 저물어갑니다. 저는 오늘 (법회에) 나오면서 지난 한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스스로 제 삶의 자취를 되돌아 봤습니다. 과연 잘 산 한해였는지 잘 못 산 한해였는지 되돌아 봤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극락세계도 천당도 아닙니다. 사바세계 입니다. 인도어에서 온 말로, 사바사바 적당히 살아간다는 세상이 아니고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야 하는 그런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야할 세상입니다. 한문으로 감인(堪忍)세계라고도 합니다.


세월은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지도 마십시오. 사실은 세월은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세월 속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 세상이 가고 오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표현을 빌려 이야기 하면 시간 자체는 존재합니다. 이것은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 속에 사는 우리들 자신이 오고가고 변해가는 겁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또는 덧없다는 것은 시간(세월) 자체가 덧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세월 속에 사는 우리들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살기 때문에 늘 한결같지 않고 변하기 때문에 덧없다는 겁니다. 우리들 한 생애 중에서 한해가 이와 같이 빠져나갑니다. 해가 바뀌면 어린 사람들은 한 살이 더 보태집니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은 그 한살이 줄어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는 물과 같아서 한번 지나가면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잘살아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선방에 가면 이런 표지가 있습니다. ‘생사사대 무상심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생사입니다. 나고 죽는 일이 한순간도 제대로 처해있지 않고 오락가락하고 흔들리고 종잡을 수 없다는 이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이와 같은 생사가 너무나 우리 삶에서 크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생각 속에서 무엇을 바뀔 수 있는 무상이 있습니다. 한순간에도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겁니다. 늘 변한다는 거 에요. 그런 상황 속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가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엉뚱한 길로 비뚤어 나가고 또 한 생각 바로 정신을 차리면 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잘살아야 됩니다.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한번 지나가버린 세월은 다시 되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들은 이야기 입니다. 택시를 타고 길상사로 가자고 하니까 (택시)기사님이 ‘아 그 부자 절이요’라고 그러더라네요. 그 말을 전해 듣고 ‘부자 절’이라는 이 말이 제게는 한동안 화두가 됐습니다. 이 절(길상사)을 8년 전에 처음 만들 때에는 교회고 절이고 할 것 없이 너무 흥청망청하고 과소비하고 넘치고 지나쳤기 때문에 이 절만큼은 좀 가난한 절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보기에 물론 일부겠지만 (길상사를) 부자 절이라고 한다니 상당히 저는 착찹했습니다. 8년 전에 요정이던 대원각을 절로 만들 때 신문방송에서 얼마나 시끄럽게 떠들었습니까. 시가 몇 십 억 짜리 땅에 몇 천 평이다 해서 이래가지고 어떤 신문에서 그런 숫자들이 나와서 부자절로서 인상이 남았던가 봐요. 한동안 여기저기서 저한테 편지가 많이 왔습니다. 그 내용이 뭐냐면 도와달라는 거에요. 마치 이절이 내 개인소유인 것처럼 여기저기서 도와달라고 편지가 와서 아주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절 집을 고치느라 제가 빚이 모두 5~6억이 드는 판이었는데…….


부자는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흔히 다 부자 되고 싶어 하잖아요. 국어사전에 보면 부자를 정의하기를 살림이 넉넉한 사람,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고 간단명료하게 나옵니다. 부자란 항목에 속담집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부자가 더 무섭다’, 부자가 더 가난한 사람들보다 인색하다는 겁니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색하다는 겁니다. 또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요즘말로 하자면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멀쩡하다는 소리입니다.


‘부자에게도 한이 있다’는 속담도 있지요. 부자라고 해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부자가 되기까지 그 나름의 한이 있겠죠. 어떤 면에서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그렇게 긁어모아가지고 부자가 될 수 도 있었겠죠.


또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부자가 하나면 세 동네가 망한다’ 나는 이 속담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이들 속담은 농경사회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옛날에 대지주들 특히 조선조 말기와 일제시대 들어오면서 나쁜 지주들이 얼마나 사람들에게서 많이 수탈했습니까. 소설에도 나오잖아요. 부자가 하나면 3동네가 망한다는 말은 그만큼 수탈했다는 거에요. 이런 부자에 대한 속담을 찾아보면서 떠오른 생각이 오늘날 재벌과 옛날의 부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경전에 보면 탐욕이 바로 생사윤회의 근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탐욕이란 지나친 욕심, 분에 넘치는 욕심이에요. 자기 그릇보다 더 많이 채우려고 하는 그런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얼마나 만족할까요. 오늘날 우리들은 무엇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 가진 것만큼 행복한가요. (가진 것과) 행복은 물론 상관관계가 있겠지만 꼭 가진 것에 의해서만 행복이 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은 결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서 향기처럼 우러나는 겁니다. 똑같은 여건 속에서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행복을 누리면서 살고 어떤 사람은 불행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가진 것만큼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모두 너나없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건 아주 본능적인 소망입니다. 다 여유 있게 잘 살고 싶어 합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요즘 세계화라는 게 뭡니까. 미국 등 강대국들이 온 세계를 자기네 중심으로 세계를 시장화 시키겠다는 이런 뜻입니다. 이런 것은 새로운 경제적 침략전략입니다.


우리 사회에 있었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일인데요. ‘졸부’들이 있습니다. 정당한 노력에 의해서 재화를 모으지 않고 갑작스럽게 투기를 한다든가 갑작스럽게 부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부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자기 분수 밖의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 그릇을 채울 만큼만 지녀야 되는데 자기그릇은 컵밖에 안되는데 큰 동이를 채우려하니까……. 갑작스런 부, 그것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자면 로또복권이라는 것 있죠. 여러분도 가끔 사서 허탕치고 그렇겠지만 하루아침에 몇 십 억짜리 복권이 당첨된 사람이 있다면 나도 하나 사둘걸 하고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복권당첨 당사자는 그날부터 불행합니다. 뻔한 일이에요. 그것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다 드러난 사실입니다. 그는 사회적관계로부터 고립됩니다. 단절돼요. 또 지금까지 살아온 의미를 잃게 됩니다. 갑자기 많은 돈이 생기니까 지금까지 착실하게 피 땀 흘려서 차곡차곡 노력하며 살아왔던 삶의 질서에 교란이 생깁니다. 삶의 의미를 잃게 되는 겁니다. 또 가까운 친구와 친척들로부터도 멀어집니다. 잠인들 온전히 자겠어요. 이 많은 돈을 어떻게 간수하고 어떻게 쓸까 하고 잠도 잘 못잘 겁니다. 세상에 공것은 없습니다. 횡재를 만나면 반드시 횡액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인과관계입니다. 일종의 복권당첨도 불로소득이니 횡재입니다. 횡재를 만나면 횡액을 당하고 액을 불러들이기 쉽습니다. 물질은 그런 겁니다. 돈이라는 것은 혼자만 오는 게 아닙니다. 꼭 어두운 그림자가 같이 따라옵니다.


오래전에 이것도 제가 들은 이야기에요. 한 20년 전쯤 전라북도의 어떤 절에 어떤 스님이 기도를 해서 복권에 당첨됐었답니다. 그런데 복권에 당첨되자 갑자기 착실하게 기도하던 스님이 어쩔 줄을 몰라 하더니 먼저 자신의 은사스님 자동차를 사 드렸데요. 그리고 자기도 차를 하나 사구요. 그리고 그때부터 생각이 많이 달라진 겁니다. 결국 그 사람은 그 아래 동네 처녀와 눈이 맞아가지고 결혼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 또 들은 이야기가 이제는 택시기사를 하고 있답니다.


난데없는 돈이 생기면 반드시 삶이 불행해 집니다. 가난은 결코 미덕이 아닙니다. 우리가 ‘맑은가난’을 내세운 것은 지나친 탐욕에서 자기 분수를 지키는 것으로, 지나친 낭비와 흥청망청을 벗어나서 맑고 조촐하고 가질 만큼만 갖자는 뜻에서 ‘맑은가난’인 청빈(淸貧)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 가난 자체는 결코 미덕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잘 살아야 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다같이 부자로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세상은 가진 사람보다도 못 가진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정한 부자인가. 가진 것이 많건 적건 덕을 닦으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덕이란 무엇입니까. 이웃에 대한 배려이며 이웃과 나눠가지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재화는 원천적으로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세상에 나올 때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갈 때도 내가 가져갈 수 없습니다. 단지 어떤 인연에 의해서 내게 우주의 선물이 잠시 맡겨진 겁니다. 그것을 바르게 관리할 줄 알면 지속되고 그걸 바르게 관리하지 못하고 흥청망청 탐미하게 되면 곧 회수당합니다.


검찰이나 경찰이 그것을 회수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잖습니까.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물질이 생겼다고 할 때는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됩니다. 이건 내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게 맡겨진 것입니다. 설사 내가 정당한 노력으로 얻은 소득이라고 해도 내게 맡겨진 겁니다. 본래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바르게 쓰면 덕을 닦게 되는 거고 이것을 잘못 쓰면 복을 감하게 되는 겁니다.


가진 것이 많건 적건 덕을 닦으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잘사는 사람이고 또한 부자(富者)입니다. 모든 것은 한때입니다. 무상하다 말은 그것입니다. 늘 지속되는 것은 없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늘 부자라는 법은 없으며, 지금 가난하다고 해서 계속 가난한 법은 없어요. 무상하다는 것, 변한다는 것은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만치 의지적인 노력, 창조적인 노력을 통해서 축적할 수도 있고 또 흥청망청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한때입니다. 우리가 살만큼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무엇이 남습니까. 집이 남습니까. 자식이 남습니까.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지식이 됐건 재산이 됐건 또 뭐 그밖에 다른 재화가 됐던 간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져갑니까. 평소에 지은 업(業)입니다. 업이라는 것은 나쁜 업만이 아니라 좋은 업도 되고 악업도 됩니다. 평소에 지은 업만 그림자처럼 따라옵니다. 내가 평소 하루하루 살면서 닦은 그 업. 그것이 선업이 됐건 불선업이 됐건 간에 업만 그림자처럼 따라갑니다. 그래서 인도사람들 표현에 따르면 ‘그것이 이 다음 생을 이룬다’는 겁니다.


뭐든지 갑작스럽게 되는 것은 없습니다. 차곡차곡 쌓여서 되는 겁니다. 3~4살짜리 어린아이가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한다는 것은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 전생에 쌓은 그런 영향이 어떤 계기로 인해 싹이 트는 겁니다. 비근한 예로써 스님들 중에도 금생에 처음 머리 깎고 절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착이 안됩니다. 늘 2~30명씩은 택시운전사가 됐건 모두 다 나갑니다. 하지만 죽어도 떠나지 않는 스님이 있습니다. 업은 그런 겁니다.


중(스님) 모집한다는 광고 보신 적 있습니까. 부처님 당시에도 모집한다는 광고가 없었습니다. 신학대학에서는 신학생들을 모집해 여기서 사제도 만들고 목사도 만들고 그럽니다. 동국대는 승려를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종단에서 만든 일반 교육기관입니다. 승려를 만드는 기관은 아닙니다.


그런데 누가 오라 하지도 않는데 제 발로 때가 되면 걸어옵니다. 그것도 한 생각을 내가지구요. 한 생각 일으키는 것도 사실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한시가 바쁩니다. 전생의 업인 겁니다. 이는 유독 스님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하루하루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행을 하며 어떤 말을 하느냐는 것은 곧 다음 생애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스스로가 순간순간 살면서 이 다음의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길상사를 일부에서 ‘부자 절’이라고 한다니 과연 ‘부자 절’ 소리를 들을 만 한가를 여기사는 스님들과 여기 다니는 신도들이 함께 반성해야 됩니다. 과연 길상사가 부자 절이라고 부를 만한 그런 절인가요.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 가질 때 그리고 청정한 수행과 올바른 교화로서 만인이 믿고 의지하고자하는 그런 도량이 될 때 그때 비로소 이름그대로 길상(吉祥)스런 부자 절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이 부자가 되기보다는 잘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잘 사십시오. 부자스럽지 않게 잘 사십시오........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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