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상해에서 보타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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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6.01.25 조회1,704회 댓글0건본문
임시정부청사의 과거에서 잠을깨니 주변이 재건축 공사장으로 어지럽다. 공사현장은 비계(작업용 발판과 휀스용도)를 사용하는데 그 지역은 대나무가 주로 쓰인다. 중국에서는 스틸파이프보다 쉽게 구할수 있는 재료라 여겨진다. 임시정부 독립운동가 선열들의 자취를 아쉬워하며 옥불사를 참배하였다.
중국은 사찰이라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개폐가 꽤나 성가시다. 문닫는 시간에 간신히 배려가 되어 해탈문을 통해 들어가니 본건물이 보인다.청나라 말기에 세워진 사찰로 송나라 궁궐을 모방해 지은 사찰이라한다. 반약장실에 모셔진 옥으로 된 불상은 정교하고 요염함도 있다. 아름다움에 부드러움과 여성스러움이 살아있는 이의 살결같다. 부처님은 온화하고 부드럽고 인자한 심성을 우리네의 가치로 알아온 나는 다른 문화의 불상에 도취되었다. 주위의 불광형제들 역시 감탄사 연발이다. 상에 머물지 말라 하거늘... 시간에 쫒겨, 오늘의 아름다움을 퍼담을 여유조차 없이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홍구공원으로 떠났다.
바닥에 어둠이 깔릴때 도착한 공원은 윤봉길의사의 의거 현장이다. 그때 그현장 기념표석이 우리를 반긴다.1932년 4월29일 글자가 선명하다. 가만히 표석에 손을 얹고 그분에게 존경의 예를 올린다. 좀 더 밝은시간에 왔더라면 공원에서 의거 총성소리도 듣고 그분의 외침도 듣고 갈 수 있으련만...., 기념관에서 자료를 보고 그분의 애국심에 더욱 더 존경심과 현재의 우리가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상해의 명물이 된 외탄거리에서 동방명주가 보이는 야경관광에 나섰다. 중국의 개방화에 맞추어 보여주기로 작정한 곳 상해. 이곳은 화려한 불빛과 흐르는 황포강위의 유람선과 더불어 중국발전의 선전장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통제된 사회에서 가능한 전시개발은 우리네의 70년대에 견주리라.
여행 2일차 아침에 호텔을 나서는데 빗방울이 흩날린다. 많은비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보타산으로 출발한다. 이젠 버스안에서도 여행의 묘미를 느낄차례 거사님 보살님들의 말씀은 그대로 설법수준으로 이동중 무료함을 상쇄시킨다. 불교대학 2년과정에서 느끼고 배운 것이 말씀으로 나오는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배를 이용해 약3시간 가량 이동하니 보타산이 있는 섬이다. 이젠 제법 비가 많이 내린다. 중식을 간단히 하고 법우사 순례에 나섰다. 비오는 날 法雨寺 꽤나 잘 어울린다. 우비를 걸친 불광형제들이 법우사에 안기니 佛光法雨다.
보타산이 있는 섬은 인구가 5천정도이고 스님이 약800분이 계시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엔 거의 불교관련 관광수입으로 생활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경내의 탑주변엔 그 나라 관광객들의 동전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탑신 내부에 동전이 들어가면 행운이 온다고 보는것일까? 나도 몇개를 넣었다. 좋은일이 있겠지....., 불긍거관음원으로 이동하니 바람이 더 거세다. 이곳은 일본냄새가 많이나는 사찰이다. 일본의 자본으로 새로이 중건한 것으로 우리의 동해낙산사와 비슷한 곳이다. 원래 이곳이 관음도량이었는데 문화대혁명시에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하였다 한다. 오래되지 않은 사찰이라 마음은 가지 않는다. 주변경관에 취할뿐 .....
보제사 순례후에 남해관음불상 참배에 나섰다. 높이가 30여미터의 청동불상은 1997년에 점안식을 했다 한다.규모에 한번 놀랐고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보타산 모퉁이에 위치한 남해관음은 새로운 중국식 불교관광 자원화의 한 부분으로 느껴졌다.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중국 수행스님 한분이 비를 맞으며 기도 삼매경으로 길옆에서 수행을 하신다. 가이드 설명으로는 그러한 분이 꽤 된다고 하였다.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행 모습이다.
빗방울은 그칠줄 모르고 몸도 으시시하다 이젠 따뜻한 녹차가 그립다. 서울에선 매일 커피를 물 마시듯 해왔는데 이곳에 온 이후 커피는 안 찾게 되는 것이 이상하다. 녹차의 힘일까 , 아님 마음일까......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