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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사자의서 - 티벳 불교의 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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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6.04.17 조회2,6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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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불교를 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는데 주된 장애의 하나는 아무래도 아직까지 티벳을 둘러싸고 있는 신비스러운 영기(靈氣)일 것이다. ‘티벳’이라는 낱말에서 우선 느끼는, 멀리 중앙아시아 어딘가에 있는 눈 덮인 나라, 그리고 그곳의 영적인 생활에 접근하는 일은 국경을 넘으려는 시도만큼이나 어렵다는 이미지, 황폐하나 기묘하고 매혹적인 불모의 평원, 그리고 우뚝한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는 풍경 속에서 신비스러운 의식에 참가하는 붉은 승복을 입은 작은 라마승들, 타오르는 후광 속에 삼켜지는 무서운 악마, 환희에 넘쳐 미소짓고 있는 수많은 팔을 가진 신들, 바위 자체에서 솟아 나온 듯이 보이는 위압적인 조형들, 야크와 무시무시한 눈사람, 달라이 라마, 깊이 있게 울리는 징과 뿔피리 소리, 꽹과리와 의식 등등을 떠올리게 된다. 사진 속에서 우리에게 인사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세련되지 못한 표정으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거나, 공들여 꾸민 화려한 비단이나 상징물들 속으로 물러난다.

 

여기서 우리는 거칠고 거의 길들지 않은 열정에 매우 이질적인 세련미가 독특하게 섞여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티벳의 표면적 인상은 많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통속적인 상상에 의해 거의 있을 법하지 않은 환상적인 사건의 배경이 되어 버렸다. 진지하건 않건 간에, 많은 책들이 신비스러운 일화를 제공하고, 진기한 교리나 의식의 예를 기록함으로써 이러한 인상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티벳에 대한 이 같은 일반적 관념이 아무리 매혹적이고 또 실제로 그런 점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로서 드러나는 부분보다는 모호하게 왜곡된 측면이 많았다.

티벳에서 수행하는 불교의 형태에 관해서는 특히 더 그러하다. 우리가 티벳불교를 생각할 때 마음을 혼란시키는 저 현란하고 이국적인 이미지 모두는 어떤 점에서 그 영적인 전통의 외면적 모습일 따름이다. 그 전통의 또 다른 모습은 냉정하고 합리적이며, 정확하고 체계적이다. 이러한 외면적인 모습은 인류가 지켜온 가장 심원하고 광대한 종교체계의 하나를 그 밑에 감추고 있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래서 티벳불교의 가르침에 접근할 때에는,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 종교가 주는 신비하고도 사람을 매혹하는 이미지가, 산에 사는 이 경건한 종족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정도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잔인한 신과 엄숙한 의식은 매우 제한된 의미만을 지니며, 외적으로 이같이 표현된 이 종교의 내면적 활력을 이해함으로써만이 비로소 그 참된 의미를 완전히 알 수 있다.

 

티벳불교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앞서 말한 티벳에 관한 통속적인 이미지로부터 시작하지 말고, 이 종교의 내면 세계부터 고찰한 다음 차차 외부로 눈을 돌려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처럼 티벳불교도들의 내면 세계를 이해하고 난 다음에야 그들의 영적 생활과 가치가 스스로 노출된 외면적 세계를 점차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티벳불교는 인도불교의 전통에서 유래한다. 비록 많은 부분이 나중에 티벳에서 단독으로 발전된 소산물이긴 하지만 그 주류는 인도라는 원천에서 흘러나온 것임은 너무도 자명하다. 따라서 티벳불교도의 의식세계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붓다와 그 제자들의 가르침에서 나타나는 인생관에서 찾아야 한다. 또한 티벳불교의 기본적인 세계관은 고대 인도불교도의 관점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티벳불교의 기본 틀을 이해하려면 12세기 이전 인도 불교도들의 내면적, 그리고 외면적인 정신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인도에서 티벳으로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은 7세기 송첸 감포 왕(617698) 때이다. 이미 433년에 일련의 불경과 종교의식, 용구들이 전래되었으나 송첸 감포 왕 때에 와서야 비로소 불교를 국교로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사원을 건립하였으며, 역경작업이 이루어졌다. 10세기 초엽 잠시 반불교적 군주인 랑달마 왕에 의해 심한 박해를 받은 시기를 제외하고 티벳에서 불교는 끊임없이 그 힘이 강화되었다. 초기에 가장 두드러지게 발달한 시기는 티송 데첸 왕(790844) 때이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많은 인도 승려들이 초빙되었고, 최초의 티벳인 승려가 탄생했으며, 티벳 학자와 인도 학자의 공동작업으로 유례 없이 많은 역경사업이 이루어졌다.

불교가 전파되기 이전의 티벳 문화의 발전 단계는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지배적인 종교는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이 혼합된 것으로, 뭉뚱그려서 ‘뵌’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언어기술법이 없었으므로 기록된 문학작품이나 역사문헌도 없었다.

 

기원전 2세기까지 이 나라는 통일되지 못한 상태로 다수의 경쟁적 봉건국가와 부족연맹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인구 또한 적었으며 외부와의 접촉이 거의 없었다. 많은 티벳인들은 유목생활을 했고 고정된 부락이나 교역 중심지는 몇몇에 지나지 않았다.

 

일찍부터 이 나라의 남쪽과 동쪽은 아시아에서 가장 발달된 인도와 중국이라는 두 문명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험준한 지리적 고립성으로 인해 대륙의 문화발달을 공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전해졌을 당시 전법승(傳法僧)들은 티벳을 우회해 가버렸다. 티벳 영토 내의 산맥을 직선으로 넘는 통로를 택하기 보다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거쳐 티벳 북쪽으로 우회하는 길로 인도와 중국을 오가는 편이 여행자들에게 용이했던 것이다. 따라서 티벳인들은 인접한 국가의 문화와 종교적 발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되기 이전에는 어느 것도 확고히 뿌리내릴 수 없었다.

 

티벳은 불교의 도입과 더불어 비로소 고도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 이미 자체 내에 세련된 문화와 문명을 지니고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티벳은 앞으로 나아갈 모든 문화발전의 기초로서 불교를 수입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불경을 번역하기 위해 티벳인들은 우선 그들의 말에 맞는 문자를 만들고 문법체계를 구성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작업은 송첸 감포 왕의 재상이었던 삼보타 라는 천재에 의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인도에 가서 북인도의 산스크리트(Sanskrit)어를 모델로 하여 문자를 만들었다. 또한 그는 티벳 문법에 대한 최초의 책을 편찬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문법 학습의 기초교재로 쓰인다.

이리하여 티벳어로 된 번역문들은, 기존 전통 속에서 잡다한 여러 철학적 함축성이 뒤섞여 오염된 단어들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새로이 만들어진 언어체계를 사용한 것이므로 기존 개념으로부터 혼동을 피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산스크리트어로부터 번역한 글은 원문의 용어가 갖는 불교적 함축만을 그대로 옮길 수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뛰어난 명증성(明證性)과 직접성을 지닌 불경 번역본을 이룩했다. 고도로 발달된 한 종교가 집성했던 거의 모두를, 새로이 발명한 기술(記述)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랠파젠 왕(866901) 때에 이르러서 번역 방식이 표준화되었고 그때까지 이룩한 번역은 모두가 수정되어야만 했다. 많은 경전들이 수 차례씩 번역되었는데, 여러 세대에 걸쳐서 학자와 번역자들이 수정하고 검토한 끝에 최종적인 형태가 완성되었다.

 

불교가 티벳에 뿌리를 내리는데는 약 400(7001100)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기간에 많은 티벳인이 가르침을 받거나 수행을 쌓기 위해, 또는 역경사업을 계속하기 위한 산스크리트어 학습을 위해 인도에 유학했으며 또한 많은 인도인 스승들도 티벳으로 와서 가르침을 널리 전했다. 번역된 많은 불경을 모아 공식적인 ‘경전’으로 편찬하였을 때 그 수는 약 220권의 분량에 이르렀다(여기에 대한 정확한 숫자는 편집방식에 따라 다르다.). 이 중에서 100권 이상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의 설법을 담고 있다.

이것들을 총칭하여〈강규(經藏〉라 한다. 그 나머지 역경들은 인도의 대가들이 붓다 시대부터 써왔던 400여종의 주석으로서〈뗀쥬르(論藏)〉즉 ‘논()의 번역’이라고 불린다. 거기에 덧붙여 티벳인 자신들에 의해서도 많은 주석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여타의 언어로 된 불교전적보다 더욱 방대하였다.

 

물론 인도 불교 전통 속에서의 가르침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경전에 기록된 모든 사항에 대해 티벳인들이 명료하게 총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인도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철학적 관점에서나 실천 수행에 있어서나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했다. 따라서 초기 티벳의 불교학자들에게는 다양한 교의(敎義)와 수행을 티벳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통합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그리하여 티벳인들이 불교에 대해 체계적으로 기술된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인도 문헌에서 나타났던 통합성의 선구적인 시도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특히 경전에 나타나는 일반적 교리와 밀교(密敎)를 조화시키고자 하는 경우에 있어서 불교의 교리와 수행관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종합 모델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티벳불교의 서술은 그 교리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인도의 불교와 대동소이하나, 깨달음에 이르는 체계적인 단계를 이룩하는 방식에 있어서 상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티벳 불교에서 독특한 것은 어떤 특정 교리의 내용이나 통찰이 아니라 그 자신의 빛 아래에서 이들을 배열하는, 깨달음에 이르는 논리 바로 그것이다. 그 독자적인 특이한 색채는 티벳불교 고유의 특정 요소 때문이 아니라, 불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들을 티벳적인 심성과 결합시키는 방식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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