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암(鳳頂癌) 성지순례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6.06.09 조회3,414회 댓글0건본문
2006 5, 17 수요일
새벽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鳳頂庵으로 향하는 여행을 떠난다.
진여정하고만 손잡고 가게 될 줄 알았는데
불교대학 도반 원묘성과 반야성 보살님을 버스에서 만나게 되어 얼마나 기뻤던지!
게다가 두분은 이미 봉정암을 한 두번씩 다녀온 후라 첫마음을 낸 내게 많은 advice를 해주시는 거다.
4시간을 달려 우린 백담사 주차장에 10시쯤 도착했다.
맑은 시내가 흐르는 백담사는 여전히 안녕하였다.
20분쯤 구비구비 고개를 돌아 용대리까지 셔틀버스를 탄 우리는
이제부터 10여km에 이르는 산길을 올라 봉정암에 이르는 6시간의
성지순례 여정의 대장정(!)에 든 것이다.
설악은 아직 초봄의 제전이 현재진행형이다.
연분홍의 진달래 산벚꽃 꽃망울을 가슴에 간직하며 山을 오른다.
설악산 계곡에 들면 여고시절 수학여행의 기억이 늘 생각난다.
커다란 화강암 바위와 간간이 만나는 폭포수가 보이면
우리는 멈추어 오이도 나눠먹고 등산양말을 벗어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쉬어간다.
아직은 얼음처럼 물이 차서 내 발은 쥐가 날 정도다.
믿는 구석은 일주일에 두번 요가를 수련하고 있으며, 지리산 천왕봉을 종주한 적이 있다는 것일 뿐...
최근엔 아차산을 오르는 워밍업도 하지 않았다.
다만 구도자의 마음..함께 걷는 노보살님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고
원을 세운 거다. 한 걸음 한 걸음 힘들 땐 쉬어가며
"오늘안으로는 도착하니까 !" 원묘성의 느긋한 유머.
우리끼리 이름지은 선녀탕에서 땀을 씻고 짐을 정리하며 깔딱고개를 넘을 준비를 한다.
네 발로 오른다는 이 고개에 대해 난 너무 많은 예방주사를
맞았는 지도 모른다. 30분 정도 수직의 능선을 타야한다는 그 말에
지레 질려서 과연 내게도 가능할까? 순간의 절망이 몰려왔다.
그렇게 듣지 않았다면 내 식으로 어찌어찌 될 거야.
흐르는 물처럼 생각했을 터.
바로 앞만 내다보며 도반들과 깔딱고개를 무사히 넘고나자 나머지 코스는
그 어떤 산길도 걸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된다.
아! 저만치서 봉정암의 요사체가 바라보이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리는 배낭을 guest house에 두고 가벼운 신발로 갈아 신고서
사리탑에 올랐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은 1400년의 세월을 이고 거기 있었다.
지성으로 백팔배를 올린다.
잔잔한 감동이 잔류한다.
6시간의 등반 후에도 기도를 올릴 만큼은 내 몸이 수련되 있어 뿌듯한 맘이다.
어머님이 보내신 쌀을 처음으로 개봉하며 퍼두었던 의미있는 쌀봉지를
공양미로 법당에 올린다. 유리창이 있어 어느 곳에 있어도 사리탑이 보이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도반들과 미역국에 오이무침 5쪽의 저녁공양을 큰애를 낳을 때처럼
맛있게 들었다.
사리탑도 별님들도 날 기다릴 텐데...
가지 못하는 애석함에 연안성을 대신해 안부전한다.
2006 5, 18 목요일
시월부터 이듬해 사월까지는 입산이 금지된단다.
어제 올라온 700여명의 참배객은 주지스님의 설명으론 두 번째로 많은 손님이었다 한다.
그 여파는 게스트하우스까지 미쳐서
나와 반야성 보살님은 엊저녁 예불 후 방을 나설 수가 없었다.
다시 들어온다는 기약이 없을 만큼 사람들이 가득 차있어 그냥 기댈
자리만이라도 앉아 있어야 했다.
진여정과 원묘성은 찬 경내에서 철야를 하게 된 모양이었다.
새벽 3시까지 자는 둥 마는 둥 눈을 부치고
새벽예불을 위해 법당으로 올랐다.
이른 아침에 바라본 병풍같은 산봉우리와 맑은 공기
그 속에서 움트는 연두의 새순, 꽃망울들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다시 또 올 수 있기를...
어제처럼 미역국에 밥을 말아 아침공양을 들고 점심으로
쥐어준 주먹밥이 감사하다.
종무소에거 첫방문을 기념하며 단주와 카드를 받는다.
봉정암에서 느낀 세속적인 행복은
山寺에 vending machine이 있다는 거...
힘들여 여기까지 올라온 등산객이 자판기의 커피를 발견하고
그것도 공짜로 마시게 된다면
그 순간은 누구 못잖게 넉넉한 마음을 배워 가겠지.
우리들의 下山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산을 내려가는 일은 오르는 일만큼 조심해야 한다.
방심으로 인한 사고는 하산하면서 더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두세번 계곡의 찬 물에 발을 담그며 피로를 풀었다.
지난한 과정도 물론 있었지만 잊지못할 그리움으로 남을 여행!
소금사탕과 손수 달여 시원하게 만든 약초음료를 나눠주신 반야성 보살님은
내게 모자도 빌려 주셨다.
세탁해서 돌려 드리려는 나를 굳이 손사레치며 먼저 가신다.
참 좋은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