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고우스님이 계시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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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6.07.10 조회3,812회 댓글0건본문
고우스님을 찾는 것은 예정된 일정이 아니었습니다. 무각 스님께서 떠나기 전날 고우 스님과 통화하고 찾아뵙겠다고 하여 이루어진 일이지요. 고우 스님은 “차도 들어올 수 없고, 걸어서 30분이 넘는 산길인데 대중들이 오기 힘들다”면서 저희가 찾아가는 것을 말렸으나, 저희들이 찾아뵐 때는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것에서 우리들이 오는 것을 반가이 맞아주셨습습니다.
당초 30분 거리로 알았으나 올라가는 모든 사람들이 “시골길 30분은 우리에게 1시간 거리이다”라는 탄식을 하게끔 만드는 거리였지요. 선지식을 찾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은 통로를 거쳐야만 가능한가 봅니다.
고우스님은 각화사 태백선원에 주석하시다 최근에 거쳐를 옮기셨습니다. 아마 그곳에도 80명이 넘는 대중이 찾아간 것은 우리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봉화에 사과나무는 왜그리 많은지... 사과밭을 지나고 또 지나, 산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고우스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올해 불광사에서 일요 법문을 하신 바 있습니다. 애초에 스님께서 자주 불광사에 오셔서 법문을 해달라고 요청드렸으나, 건강도 그렇고 봉화는 너무 멀다면서 사양하신 적이 있습니다.
중도 연기를 알아야 한다. 원효 스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원효 스님을 본 사람은 없다. 공(空)이며, 연기(緣起)를 누구나 알지만 그 뜻을 이해하는 자는 드물다. 나(我)없이 돌아가는 세상이치를 말이 아닌 체험으로 느껴야 한다.
고우스님께서도 1시간 30분이 넘는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법문 이라기보다는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이야기하듯이 다정다정하게, 그렇지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가지고 올라간 수박, 참외, 빵, 바나나 모두를 점심공양삼아 나누어 먹는 맛은 또 다른 맛이었습니다. 이를 별미라고 하지요. 선지식의 마음을 깨치는 소리를 듣고 오감을 느끼는 별미 중의 별미였습니다.
스님과 사진도 찍고, 그곳에 있는 개한마리와 장난도 치고... 그렇게 하면서 봉화를 떠났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기간에 무여스님, 고우스님 당대의 선지식 2분을 찾아뵈었으며, 봉화에는 왜그렇게 좋은 절이 그리도 많은지, 선지식은 많이 계신지를 생각하며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수요일날, 다들 무엇을 내놓을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