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어라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상대에게 드러내고자 할 때, 좀 더 멋진 모습으로 비춰지고자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지고자 애를 씁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본래의 모습에서 덧씌워진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쓰지요.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지길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있는 이상 우리는 부자유하고 걸리는 것이 많아집니다.
의도적으로 멋진 모습으로, 혹은 좀 더 낳은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라지 마세요. 좀 더 낳게 보이려는 마음, 좀 더 멋지게 보이려는 마음은 못난 속 내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에 자신감을 가지세요. 지금 이 모습이야말로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모습의 ‘나 자신’인 겁니다. 부처님은 인연따라 이 세상에 나툽니다. 그런데 똑같은 모습으로 나투지 않고 독자적이고, 창의적이며, 새로운 무언가를 늘 나투고 있어요. 새로도, 바람으로도, 구름으로도, 하늘로도, 온갖 종류의 모습으로 나투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라는 것도 부처님의 내 방식대로의 나툼입니다. 획일적으로 ‘누구처럼’되야 겠다는 생각은 내가 나 자신을 버리는 일이고, 나 자신으로써 드러나는 불성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나,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남에게 잘 보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말은 다시말해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의도적으로 ‘어떤’모습으로 비춰지려고 애쓰지 말고, 오직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자연스럽고도 자유롭게 솔직하게 표현하세요.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이 스스로 행복하며 걸림없고 자유스러운 불성의 온전한 나툼인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불자가 되었다고 했을 때 보통 사람들은 ‘부처님처럼’ 살려고 애쓰는 것을 불자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방편에 불과합니다. 부처님처럼 산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나로써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이 순간 온전한 알아차림으로 매 순간 순간 깨어있는 삶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처럼 되려고 애쓸 때 그 순간 우리 마음의 평화는 깨어집니다. 되고자 하는, 바라고자 하는 ‘부처’가 있고, 아직 되지 못한, 이루지 못한 ‘나’가 있기 때문에 그 간격만큼의 부자유와 분리가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부처님처럼’ 혹은 ‘수행자처럼’ 된다는 말의 본래 의미는 어떤 특정한 삶의 모습이나 양식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산과 바다가, 새와 짐승들과 곤충들, 꽃과 나무가, 온전히 독자적이고 온전한 자신만의 본래 모습을 갖추고 있듯, 우리 또한 ‘나’만의 독자적이고 온전한 모습이 있습니다. 나무가 꽃이 되겠다고 애를 쓰거나, 산이 바다가 되겠다고 노력을 한다면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저 내가 나 자신으로 살면 될 일이지, ‘누구처럼’ 살겠다고 노력하고 애를 쓰게 된다면 자신 스스로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나 스스로의 본래 모습을 삶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어야 내 안의 불성을 그대로 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 스스로 그런 부자유와 분리를 많이 경험합니다. 출가를 하고 많은 신도님들을 접하며, 또 많은 법우님들을 만나면서 내 안에는 ‘청정한 스님처럼’ ‘고고한 수행자처럼’ ‘흔들림없는 당당한 대장부처럼’ 살고자 하는,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훌륭한 수행자로 칭송과 찬탄을 받을 수 있어야 겠다는 그런 생각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있을 때 제 행동에도 마음에도 많은 제약이 생깁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말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정해 놓고 그 틀에 맞추려다 보니 내적인 걸림과 부자유가 생겨나고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때 괴로움을 느끼며, 그렇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억지의 노력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어떻게’ 라는 방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래서 자유롭게 그저 내 방식대로 ‘나 자신’의 길을 휘적 휘적 걷게 될 때 참된 자유로움에 눈을 뜨게 됩니다. 결국에는 내 스스로 만들어 놓고 내 스스로 걸려 넘어졌다가 또한 일어서는 것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이지요.
 그래서 수행자에게 중요한 것은 ‘솔직함’ ‘진실’입니다. 자신 내면의 마음이나 느낌에 진실하고, 하나도 감추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못난 속 뜰 까지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이 좋지, 애써서 포장하고 감추지 않아야 합니다. 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내적으로 순일하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합니다. 어둡고 둔탁하며 두렵고 떳떳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참회 중에도 가장 좋은 참회는 대중 앞에서 스스로 솔직하게 잘못을 드러내어 내면의 어두운 죄업을 활짝 털어버리는 것입니다. 승가에서는 예로부터 자자와 포살이라고 하여 스스로 잘못을 대중 앞에 참회하는 의식이 있어왔습니다. 대중참회라고 하여 대중 앞에서 나의 허물과 잘못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진실로써 대중 앞에서 참회할 때 그 죄는 가벼워지고 깨끗해 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지세요. 어떻게 보이려고 애쓰지 말고, 어떤 모습으로 바뀌려고 애쓰지 말고, 솔직하고 진실된 모습으로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에게 만족하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현존할 수 있고, 지금과 미래의 간격이 좁아지며 ‘지금 여기’에서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 때 지금 이 자리에서 아무런 갈등이나 부자유 없는 걸림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라는 것도 사실은 그랬을 때 찾아옵니다. ‘어떻게’ 변화하겠다고 욕망하고 바라는 것 보다, 그래서 그렇게 변화된 모습을 갈망하며 지금의 모습에 당당하지 못하는 것 보다, 그러한 마음을 다 놓아버리고 오직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음껏 드러내며 현존할 수 있을 때 가장 획기적이며 강력한 그리고 지혜로운 내적인 변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변화는 이렇듯 안에서부터 와야 합니다. 바깥으로부터 오는 변화는 강하지 못하며, 금새 변화하고, 나를 온전하게 바꾸어 놓을 수 없지만, 안으로부터 오는 변화는 경이로우며 혁명적으로 소리없이 다가옵니다. 모든 것을 내 안에 돌려 놓고, 내 안에 다 맡겨 버리고,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이 바로 부처임을 자각하여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진실하게 마음껏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당신이야말로 당신이 그렇게 밖으로 찾아 헤매던 진리이며 붓다입니다. 밖으로 부처님을 찾아 헤매고 밖으로 깨달음이며 변화를 찾아 헤매지 말고 안에 있는 부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만 하면 됩니다. 부처는 찾는 것이 아니고 그저 드러내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어떻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내 안의 부처를 찾는 길인 것입니다.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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