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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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6.10.19 조회4,898회 댓글0건본문
우리는 흔히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살아있는 것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성격, 즉 살아있음을 특징짓는 성격을 지칭하여 생명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생명이 아니다. 이 점은 마치도 개구리의 눈에 보이는 나무의 모습과 비슷하다. 개구리의 눈에는 움직이는 것만 포착될 뿐 정지한 물체는 거의 포착되지 않는다. 그럴 경우, 개구리는 나무 전체를 파악하기보다는 흔들리는 ‘나무 잎’ 하나하나를 별개의 것으로 파악하게 된다.
생명현상의 경우 ‘나무’에 해당하는 것이 ‘온생명’이며, ‘나무 잎에 해당하는 것이 이 온생명 안에서 규정되는 ’낱생명‘ 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낱생명‘으로 보아야 할 그 무엇을 ’생명‘이라 보고 이것 속에서 생명이 지닌 참 모습을 찾으려 하는 데, 이로 인해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
생명현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어느 한 곳에 ‘온생명’ 곧 외부의 아무런 도움 없이 생명현상이 자족적으로 지탱해나갈 수 있는 최소여건을 갖춘 물질적 체계가 이루어야 하는데, 이것은 태양과 같은 항성과 지구와 같은 행성 체계가 이루어지고, 그 안에 적정의 물질적 여건이 갖추어지면서 가능해진다.
우리가 속한 ‘온생명’은 대략 40억 년의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오늘과 같은 생태계를 이루어내었으며, 그 안에는 이 온생명에 의존하여 한시적 생존을 유지하는 수많은 종류의 ‘낱생명’들이 있다. 의식을 지니고 주체적 삶을 영위해나가는 인간이라는 독특한 존재 또한 이러한 ‘낱생명’들 가운데 하나이다.
온생명 자체를 사람의 몸에 견주어 본다면, 인간이 만드는 문명이라는 것은 온생명의 두뇌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황을 온생명의 입장에서 해석해 본다면, 인간의 이러한 통합적 문명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40억 년 만에 처음으로 온생명 자체가 하나의 통합적 의식을 지닌 지적 존재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한다.
인간의 문명이 온생명의 두뇌라면, 그 안에 나타나는 인간의 집합적 의식이 다름 아닌 온생명의 자기 의식이 된다. 이리하여 우리 온생명은 태어난 지 40억 년 만에 처음으로 인간 그리고 인간의 문명을 통해 하나의 의식 주체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나’의 존재를 어떻게 파악하느냐 하는 점과도 관련을 가진다. 우리는 개인으로서의 ‘나’를 지니고 있고, 국가로서의 ‘나’, 그리고 이제는 인류로서의 ‘나’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내 몸이, 그리고 내 생명이 바로 온생명에 이르는 것을 앎으로서 온생명이 곧 진정한 의미의 ‘나’임을 알게 된다.
우리가 진정 온생명으로서의 ‘나’를 의식하고 이를 중심에 둔 삶을 영위해나가느냐 아니냐 하는 점은 개인으로서의 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인류 그리고 온생명의 지속적 생존 가능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