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도 마다하시고 돌아오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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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6.11.18 조회5,302회 댓글0건본문
오월은 정말 화사한 달이다
춥지도 덥지도않고 백화가 만발하여 어디를가나
아름다운 꽃들이 함박웃음을 먹음고있다
이좋은 계절에 카네이션꽃한송이 달아드릴 겨를도없이
어머니는 그렇게 가셨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남의집 문간방에서 여섯식구가 사는모습을 보시고
가슴저미며 애를태우시더니 드디어 하혈로써
이세상을 마감하셨던것이다
나는 새벽3시에 일어나 목욕제계하고
적조암 손경산큰스님계신절로가서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위하여
매일 천배씩 49일간을 하였다
드디어 49제를 지내며 손경산큰스님께서는
영가에게 영가법문을 하시며
"영가여 그대는 딸의 공덕으로 극락 하품하생에 태어났도다
이제부터는 모든 집착과 미련 다 버리고 오직 그대만을
위하여 열심히 정진하여 상품상생에 태어나길바라오,그길만이
선대조상과 구대에걸친 자손들에게 빛을 전할수 있는길이오"
그후 일년이 지난 어느날밤 꿈에
언제나 열두폭치마를 입고계셨듯이 하얀모시 치마저고리를 입으시고
밝은 웃음을 띄우시며
"나 이제부터 너희집에가서 살게됐다"하시며
고추모종을 한아름 주시며 "잘 길러라 빨간 고추안에 들어있는
노란씨들이 모두 돈이란다"하시고 사라지셨다
그후 몇개월이지나 우연치않게 아주작은 빌라를 사서
이사를 하였다
비록 18평짜리 아주작은 집이었지만 방이3개,응접실이 있었다
단칸방에서 생활하던 우리식구에겐 큰대궐보다 더커보였다
친지들의 축하를받으며 희망찬 나날을 보내고 있을때
항상 쌀이랑 참기름이랑 연탄을 대어주던 보살님께서
집에서 기르던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진도개종류이기에 길러보라며 갖이고 왔다
이제태어난지 20여일밖에 되지 않은 아주작은 녀석이
보채지도 않고 먹고자고 먹고자고 하며 잘자라주었다
눈이 나리는 어느날 난로가에 쪼그리고 않아 졸고있는
수진이(개이름)를보고 우리 막내녀석이
"외할머니, 외할머니"하고 말을 하고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도 놀라 가만히 수진이를 들여다보니
어머니와 꼭닮아 있었다
그제서야 수개월전 꿈을 생각했다
수진이는 우리한식구가되어 밥먹을때나 잠잘때나 여행을할때에도
똑같이 함께했다
나에게 해를끼칠사람은 현관에 발을 드려놓치 못하게 짖어댔다
좋은 사람이오면 어느구석에 들어가 있는지 꼼짝않고
들어 앉아있었다
그렇게 수진이는 3년을 지냈다
하는일마다 잘되어 날로 번창해갔다
그러던 어느날 반상회때 수진이가 거론되었다
아파트주민들이 진정을 내었던것이다
우리는 고심끝에 가족회의를거처 원주에있는 큰댁에
잠시 맡겼다가 전원주택으로 이사하여 수진이를 다리고 오기로하고
원주로 보냈다 아이들을 비롯하여 수진이가 보고싶어
주말이면 원주를 갔다
어찌된 영문인지 수진이의 목덜미가 훌러덩 벗껴져
피가 뭉처있었다
수진이는 집을 찿아올려고 몇번을 시도하였다가 올가미에걸려
죽을 힘을 다하여 빠져 나왔던것이다
우리는 수진이와 함께 부등켜앉고 눈물을 그칠줄 몰랐다
수주일후 갑자기 큰아버지의 부음을듣고 원주로 향했다
수진이는 보이지 않았다
큰아버지께서 몸보신하신다고 잡수시고 그토록 건강하셨던 어른이
갑자기 가신것이다
장례를 치른후 서울로 돌아와 불광사에 계신
고광덕 큰스님을 찿아가 수진이의 49제를 부탁했다
그리고 하루에 만독씩 마하반야 바라밀 염송을 100일하여
백만독 회향을할때 광덕큰스님께서 영가법문을 해주시었다
회향때 동참했던 분들까지도 모두 가피를 입었다
어떤 노보살님께서 찿아오셔서 감사의말을 전하며
당신은 삼대가 내려오는 무남독녀 외딸인데 어머니 제사를
모시지못하여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회향에동참하고
그날저녁꿈에 어느큰 잔치집에서 어머니가 잘잡수셨다고 하며
이제부터 제사걱정 하지말라고 하며 가시드라는 것이다
그후에도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어머니께서는 집한칸 없는 딸자식 살리기 위해서
극락도 마다하시고 오셨다 가셨다
이깊은 어머님마음이야말로 부처님 마음인것이다
생각하면서도 생각에머물지않고 펴내는 그마음,
어머니마음 부처님마음
화사한 오월이오면 어머니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며
어머니도 부처되고 나도부처되어
영생 안락국에 태어나기를 기원해본다
춥지도 덥지도않고 백화가 만발하여 어디를가나
아름다운 꽃들이 함박웃음을 먹음고있다
이좋은 계절에 카네이션꽃한송이 달아드릴 겨를도없이
어머니는 그렇게 가셨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남의집 문간방에서 여섯식구가 사는모습을 보시고
가슴저미며 애를태우시더니 드디어 하혈로써
이세상을 마감하셨던것이다
나는 새벽3시에 일어나 목욕제계하고
적조암 손경산큰스님계신절로가서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위하여
매일 천배씩 49일간을 하였다
드디어 49제를 지내며 손경산큰스님께서는
영가에게 영가법문을 하시며
"영가여 그대는 딸의 공덕으로 극락 하품하생에 태어났도다
이제부터는 모든 집착과 미련 다 버리고 오직 그대만을
위하여 열심히 정진하여 상품상생에 태어나길바라오,그길만이
선대조상과 구대에걸친 자손들에게 빛을 전할수 있는길이오"
그후 일년이 지난 어느날밤 꿈에
언제나 열두폭치마를 입고계셨듯이 하얀모시 치마저고리를 입으시고
밝은 웃음을 띄우시며
"나 이제부터 너희집에가서 살게됐다"하시며
고추모종을 한아름 주시며 "잘 길러라 빨간 고추안에 들어있는
노란씨들이 모두 돈이란다"하시고 사라지셨다
그후 몇개월이지나 우연치않게 아주작은 빌라를 사서
이사를 하였다
비록 18평짜리 아주작은 집이었지만 방이3개,응접실이 있었다
단칸방에서 생활하던 우리식구에겐 큰대궐보다 더커보였다
친지들의 축하를받으며 희망찬 나날을 보내고 있을때
항상 쌀이랑 참기름이랑 연탄을 대어주던 보살님께서
집에서 기르던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진도개종류이기에 길러보라며 갖이고 왔다
이제태어난지 20여일밖에 되지 않은 아주작은 녀석이
보채지도 않고 먹고자고 먹고자고 하며 잘자라주었다
눈이 나리는 어느날 난로가에 쪼그리고 않아 졸고있는
수진이(개이름)를보고 우리 막내녀석이
"외할머니, 외할머니"하고 말을 하고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도 놀라 가만히 수진이를 들여다보니
어머니와 꼭닮아 있었다
그제서야 수개월전 꿈을 생각했다
수진이는 우리한식구가되어 밥먹을때나 잠잘때나 여행을할때에도
똑같이 함께했다
나에게 해를끼칠사람은 현관에 발을 드려놓치 못하게 짖어댔다
좋은 사람이오면 어느구석에 들어가 있는지 꼼짝않고
들어 앉아있었다
그렇게 수진이는 3년을 지냈다
하는일마다 잘되어 날로 번창해갔다
그러던 어느날 반상회때 수진이가 거론되었다
아파트주민들이 진정을 내었던것이다
우리는 고심끝에 가족회의를거처 원주에있는 큰댁에
잠시 맡겼다가 전원주택으로 이사하여 수진이를 다리고 오기로하고
원주로 보냈다 아이들을 비롯하여 수진이가 보고싶어
주말이면 원주를 갔다
어찌된 영문인지 수진이의 목덜미가 훌러덩 벗껴져
피가 뭉처있었다
수진이는 집을 찿아올려고 몇번을 시도하였다가 올가미에걸려
죽을 힘을 다하여 빠져 나왔던것이다
우리는 수진이와 함께 부등켜앉고 눈물을 그칠줄 몰랐다
수주일후 갑자기 큰아버지의 부음을듣고 원주로 향했다
수진이는 보이지 않았다
큰아버지께서 몸보신하신다고 잡수시고 그토록 건강하셨던 어른이
갑자기 가신것이다
장례를 치른후 서울로 돌아와 불광사에 계신
고광덕 큰스님을 찿아가 수진이의 49제를 부탁했다
그리고 하루에 만독씩 마하반야 바라밀 염송을 100일하여
백만독 회향을할때 광덕큰스님께서 영가법문을 해주시었다
회향때 동참했던 분들까지도 모두 가피를 입었다
어떤 노보살님께서 찿아오셔서 감사의말을 전하며
당신은 삼대가 내려오는 무남독녀 외딸인데 어머니 제사를
모시지못하여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회향에동참하고
그날저녁꿈에 어느큰 잔치집에서 어머니가 잘잡수셨다고 하며
이제부터 제사걱정 하지말라고 하며 가시드라는 것이다
그후에도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어머니께서는 집한칸 없는 딸자식 살리기 위해서
극락도 마다하시고 오셨다 가셨다
이깊은 어머님마음이야말로 부처님 마음인것이다
생각하면서도 생각에머물지않고 펴내는 그마음,
어머니마음 부처님마음
화사한 오월이오면 어머니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며
어머니도 부처되고 나도부처되어
영생 안락국에 태어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