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의 만남을 방해하는 두가지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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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6.11.29 조회5,457회 댓글0건본문
믿기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
강의를 마치고 회식자리에서의 일입니다. 수강생 중 어떤 분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사실 내 강의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불자로서의 삶이고 보살의 길인가’를 함께 생각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므로, 그 강의 내용 속에 나의 신앙생활 전모가 다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질문에는 ‘강의 내용은 그렇다 치고···’라는 말이 담겨 있었습닏.
“아함경을 읽고 그 경의 내용을 생각하고···”
이렇게 대답을 하기 사작하였지만 나의 대답은 그 분의 귀에 들리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런 건 학자들이 책상 앞에서나 하는 일이고, 진짜 기도는 불보살님의 명호를 열과 성을 다하여 부르고 무조건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무구정광대다리니」를 하루에 수십번식 읽거나 사경하고 절을 하는 것이라고 내게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일이 생기더군요. 사실 내가 뭐 불교공부 해서 학자가 될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사는 동안 원하는 거 다 이루어지고 행복하면 그만이지. 그건 기도를 해야 이루어집니다. 기도하면 무조건 이루어집니다.”
이런 이야기는 어제 오늘 들었던 것도 아니요, 한 두 사람에게서 들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2,500년 전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떠 올려봅니다. 왕자의 자리를 먼지처럼 여기고 궁을 떠나 80평생 인도 땅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숱하게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뭔가를 들려주었던 그 성자를 말입니다. 사람들이 행복이라 여기는 것들을 티끌만치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늙은 부모님과 왕위까지도 버리면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려고 애썻던 그 분을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분이 일깨워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고, 그 분의 이름만 부르면 현실에서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 분이 가르친 내용을 생각하는 일은 기도가 아니라고들 말합니다.
전제를 믿어야만 하는 종교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는 다 무엇인가를 전제로 내세웁니다.
“태초에 신이 온 세상을 창조하였다”
“태초에 어떤 원리가 있어서 이것으로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이런 전제들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과연 태초에 세상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것은 다 살아봐야지만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 수 있으니 살아서는 입증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각 종교들은 따지지 말고 그 기본 전제를 믿으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사실이고 진리라고 믿어야만 그 사람은 은혜를 입거나 불행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들의 주장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언변술이 뛰어난 종교가들의 말에 마음이 솔깃해서 그들의 주장을 믿어버립니다.
애초에 신이나 운명과 같은 것을 전제로 두고서 애서 모든 것을 거기에 꿰어 맞추려고 합니다. 이렇게 일단 믿고 보니 그 다음부터는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면 그것은 ‘믿음(기도)이 약해서 벌어진 일’이라거나 ‘믿음을 시험하는 징조’라고 치부해버립니다. 창조주를 거역하거나 운명을 거스르려고 하였으니 당연히 불행이 따르는 것이라고 자위합니다. 좋은 일이 벌어지면 ‘믿고 기도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기뻐합니다. 역시 ‘신은 믿는 자에게 복을 준다’고 하며 자신의 두터운 믿음에 놀라워 하거나, ‘내 팔자에는 당연히 누릴 복이다’라고 하며 흐뭇해 합니다.
불교는 어떻습니까? ‘중생은 본래부터 부처’라거나 ‘사람이 죽으면 다음 세상에 식(識)이 옮겨간다’라거나, 다짜고짜 ‘공(空)’하다거나 ‘아뢰야식 속에 다 담겨 있다’, ‘전생에 지은 죄업장’들을 말합니다. 이런 말들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부처님이 취하는 종교적 자세에서 크게 어긋납니다. 이런 주장 역시 태초에 유일신이 천지를 창조하였다거나 우주를 움직이는 원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들 처럼 일단 믿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전제를 처음부터 들이대며 일단 믿고 보라는 것은 부처님의 입장이 아닙니다.
석가모니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마룽키야(만동자)라고 하는 청년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수행을 하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부처님은 이 세상의 조화에 대해 속 시원한 말씀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언제 만들어 졌는지, 세상의 종말은 언제인지, 세상은 영원한지, 끝이 있는지, 부처라는 위대한 존재는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 육체와 영혼은 하나인지 둘인지····. 그는 부처님을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이런 질문을 내놓고 이렇게 마지막 통보를 합니다.
“여기에 어서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출가생활을 접고 세속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마룽키야여, 내가 언제 네게 그런 문제에 대답을 주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느냐? 그리고 너 또한 내게 그런 대답을 듣겠다는 조건 아래 내게 출가했던 것이냐? 그런 약속을 한 적도 없는데 지금 이게 대체 웬말이냐? 내가 너의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는 내 대답을 다 듣기도 전제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저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지금 제 몸에 독화살이 박혀 있는데 서둘러 뽑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누가 쏘았는지, 어떤 재료로 만들어 졌는지를 먼저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화살을 뽑기도 전제 목숨을 잃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대신 부처님은 “지금 자신이 참으로 덧없는 속성을 띠고 있으며 그래서 괴로울 수밖에 없는 생명체임을 분명히 알고, 그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일러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무조건 믿고 기도하면 내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준다는 자세, 그리고 불성이니 공이니 전생의 죄를 처음부터 들먹이는 자세, 이 두가지는 불교와의 만남을 방해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 글은 월간불광 2006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월간 불광을 구독하시면 보다 많은 글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구독 문의 : 420-3200)
이미령님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동국역경원 역경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불광대학에서도 강의를 하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