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와 자본주의 ( 각자의 의견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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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1.22 조회6,012회 댓글0건본문
무소유라는 말을 강조하는 불교적 가르침에 입각할때 이윤추구 행위를 해야하는 현대 사회가 괴리가 있는것이 아닌가 고민하는분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무소유라는 것은 가난하게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필요이상의 탐욕을 가지고 이윤을 추구하지 말라는 의미이며 이는 탐욕이 부르는 화를 미리 경계코자 함이기도 합니다.
이때 필요이상이란 말 역시 자기 주관적인 것이며 상대적인 것입니다.
월소득 1000만원으로 사는 사람이 누리고 향유하는 생활문화와 200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간의 소비 규모와 그 필요액은 다릅니다. 따라서 천만원 소득으로 소비하며 사는 사람도 그 비용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부족이, 자기 과욕으로 일관하여 무절제한 증가시도와 욕구를 발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그런 부족함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며 무소유란 이런 의미에서 절제나 자기제어력을 강조한 가르침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항상 더해지고 진화합니다. 그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기에 무소유의 가르침을 통해 소유의 방법과 과정을 일깨우는 내용인 것입니다. 무소유란 소유를 전제로 했을때 나오는 개념이기에 그렇습니다.
무소유는 소유를 어떻게, 어떤 식으로할 것이며 나의 포지션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를 사회학적으로 설명하는 가르침이며 이윤행위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개념이지 단순히 소유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소유의 가르침은 그런 욕망의 확대라는 진화의 과정에서 속도를 제어하고 참여자의 의무를 망각하지 말라는 슬기로움을 유도하는 가르침입니다.
소비가 커지고 영역이 확대되면 배려해야할 상대와 영역도 더 많아 집니다
기본적으로 자기 이기심만 아니라면 충분히 이타심을 통해 확장된 범위에서도 최소한의 의무가 부여될 것이고 그것을 하게 된다면 확장일로의 욕구도 속도가 더디게 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나 공동체에 대한 참여자들의 최소한의 의무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무한 자유가 아닌 절제 통제하는 자유의 영역에 숨쉬는 경제적 개념으로 무소유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가르침은 상당히 자본주의적이고 현명한 가르침입니다.
결국 자본주의와 불교간의 모순은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국식 자본주의나 한국 자본주의의 방향이 얼마나 비불교적이고 무절제한 잔인함으로 흘러가는지를 우리는 불교적 가르침에서 발견하고 있고 현실적인 현상으로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중반이후 유럽의 사회가 정신적으로는 기독교를 탈피하고, 정치적으로는 사회국가로 급속히 지향하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과는 매우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란 것을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이데올로기로) 냉전의 설득논리로 계발된 자본주의만 인식하고 있고 그들은 비기독교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볼 수 있기에 가능한 차이입니다.
유럽의 경우는 자본주의가 정치체제와 접목되는 과정과 정책을 만들며 그 장단을 다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배제된 잔인한 자본주의의 요소가 미국에서 자리잡게 된 것이 오늘날 미국자본주의의 본모습니자 이식된 한국 자본주의의 본모습입니다.
우리가 불교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바라본다면 한국 자본주의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해법이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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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동, 이윤추구 행위와 불교를 단순히 대비하여 생각하는 자체가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데 접근 자체가 대단한 접근상의 오류입니다. 단편적인 용어와 부분 이론의 한 부분을 입체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케이스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자본주의란 것이 이념화되는 과정과 그 창안자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없이 자본주의를 이야기한다면 자본주의와 부패교회의 진화과정을 알기 어렵습니다.
한국 사회의 교회확장은 미국식 자본주의가 취하는 원래 목적의 부산물입니다. 선교전략과 활동력등은 거기게 약간의 결과를 추가로 가져다 줬을 뿐이지 한국교회의 성장은 냉전선상에서의 자본주의의 성장 동력원에 기인합니다.
즉 한국 자본주의가 미국식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교회의 확장은 어쩔수 없는 것이며 사회의 건강성과도 역행되는 엄청난 내용들이 묻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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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본주의가 불교가 번창한다면 건강한 자본주의의라는 반증이됩니다.
하지만 현실로 봤을때 그게 아니기고 결과도 아니기에 한국자본주의는 본래적 의미의 자본주의가 아닌 특스한 권력이 조작하는 잔인한 자본주의로 무소유를 가르친 과정에 얻을 교훈이 먹히지 않은 그런 자본주의란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불교가 번창한다고 한국자본주의가 건강하게 바뀔것이라는 망상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불교가 잘되야 사회가 잘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교적 가르침을 잘 받들고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야 사회가 잘되고 건강한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비불교적인 영역에서 흉내내는 부분이 너무 많고 이것을 극복하는 것은 바로 우리 불자들의 역량입니다
무소유니까 적당히 벌어라는,,웃기지도 않는 가르침을 법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일면 맞는말 같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것입니다..
수정확인없이 시간상 두서없이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