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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을 제대로 알면 살맛이 업(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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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1.27 조회6,0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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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에 관해 이야기 해보겠다면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습니다. ‘업을 말한다’는 것이 마치 ‘당신의 전생을 가르쳐 주겠다’,‘당신이 지금 그토록 일이 풀리지 않는 이유를 알려 주겠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봅니다.

 ‘업’이란 말은 부처님이 만들어 낸 말이 아니라 인도에서 당시 널리 쓰이던 용어입니다. ‘업’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일’입니다. 하는 일, 행위···. 이게 업입니다. 싱겁기 짝이 없는 설명이지요? 하지만 이 말은 사람 하나를 죄인으로 만들어 옴짝달짝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미래를 밝게 열어 나가게도 합니다.

 


 당신은 전생에 죄만 지었나요?


 ‘업’이 ‘하는 일’이라면 ‘과거에 한 일’만을 말하는 걸까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말하는 걸까요?

 불자들이 업에 관해서 가장 큰 오해를 품고 있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업’은 ‘과거에 지은 못된 짓’, ‘전생에 지은 죄’라고만 여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과거에도 전생에도 뭔가 일을 하고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지금 현재의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나는 전생에 못된 짓만 하였나요? 죄만 지었나요?

 내가 전생에 무슨 못된 짓을, 어떤 극악한 죄를 지었는지 정확하게 본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전생에, 과거에 착한 일은 하지 않았나요?


 경전을 뒤져보아도 업을 가지고 ‘전생에 지은 죄’라고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데 우리 불자들은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러니 사랑해서 꾸린 가정도 ‘감옥’이라고 부르고 배우자도 ‘원수’라고 부르고, 제 자식도 ‘전생에 내가 누군가에게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 이번 생에 그 갚음을 하려고 그 사람이 내 자식으로 태어났다’며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부부, 부모자식, 친척과 이웃, 친구와 동료 사이가 사랑과 우정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원수를 갚기 위한 관계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혹시 갈등이 빚어져도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일을 당하냐’하는 억울한 심정만을 자꾸 품고서, 상대를 내 인생을 망쳐놓은 원수, 발목을 잡는 장애말로만 여기게 됩니다. 부처님이 강조하는 ‘업’은 ‘지금 내게 닥친 문제를 풀어나가야겠다고 뜻을 일으키고 그 뜻에 따라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슴을 치며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는 전생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문제 해결을 위해 의지를 일으키고 행동하는 것이 ‘업’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 사람의 출생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의 업을 보라.”라고 말씀하진 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처지가 어떻든지 지금 현재 그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보면 ‘업’이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뜻이 강합니다. 적어도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려 하신 ‘업’은 ‘지금 내가 어떤 의도로 어떤 일을 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나 좋자고 하는 일, 남도 좋아야지요.


 방금 ‘내가 어떤 의도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업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의도···.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하고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렇게 ‘뜻’이 있습니다. ‘의지’라고도 할 수 있지요. 뜻이자 의지. 이 바탕에는 ‘아, 이렇게 하면 내가 편하겠구나.’하는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어찌보면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게 전부 다 자기 편하자고 해서 벌리고 펼치는 것인지도 모름니다. 이것을 이기적이라고 흉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나’요, 가장 중요한 것도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가 불편하고 불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 남에게도 좋은 일이면 그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안심하고 맘껏 행동하면 됩니다. 하지만 편하고 좋자는 마음은 같지만 그 방향이 다를 때 문제가 벌어집니다. 동쪽으로 가는 것이 내게 좋은 일인데 그 방향은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서쪽으로 가야만 좋은 경우입니다. 나는 동쪽, 상대는 서쪽, 이렇게 추구하는 방향이 서로 다릅니다. 이럴 때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동쪽으로 향하는 것이 이득인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많고 또 그게 궁극적으로 바람직하다면 우리는 다른 방향을 추구하는 사람을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상대방에게도 좋으니까. 하지만 동쪽으로 가려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고 수많은 사람들은 서쪽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면 이때 나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냥 상대를 무시하고 내 좋은 동쪽으로 나가면 가장 편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런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까요? 상대방이 제 좋은 방향을 버리고 자기한테 좋지 않은 동쪽을 향해 나와 같이 가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나 좋자고 한 일이 상대방과의 조화를 깨뜨리고 궁극적으로 내게도 힘이 들고 괴로움을 주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와 남에게 함께 편함을 주는 것이 좋은 일이요, 착한일(선한 업)일 것입니다.

 

 나에게만 좋고 다른 이들에게는 불편함을 주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요, 악한 일(악업)일 것입니다. 좋고 착한 일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줘 즐거움을 불러올 것이요, 좋지 않고 악한 일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지 않고 훼방을 놓을 것이니 괴로움을 불러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업에는 즐거운 과보가 따르고 악업에는 괴로운 과보가 따르는 것입니다.

 

 흔히 ‘업을 짓지 말자’라고 말하는데 중생이 어떻게 마음을 일으키고 뜻을 내는 업을 짓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업을 짓고 사는 것이 중생일진대 업을 짓지 말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악업을 짓지 말고 선업을 짓자! 이것에 업에 관한 바른 견해입니다.

 

이미령 선생님은 불광불교대학에서 강의를 해주시고 계십니다. 이 글은 불광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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