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종 스님, 속히 돌아와 함께 공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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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1.29 조회6,113회 댓글0건본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출가해서 스님이 되는 줄 안다. 하지만 사실은 불교학을 배우는 것과 출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불교대학을 선택한 사람들은 그만큼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어서 한번쯤 출가를 깊이 고려해보기는 하겠지만, 반드시 출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제로 출가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1982년 초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1학년 강의실은 100명이 넘는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계열별 모집에 정원보다 더 많이 선발한 당시 입시제도때문이었다. 그때 불교대학은 다른 학과와 달리 스님들과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야말로 인생과 불교공부에 있어서는 백전노장들이 전체 분위기를 압도하는 상황이었다. 다들 나름대로 틀별한 인연과 사연을 가진,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불교대학이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편안함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유독 눈에 띄는 그룹이 있었다. 바로 부산의 종립학교인 해동고등학교에서 함께 진학한 동기들이었다. 보통 한 학교 출신을 두명도 찾아보기 어려운데, 여러 명의 동기가 불교대학에 진학해서 다들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들은 고등학교 시절의 활기를 그대로 대학으로 가져온 것같았다. 늘 어떤 일이건 자신감을 가지고 솔선하고, 대중의 분위기를 선도하곤 했다.
지종 스님도 바로 그들 중 하나였다. 짙은 눈썹에 선이 곱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숱이 많은 더벅머리에 눈동자가 맑고 깊은 순박한 인상이었다. 지종 스님은 늘 고교동기들과 함께 하였는데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주변사람들도 본인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하는 그런 성품이었던 것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명 도반들의 출가소식을 들었다. 당시 졸업 후 군법사로 입대하기 전에 출가의 경험을 갖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계를 받은 스님들조차 환속의 위험이 높아 어른 스님들은 군법사 입대를 반대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랬기에 주변 사람들은 물론 본인조차도 평생 출가의 길을 걸을 거라는 확신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지종 스님의 출가도 군법사 입대를 위한 하나의 방편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넘어 지종 스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수덕사의 포교국장으로, 지종 스님은 범어사의 포교국장으로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미처 법명을 물을 여유도 없이 속명을 부르며 두 손을 맞잡았다.
“이야~ 진짜 중노릇 하는구나! 반갑다. 정말 반갑다.” 호들갑스러운 내 태도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무슨 속명까지 부르면서 주책이고~”라고 나직이 말하며 잡은 손을 슬며시 풀었다. 적지 않은 동기들이 군법사로 임관해서 군포교에 매진하고 있지만 이렇게 다시 승가에 복귀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였다. 그렇게 지종 스님을 만난 이후로 같이 중 노릇하는 대학동기가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무척 좋아지곤 했다.
그렇게 각자 본사의 소임을 살던 중 포교원에서 마련한 일본 연수를 함께 갈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지종 스님은 엄청 큰 걸망을 메고 나타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무슨 짐을 그렇게 가져가느냐는 물음에, 가사장삼과 꼭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 그렇다고 말했다.
그래서 실제 짐을 확인해보니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다만 옷가지가 오래되고 거친 것이라 부피가 많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중 노릇이 얼만데 그렇게 낡고 부피가 큰 옷을 여행 짐에 챙겼냐고, 좀 가볍고 작은 옷은 없냐고 핀잔을 주었더니 그게 자신이 가진 가장 편한 옷이라고 대답하였다.
한번은 자판기 앞에서 걸망을 내려놓고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를 하나 꺼냈는데, 일본 동전들이 가득 들어있는 것이었다. 여행경비를 절약하려고 사찰의 불전함에 나온 일본 동전을 모아온 것이었다. 그 동전을 노리던 일행들에게 한 번씩의 인심은 베풀었지만, 결국 그 동전은 반의 반도 쓰지 못하였다. 검소하고 소박한 스님의 살림살이는 때로 인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진정 수수한 승려의 모습을 느끼게 해주는 전형이기도 했다.
종단일로 부산에 갈 일이 있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찾아가도 칼국수 한 그릇 나누기도 쉽지 않을 만큼 늘 바빴다. 다른 사람에게 시켜도 될 불교대학의 출석도 집적 챙기고, 소소한 일들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그 자상함은 포교에 대한 신념과 불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누구나 아는 서울의 큰 절 주지 소임을 살 때도 지종 스님의 그 소박함과 털털함은 한결같았다. 무심한 표정과 말투는 살가운 정은 없어도 수행자다운 담백함이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지종 스님! 무척 보고 싶습니다. 속히 다시 돌아와 함께 공부합시다.
글을 쓰신 주경 스님은 서산에 있는 부석사 주지지시고,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이십니다. 이 글은 월간 불광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