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스님 뵙고 세번을 놀랐습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2.12 조회6,293회 댓글0건본문
묘행주의 반려자 정오거사입니다.
저의 광덕스님과의 인연담은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 얘기를 한적이 있기 때문에 혹시 들으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기자랑하는 것은 바보라고 하지만 광덕스님과의 인연은 저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것이기에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는 소재입니다.
1977년 저는 원주에 있는 육군 후송병원에서 일등병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불교를 잘 모르던 시기입니다. 저는 일요일만 되면 고참병들의 괴롭힘과 사역(작업일)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군법당을 간다며 외출하곤 했습니다. 솔직히 졸거나 쉬다가 오고 싶어서였지요.
어느날인가 군법당의 법사스님께서 "오늘은 아주 귀하신 분이 여러분에게 수계를 주기 위해 특별히 이 법당에 오십니다. 총무원장까지 지내신 덕 높은 스님이니 여러분은 이 특별한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여 꼭 수계를 받도록 하십시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수계가 뭔지도 모르던 저는 군대이기 때문에 법사스님의 말씀은 명령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수계를 받기로 하고 그 덕 높으시다는 스님이 어떤 분인가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기다렸습니다.
바로 광덕스님이었습니다. 깡마른듯한 스님이 한분 성큼 성큼 법당 안으로 들어오시더니 제 자리를 지나시어 부처님 불상 앞에 나아가 공손히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게 뭔가. 저렇게 절을 할 수도 있는 것인가? 마치 전 우주를 떠 받들듯이 부처님께 절을 하지 않는가? 저는 정말이지 그러한 폼(죄송)으로 절을 하는 것은 그 때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공손하게 그렇게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듯한 간절한 절(예경)은 마치 예술행위 같았습니다. 저는 직감으로 이분이 대단한 각자(깨친사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주일 전에 설법을 하던 체구가 좋으신 스님이 절하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서, 감탄사가 나올 것 같은 것을 참고 바라보았습니다.
두번째 놀란 것은 다음 순간입니다. 스님께서 수계 법문을 하시기 위해 사자좌에 오르셨습니다. 저는 도대체 어떤 분인가 궁금해 하며 스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습니다. 앗! 그런데 이게 뭡니까? 섬뜩한 느낌까지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얼굴을 봤는데 얼굴의 실체가 없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그런 얼굴을 처음 보았습니다. 특정한 인상이 없는 얼굴,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얼굴, 아무 것도 없는 공백같은 얼굴입니다.
밉다, 곱다, 욕심쟁이, 거만하다, 싱겁다, 누구나 어떤 인상이 있기 마련인데 스님은 그런 것이 없이 둥근 원처럼 그저 원만하기만 했으니 놀랄 수 밖에요. 저는 이 양반은 필시 해탈지경에 이른 분이라고 판단하고 따라다녀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기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 수계를 주시면서 법문 하던 내용이 뭔지는 잘 기억을 못하고 있지만 그 때 스님을 뵙고 너무나 놀랐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1978년말, 군에서 제대를 하던 바로 그날 저는 평소의 굳은 결심대로 광덕스님을 깨구리 복을 입은 채로 찾아갔습니다. 광덕스님은 저녁시간에 대각사에서 법회를 열고 계셨습니다. 법회가 끝난 다음 법등모임 시간에 저는 무조건 광덕스님에게로 돌진해 갔습니다.
"스님 제가 왔습니다. 원주 군법당에서 스님께 수계를 받은 정오라고 합니다. "
저는 스님께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 내 밑에서 잘 좀 배워보게.. 내가 잘 지도를 해주지..." 이런 말씀을 해주시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대답은 너무나 의외였습니다.
"형제님. 잘 오셨습니다. 우리 함께 열심히 공부해 봅시다. 경전에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함께 공부해 보자고 하는 말씀은 너무나 실망스럽고도 한편으로는 정말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그 이후 함께 하자는 스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졸졸졸 뒤를 따라 다녔습니다. 화장실도 따라가고 스님이 법회 여는 곳에는 언제나 참석하여 가까운 곳에서 들으려 했습니다. 질문도 엄청나게 해댔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잘도 참으시며 저에게 꼭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저의 스님 따라다니기는, 보다 못한 회장단 거사님들께서 한번 불러내어 따끔한 말로 충고를 하는 바람에 끝이 났습니다만 지금도 스님께 대들듯 따져묻던 그 시절이 생각이 나고 그립기만 합니다.
"스님. 병고는 왜 있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저의 마구잡이 질문에 스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이병(병이 났음)이야. 고통 속으로 들어가면 고통도 없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