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하당 광덕 큰스님 8주기 추모 법회를 보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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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3.03 조회6,502회 댓글0건본문
조회 : 1 스크랩 : 0 날짜 : 2007.03.03 08:04 | |
추모 법회를 하고 계시는 불광법회 신도님들.. 참배하고 있는 신도님들.. 금하당 광덕 큰스님 영정앞에서.. 불광사 입구 모습, 2008년 4월 8일 부처님 오신날 이후 다시 현대식 7층 건물로 지어질 예정이라고 회주 지홍스님께서 말씀.. 불광사의 마스코트 마하보디 합창단
지난 3월1일 우리에겐 기억해야할날 3.1운동 기념일에 불광사에서는 금하당 광덕 큰스님의 열반 8주기 추모 법회가 열렸읍니다. 금하 광덕 큰스님의 행장을 살펴보면 1927년 4월 4일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 내리에서 아버지 (본관제주) 고 준학씨와 어머니 김동양씨 사이 2남 3녀중 4째로 태어나셨으며 본명은 고 병완.. 1950년 부산 범어사 동산 대선사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관 세계관의 일대 전환을 맞이 하섰으며, 1952년 동산 대선사를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 , 1956년 부산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하셨읍니다. 소천 대선사의 각운동과 그의 사상에 깊이 계합한바. 금강경 독송 구국원력대에 참여 전국을 순회하기도 하였으며 위법망구로 금정사에서 용맹정진 하시던 어느날 1954년 봄 반야개안 하셨읍니다. 당시 정황을 스님께서는 " 금정사 마루턱에 앉아서 앞산을 건너다 보는데 문득 한 경계가 열려 대경이 모두 달라 ??으며 , 그때 무척 기뻤고 한없는 감흥에 빠져 들었다" 고 말씀하시었다. 이후 반야의 대 지혜로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 이라고 하는 인간에 대한 절대 긍정의 반야 바라밀 신앙을 확립 하시고 평생동안 온몸을 바쳐 바라밀 전법운동에 전념 하시었읍니다. 1974년 9월 불광회를 창립하시여 같은해 11월 월간 불광을 창간하시어 문서포교에도 큰 공을 남기셨으며, 도심한가운데 불광사. 불광법회를 창립하여 불교의식을 한글화 하고 매주 법회를 함으로서 일반인은 물론 어린이. 학생. 청년층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생활화 할수 있게 하였고, 음성포교를 위해 불교 합창단을 창설 찬불가의 보급및 찬불가를 불교 의식의 일부로 만들어 여법한 법회를 이끄셨읍니다.
그외에도 금강경 ,보현행원품, 지장경, 관음경등 많은 경전의 한글화를 이룩하셨으며, 반야 법문을 통해 월간불광의 발행및 저술활동, 각종 교육과 봉사, 전법활동을 통해 모든 사람이 본래 부처님, 내생명이 바로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라는 찬란한 대 긍정의 세계를 활짝 열어 보이신 스님은 법랍 48세,세수 73세로 1999년 비록 사바세계에 연을 거두시고 원적 무상삼매에 드셨지만, 찬란한 빛으로 다시 돌아 오시어 지금 이자리 이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진정으로 믿습니다.
방송국과의 새해 인터뷰 에서 ( 사회는 그당시 불자인 이계진 아나운서가 하였고) 중생들에게 꿀맛을 보여주기위해서 그 맛에 대해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 보았자 그 꿀을 먹어보지 않은 자가 그 꿀맛을 어떻게 알것인가?? 그 꿀맛을 알려주기위해 중생의 입에 직접 꿀을 넣어 주셨다는 큰스님의 말씀에 큰 감화를 받았읍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고 완성하여 행해나아가는일) 우리의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이기때문 이것을 각하고 이를 행하여 나아길때 불국토가 성취될수 있다는 말씀... 한말씀 한말씀이 가슴을 비수로 찌르듯이 다가 왔읍니다. 다시한번 금하당 광덕스님의 열반 8주기를 맞아 고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그분이 한국 현대 불교사에 남기신 공적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나무 마하반야 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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