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나라 인도이야기 --10편 쿠시나라.기원정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3.03 조회6,519회 댓글0건본문
최후의 안거를 바이샬리에서 보낸 부처님은 그 당시 몸에 병을 얻은 신 듯 하다.
병세를 묻는 아난 존자에게 "아난다야, 내 몸은 이미 늙어서 썩은 수레와 같다" 라고 말씀하신다.
춘다에게 마지막 공양을 받으시고,
병세가 깊어지시어 쿠시니가라로 가시는 도중에 25번이나 휴식을 취하셨다.
이곳에 도착 하시어,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에 자리를 마련하신 다음 열반에 드셨다.
80노구를 이끌고, 이곳에 당도하셨을 부처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고였다.
육신의 무상힘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에 사랑과 연민을 느낀다.
열반상은 얼굴과 발을 내놓고 가사로 덮여 있었다.
회주 스님은 여법한 기도 후에 당신의 가사를 부처님께 덮어 드렸다.
열반상은 육체의 고됨에서 쉬시는 너무도 편안하신 모습이다.
"빠리 니르바나 "- 완전한 열반 이라고 불렸다.
열반상 아래는 아난존자와,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 마지막 공양을 올린 춘다
이렇게 3명의 인물이 새겨져 있다.
열반당 옆에는 사리탑이 모셔져 있다.
스튜파는 아쇼카왕이 세운것인데, 버마 스님들에 의해 복원 되었다고 했다.
인도는 불교 신도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거의 모든 유적지와 성지가 티벳 스님들과 버마 ,스리랑카 스님들에 의해 유지 되고, 그 중 티벳 스님들이 가장 많이 계신듯했다.
티벳은 나라를 잃은 대신 티벳 불교를 세상에 알리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열반 일주일 후 가섭 존자의 예배를 받으신 후 다비장으로 옮겨 다비를 하셨다.
다비장은 열반당에서10km정도 떨러져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도 여법한 기도를 올렸다.
성지에서 하는 기도는 그 감흥이 배가 되고, 가슴이 뭉글하다.
버스에 올라 쉬라 바스티로 간다.
부처님 당시 가장 강력한 나라 중에 한 곳인 코살라국의 수도 이다.
부처님이 생애에 걸쳐 가장 오래 머물러 계셨던 곳이기에 이곳의 일화는 많다.
사위성, 기원정사, 앙굴리마라집, 기원정사를 기부한 수닷타 장자의 집, 데바닷타가 지옥에 빠져 들어간곳,
부처님께서 이교도들과 대결해서 수 많은 기적을 드러낸곳,....
점심을 먹고, 마차를 타고 기원정사에 갔다.
기원정사는 수닷타 장자가 기부하고, 사리불존자가 총 감독하여 지은 사원이다.
24번 안거를 지내셨고, 금강경이 설해진 곳 이다.
깨끗하게 관리가 되어있고, 라훌라 존자의 전각, 사리불 존자의 전각 , 목련 존자의 전각은 발굴 되어있었다.
부처님이 전각 앞에는 사용 하셨던 우물이 있다.
부처님 전각 뒤로는 아난존자의 전각이 있었겠지....
하루 밤에도 5번씩 일어나 부처님께서 잘 주무시는지 확인을 하고 잤다는 아난존자.
우리는 기원정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계셨을 부처님과 십대제자들과 1250 인의 수행자들을 모두 보는 것이다.
제자들과 탁발 하셨을 부처님, 외출 후 발을 씻으시는 부처님, 산책 하셨을 부처님.....
출중한 제자들과 수행하시며 법열을 느끼셨을 부처님은 아마도 행복하셨을것 같다.
나는 평소에 왜 부처님 재세시에 태어나서 부처님을 뵙지 못했나를 애석하게 생각 했는데,
나를 두고 얼마나 답답하게 여기셨을 부처님을 생각하니 걱정을 덜어들였나 싶기도 하다.
나는 이곳에서 기도 후 금강경을 읽었다.
내가 수보리 존자가 된 듯했다.
부처님이 그랬었듯이 우리도 회주 스님을 모시고, 풀밭에서 법문을 들었다.
이곳은 공부하기 좋은 곳이다
아난다의 보리수가 있다.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출타시 그리움을 달래려고, 부처님께 여쭙고 목련존자의 신통력으로 보드가야의 보리수를 옮겨와 심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도 이곳에서 선정에 잠겨 계셨다고 한다.
부처님을 향한 아나존자의 공양이 어떤 것인지 알수 있다.
이곳에 올 수 있었음에 환희와 감사이다
이제 룸비니로 가기 위해 네팔로 간다.
열반당과 사리탑
빠리 니르바나 -- 완전한 열반
다비장
슬퍼하는 아난존자
수닷타 장자의 집
아난다의 보리수
부처님전각
기원정사의 안에서
사리불 존자의 전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