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나태함을 일깨워 준 해인사 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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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4.29 조회7,334회 댓글0건본문
2007년 4월 14일!
국보인 마애삼존불, 백제때부터 대중국 교역통로였던 보원사지 일대의 문화재 훼손을 막기 위한 “가야산살리기” 서명운동이 한창이 가운데, 2007 호국팔만대장경대법회가 열린 날 나와 학우들은 해인사 수련회를 떠났다.
이 글은 기본교육 43기 수업을 받는 토요반 화담 서주영 법우님께서 기본교육 해인사 수련대회를 다녀오신 이후 쓰신 글입니다. 초안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
해강 김규진선생님께서 썼다는 큼지막한 伽倻山海印寺 현판을 보는 순간 기대와 긴장 속에서 뛰기 시작한 가슴은 일주문, 봉황문, 해탈문을 지나면서 서서히 가라앉았다.
잠시 후 영화나 동영상에서 본 해인사 법고소리가 바로 눈앞에서 내 눈 앞에서 스님들의 경쾌한 움직임과 함께 캄캄한 가야산 산사를 장엄하게 퍼져나간다. 이어지는 범종소리와는 또 다른 울림 속에서 내 마음도 범종소리 따라 울리고 있음을 느끼며, 새벽예불을 드리려 대적광전으로 갔다.
<혜암스님께서 주석하셨던 원당암에서>
새벽예불, 모두들 순서를 놓치지 않으려고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스님들을 따라 하기에 급급했지만 초보자답게 호흡이 맞지 않아 절하는 모습 또한 들쭉날쭉하고, 스님들 예불에 지장을 주었지만 긴장된 마음과 표정은 몹시 진지했다.
원당암에서의 휴식시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가야산 자락에서 맑고 밝은 빛을 내는 별과 함께 걸려있는 초생달을 따라 나도 모르게 적막을 깨고 희미하게 보이는 암자를 향해 걸었다. 달마선원이다, 외부인 출입금지 안내문만 보고 내려오다, 옆에 있는 홍제암에 갔다, 구국운동을 펼치셨던 사명대사께서 거쳐하시다 입적하신 곳이란다, 홍제암을 돌아 나오다 사명대사 비를 본 나는 무심코 고객을 숙였다. 숙인 고개 뒤전에서는 홍제암 옆에 있는 미나리밭에서 새벽 미나리향이 향내음을 더하며 우러나고 있었다,
공양시간 이후 주어진 잠깐의 자유시간 慧菴性觀大禪師의 사리를 친견해보고자 하는 욕심에 미소골을 찾았으나 慧菴性觀大禪師의 사리 친견은 이른 시간이라 하지 못했고, 옆에 세워진 혜암큰스님(慧菴性觀大禪師)의 법문비 “공부하다 죽어라”를 보았다. 나는 慧菴큰스님의 큰 뜻이 담긴 비문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부처님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을 복 중에 만복을 얻은 것이라 생각했다.
자유 시간을 끝내고 이제는 退翁 性徹 큰스님이 모셔진 백련암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입구에 자리한 영지, 안내문이 없어서 영지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도 모르는 채 지나쳐 백련암을 향했다.
<백련암으로 가는 길에 있는 화랑대를 찾아>
희랑대를 지나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 언덕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어르신 몇분과 보살님 몇 분께서 체력에 한계를 느꼈는지 길도 모르는데 인솔자도 하나 없이 젊은 사람들은 다가버리고 어떻하란 말이냐 하시면서 불만 섞인 말씀을 하신단다.
아차 싶어 내려가 보니 힘이 들어 백련암에는 못 가신단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기를 열대차례 어르신과 보살님들과 발맞추어 맨 꼴찌로 올라간 백련암. 낙오자 없이 다 올라왔다는 생각과 덕분에 백련암을 보신다는 감탄 섞인 어르신의 고맙다는 말씀 한마디에 기분은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여기 백련암은 청빈한 삶과 올곧은 수행정신으로 중생들에게 가르침이 되었던 성철 큰스님의 영혼이 담겨 있는 곳이다. 난생처음 이곳을 찾은 나는 성철 큰스님께 말씀하신대로 나를 바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는 기원과 함께 108배를 올렸다. 절하는데 정신을 쏟느라 나를 바로 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온몸에 땀이 촉촉이 배어나왔다.
108배 뒤에 마신 백련암 약수와 불어오는 바람은 108배로 흘린 땀을 사진찍기에 충분할 정도로 말끔히 씻어주었다.
우리는 남은 시간 동안 천천히 해인사 구경을 하기로 했다.
팔만대장경이라는 무상법보(無上法寶)를 모시고 있는 장경각은 크게 수다라장과 법보 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지금은 입구가 수리중이다. 얼른 머릿속에서는 대장경판을 머리에 이고 정중탑을 돌고 있는 텔레비전에서 본 법회 모습이 스쳐간다, 수미정상탑, 명부전, 독성각, 정중탑을 돌아보고, 안내실에 전시된 만다라를 보았다. 옛 것과 부처님을 그리고, 부처가 되고자 쉼 없이 정진했을 스님과 불자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일반인에게 모처럼 공개된 마애불입상 앞에서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왜 이 곳에 와 있고,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나가면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졌보았다. 나를 바로보자, 공부하다 죽어라, 집착과 번뇌를 모두 끊어라“ 하는 외침과 메아리 가운데에 선 나는 몸과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언지 모를 열정만이 끓어올랐다. 정진하자, 공부하다 죽자!
나는 이번 수련회에서 많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불광사에서 수련회를 떠나는 순간부터 불광사에 도착해서 회향하는 그때까지 현실속에 나와 영혼 속의 나를 생각하며, 혼자 조용히 자문자답도 해 보았고, 맑게 흐르는 계곡물을 빈 마음으로 오랫동안 바라보기도 하고, 어둠속에 쌓인 해인사 경내를 행선하듯 왔다 갔다 하며 세월의 흔적을 담아내고 있는 해인사 여러 전각과 암자 몇 곳을 천천히 돌아보았고, 이기적인 생각을 잠시 접어둔 채 서로 서로를 배려해주는 학우들과 하루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인연의 끈을 만들었다.
꽉 짜여진 일정에 따라 진행된 해인사 수련회는 많은 인원이 함께하여서 다소 불편한 점과 나의 첫 경험을 채워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신행활동의 새로운 충전이고, 그동안의 일상에서의 나태함을 일깨우는 활력소였으며, 무엇보다도 잠시나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준 의미 있는 수련회였다.
수련회 시작부터 회향까지 나와 학우들의 안전과 성찰을 위해 애써주신 대웅스님과 불광교육원 박정현 선생님, 후배라는 관계를 떠나 가족같은 마음과 정성으로 땀 흘려 시작과 끝 맺음을 함께 해주신 불광대학, 불광대학원 여러 선배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나도 차기 차차기 등 인연 닺는 대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봉사할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