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공부는 마음 다스리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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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7.01 조회8,699회 댓글0건본문
기초튼튼, 불교교리 한토막1 - 연재에 들어가며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다양한 동기에서 불법을 접하게 되지만, 결국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데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그 동기가 복을 비는 기복불교가 되었든, 지식을 얻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든, 심각한 인생문제에서 불법을 접하게 되었든, 결국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는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물론 그 과정이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 불광 7월호에 실린 글인데요, 목경찬 선생님이 처음 불광에 쓰신 글이기에 조금 앞당겨 실었습니다. (월간 불광 홈페이지에는 다음 달에 싣거든요.)
그리고 그러한 동기를 가지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모든 것이 마음 작용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 작용에 의해 세상을 자기식대로 보고, 그에 의해 세상을 바로보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해석을 하고, 그 해석된 것에 의해 또 세상을 색안경 끼고 봅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스스로 괴로워하고 즐거워하고 온갖 감정을 쏟아냅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자신이 희로애락을 느끼면서도 세상을 향해 감정을 쏟아내며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고통 속에 잠겨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자신을 이렇게 만든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렇게 밖으로만 향했을 때는 마음의 평온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번 숨을 길게 쉬고 차분히 ‘내 식대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내 주장대로 가족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십시오. 이러한 ‘내 식’, ‘내 주장’을 내려 놓는 것이 불교 공부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 식’, ‘내 주장’을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것은 수많은 세월동안 우리 마음속에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한순간에 뽑아 버리기에는 너무도 힘듭니다. 일단 여기서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업(業)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업(業)이라고 하면 보통 팔자(八字)나 숙명으로 연결시켜 이해하는데, 불교에서는 단지 그런 뜻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자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포함하여 이전 삶의 모습이 알게 모르게 마음 속에 간직된 것이 업(業)입니다. 그 업이 현재 삶의 기준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 식’, ‘내 주장’이란 본인의 업이자 업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업은 단지 팔자나 숙명이 아닙니다. 업이란 삶 자체이자 삶의 흔적입니다.
삶을 이끄는 교리 공부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삶을 다스린다는 것이고, 업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어떤 동기로 인해 불법에 들어왔든, 그 향하고자 하는 곳은 마음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교공부가 마음 다스리는 공부라고 할 때, 교리 공부가 단지 용어 몇가지 더 아는 차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리 공부는 마음 다스리는 공부로 나아가게 해야 하며, 결국 삶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교리 공부는 글자 공부가 아닙니다.
따라서 교리공부는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심(大疑心)입니다. 참선수행자가 지녀야할 마음 자세인데, 교리 공부와 관련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대신심(大信心), 큰 믿음입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믿음이 전제가 되어 있지 않고서는 일이 진행될 수 없습니다.
가령 여러분이 이 글에서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없었다면 이 글을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글이 그러할 진대 성인의 말씀을 접하는 경우에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대분심(大憤心), 큰 분발심입니다.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마음 자세입니다. 이러한 마음 가짐이 있어야 물러서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우리 주제에 뭘’이라는 한계를 지어버립니다.
대의심(大疑心), 큰 의심입니다. 이 말은 화두에 대한 사무친 마음인데, 저는 교리 공부측면에서 이해해 봅니다. 여기서 의심(疑心)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불신(不信)과 다릅니다. 앞의 대신심이 전제가 되어 있는 대의심입니다.
가령 매일 정확하게 출근하던 사람이 그날 늦게 왔다면 우리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하며 그 사람을 걱정합니다. 믿음이 전제가 되어있기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경을 보면 일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만약 믿음이 전제가 되어 있지 않으면 무시하거나 비방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전제가 되어 있으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부처님 말씀을 지금 상식으로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대의심은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경계합니다. 본인 상식과 맞지 않으면 무조건 받는 것이 아니라 잠시 판단을 보류하는 것입니다. 필자의 경험으로, 그러면 그 부분이 ‘아아! 그렇구나’하며 풀리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큰 의심입니다.
교리 공부하는 자는 모름지기 바른 믿음 자세가 되어야 마음 다스리는 공부로 이어지지 않나 합니다.
목경찬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 연구위원이자, 불광불교대학 전임강사입니다. 저서로 『불교입문』을 공동집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