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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없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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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7.18 조회8,9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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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없는 나무
 

하루는 스승이 제자를 만나 물으셨다.


“가시나무를 보았는가?”
“예, 보았습니다.”
“그럼, 가시나무는 어떤 나무들이 있던가?”
“탱자나무, 찔레나무, 장미꽃나무, 아카시아나무 등이 있습니다.”
“그럼 가시 달린 나무로 넓이가 한아름 되는 나무를 보았는가?”
“못 보았습니다.”
“그럴 것이다. 가시가 달린 나무는 한아름 되게 크지는 않는다. 가시가 없어야 한아름 되는 큰 나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시가 없는 나무라야 큰 나무가 되어 집도 짓고 상량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가시 없는 큰 나무는 다용도로 쓸 수 있지만 가시 있는 나무는 쓸모가 별로 없느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시가 없는 사람이 용도가 많은 훌륭한 지도자이며, 꼭 필요한 사람이며, 정말로 불보살 성현이 될 수 있는 그릇이다.

가시는 남을 찔러서 아프게 한다. 그리고 상처를 내서 피를 흘리게 한다. 입을 통해 나온 말의 가시, 손발을 통해 나온 육신의 가시, 욕심을 통해서 나온 마음의 가시…. 가시가 없어야 만유를 살려내고 만생명을 살려내는 불보살 성현이 되느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업의 법칙, 즉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다. 모든 행위에는 어떤 결과가 따르기 마련인데, 탐욕과 증오, 어리석음으로 인한 행동에는 언제나 아픔과 괴로움이 따르고, 베품, 사랑, 지혜에서 나온 행동에는 행복과 평온이 따른다.


 부처님께서는 또한 모든 중생이 하나이며, 나와 나 아닌 것의 분별이 없다고 가르치고 계시다. 이것이 연기緣起의 법칙이다.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악한 업은 가시가 되어 다른 사람을 해하는데 이것은 곧 스스로를 해친 것과 같다. 상처를 입어 고통스러워하는 상대를 볼 때 아픔과 괴로움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가시 달린 나무가 남을 찔러 아프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큰 나무로 자라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베트남의 평화운동가이자 명상수행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틱낫한 스님이 지은 ‘화anger’라는 책이 불자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세간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다. 수많은 ‘관계’의 얽힘 속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화’라는 감정을 사람들은 억지로 억누르거나 폭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서로 상처입히고 상처받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스님은 ‘화’를 극복하기 위해 매순간을 자각하는 훈련을 강조한다. 자각을 통해서, 상대방이 고통을 당하는 한은 자기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상대방과 내가 별개의 존재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화는 우리 안에서 씨앗으로 자리잡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랑과 연민의 씨앗도 우리 안에 있다. 우리의 의식 속에는 수많은 부정의 씨앗들이 있는가 하면, 또 수많은 긍정의 씨앗들도 있다. 우리가 수련을 하는 것은 부정적인 씨앗에 물을 주는 것을 피하고, 긍정적인 씨앗들을 찾아내서 날마다 물을 주기 위해서다. 이것이 곧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인과와 연기의 법을 바로 알고 실천하는 첫 발자국은 자신에게서 가시가 자라나지 않도록 다스리는 일, 미움과 절망과 두려움의 씨앗이 아닌 기쁨과 사랑과 희망의 씨앗에 물을 주는 일이다. 자신의 마음밭을 잘 보살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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