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은 자신의 참모습을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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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7.26 조회9,113회 댓글0건본문
선(禪)은 자신의 참모습을 아는 일이다.
무엇이 항상 청정하여 순수하고 깨끗한 한 물건인가? 만일 여러분이 그것을 깨닫는다면 생사에 걸림이 없이 자유로워진다. 그러면 어떻게 생사에 걸림 없는 자유를 깨달아 얻을 수 있을까?
우선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목표가 분명하면 생활이 밝아진다. “왜 ‘선(禪)’을 수행하는가?”, “왜 날마다 먹는가?” 그것을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이번주 일요법회에 계룡산 무상사에 주석하고 계시는 무심 스님을 초청하여 법문을 듣습니다. 무심 스님은 숭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신 외국인 스님이십니다. 불광법회와는 두번째 인연일 맺게됩니다. 소중한 인연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일요법회 주보에 들어갈 내용입니다. 숭산 스님의 글을 주보로 보내오셨습니다. |
모두 놓아 버려라. 그 다음엔 우리의 견해나 조건, 상황을 모두 놓아 버리고 다만 행할 뿐이다. 거기에는 주인과 객, 안과 밖이 따로 없다. 안과 밖은 이미 하나가 되고 너와 나의 목표, 행동이 같게 된다. 이것이 위대한 보살의 길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 우리는 자신을 온전히 믿을 수 있다. 그러면 마음이 하늘처럼 깨끗해서 거울처럼 맑다. 붉은 것은 붉게, 흰 것은 희게 보인다.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준다. 모든 것이 이 맑은 거울에 비쳐서 보인다. 그러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하늘은 푸르고 나무는 파랗다. 소금은 짜고 설탕은 달다. 개는 ‘멍멍’ 짖는다. 바로 이와 같이 모든 것이 그대로 진리이고 우리 또한 진리이다.
그러면 진리가 어떻게 바르게 작용하여 우리의 삶을 올바로 이끌어갈 것인가? 우리는 찰나찰나 상황을 옳게 인식하고 남과 옳은 관계를 맺으면서 올바르게 수용해야 한다. 배고플 때 무엇을 할 것인가? 남이 배고플 때 무엇을 할 것인가? 부처님을 만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담뱃재를 어디에 털 것인가? 모든 사람이 그것을 다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한다. 우리가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실천하면 우리의 평상심(平常心)은 올바른 삶이 된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신 것도 바로 그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아는 게 너무 많다. 그러나 그 안다고 하는 것은 삶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선(禪)수행자들은 자주 ‘무엇을 지니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큰 잘못이다. 선(禪)은 무엇을 할 때 다만 그것을 할 뿐인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안다고 하는 것은 망상이다. 아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올바른 수행은 그 아는 것을 잘 소화하여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지혜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이 참다운 평상심(平常心)이다.
그러면 왜 공안 365개를 만들었을까? 세상 사람이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 치료제를 써야 한다. 조주(趙州)는 무엇을 얻었나? 입을 열어 말하면 벌써 실수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으면, 순수하고 깨끗한 답은 항상 앞에 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참 ‘나’가 진리를 올바르게 수용하고 중생을 구제 할 것인가?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교(敎)밖의 것을 따로 전하니,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
본성을 바로 보아 부처가 된다.
만일 이 문에 들어서거든, 일체 생각을 내지 마라.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一切法)은 모든 마음(一切心)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 만일 모든 마음이 없다면 모든 법이 무슨 소용인가?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찰나찰나 ‘오직 행할 뿐’으로 날마다 오직 한마음으로 정진해서 365공안을 성취하고 크게 깨달아, 고통받는 중생을 구하기 바란다.
높은 하늘은 항상 푸르고 물은 바다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