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 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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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8.05 조회9,265회 댓글0건본문
아함경(니카야)을 읽어보셨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이 45년 간 세상을 다니면서 온갖 사람들을 만나서 들려준 생생한 육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불교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사람은 이 아함경을 반드시 읽어야만 합니다.
대체로 아함경 속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나’와 같은 인간을 분석해서 밝힌 내용, 둘째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 물론 아함경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전들은 대체로 이 두 가지 내용이 주류입니다. 하지만 특히 가장 중요한 경전인 아함경에 관한 한 이 두 가지는 두드러집니다.
첫째, 인간을 분석해서 밝힌 내용이란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반야심경 같은 경에서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색수상행식’이니 ‘안이비설신의’니 하는 교리들을 말합니다. 이런 교리들은 지금 이 내 몸과 마음을 설명하는 단어들입니다.
우리는 보통 ‘나’라고 말하고, ‘나는 00하다’라거나 ‘나는 00가 좋다’, ‘내 취향이다, 아니다’라고들 말합니다만 정작 그런 말마다 다 들어가는 그 ‘나’라는 것이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나’를 조금 편하게 해주는 일이 벌어지면 “아, 행복해! 세상은 살 만한 거야!”라고 외치고, 그 ‘나’가 조금이라도 불편해지면 “아,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거야?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라며 비통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고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나’를 차분하게 관찰해서 알아간 사람은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당황하거나 흥분하거나 헛되게 바람을 품지 않습니다. 게다가 ‘나’를 잘 관찰하고 알아낸 그 지혜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되니 그 어떤 사람들과도 담담하고 현명하게 상대할 수 있습니다. 감정에 치우치거나 하지 않고 말입니다.
‘나’를 제대로 분석하라
그래서 불교에서는 ‘나’를 알아가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를 알아가는 것’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말장난이 아닙니다. 아주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알아채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해볼까요? 어느 식당의 해물탕이 매우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맛있다!”라거나 “국물이 정말 시원하다!”라고 감탄을 하고 맛을 보고는 끝냅니다. 하지만 눈썰미가 있는 주부나 맛에 관해 예민한 사람은 그 해물탕 속에 무엇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하나하나 알아냅니다.
무엇이 얼마만큼 들어가서 시원한 맛을 내고 무엇이 들어가서 얼큰하며 무엇이 들어가서 감칠맛이 나는지를 꼼꼼하게 들여다봅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알아낸 사람은 자기 집 부엌에서도 똑같은 맛의 해물탕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오래오래 아주 맛좋고 영양 있는 해물탕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주인공이라고 하면서도 병들고 늙어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힘도 행사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런 현상이 닥쳤을 때 놀라고 당황할 뿐 당연히 찾아올 일이었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여기면서도 자기가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는지, 자기에게 어떤 속성이 들어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막연하게 ‘맛있는 해물탕이 먹고 싶다’라고만 생각할 뿐, 정작 자기 손으로 해물탕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식당의 영원한 손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돈 몇 푼만 내면 해결할 수 있는 식도락의 차원이 아니라 지금 생각하고 고민하고 행복해하고 슬퍼하고 있는 내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제 인생이라는 식당의 뜨내기손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강조하는 이유는 앞으로 행복해지는 것도 ‘나’요, 불행해지는 것도 ‘나’이기 때문입니다. “‘나’란 본래 없다!”라고 외치는 일은 잠시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지금 현재 존재하고 있는 자신을 인정하고 냉정한 눈길로 자신을 분석해 들어가는 것, 이것이 아함경을 비롯한 경전에서 말하는 첫 번째 주제인 존재론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두 번째 주제인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무엇으로 이루어졌고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는지를 좀 더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알아가기 위한 생활방식이 그 하나요, ‘나’라는 존재를 환히 알아가는 사람이 이웃과 사회에도 그런 지혜를 전파해주는 일이 또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수행’이니 ‘실천’이 여기에 해당합니다만 이런 말에 심한 거부감부터 먼저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수행한다’, ‘실천한다’라는 말은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면 됩니다.
도박에 빠져서 가정을 내팽개친 사람에게 ‘도박은 옳지 않은 것이니 하지 말아라’라는 말을 백 번 천 번 들려주어도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도박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정작 그런 내용들이 그 사람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도박’이란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그 실상을 알아감과 동시에 그 당사자가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나쁜 줄은 알지만 습관적으로 자꾸만 도박장에 들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를 잘 몰랐을 때는 그저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편한 대로 살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무의미하고, 올바르지 않으며,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더 컸고 막연하게 불안하였음을 느꼈다면 이제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다르게 살아가면서 진실로 행복을 느꼈다면 그것을 이웃에게도 전파해야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주제입니다.
불광 전임교수 이미령 선생님께서 월간 불광 7월호에 쓰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