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도 스님을 찾아서 - 1편, 지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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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08.25 조회9,630회 댓글0건본문
지정스님께서 계시는 봉불사는 경남 마산 보다는 조금위인 함안에 위치해있다. 농가 몇 채 없는 인적 드문 곳이라는 이야기만 듣고서 허허 벌판에 우뚝 서 있는 절인가보다 상상했는데 와서 보니 산속 마을이었다. 산 아랫마을에는 농가가 제법 구성되어 있고 스님이 계시는 윗마을은 아무래도 산으로 더 들어가니 가구가 몇 되지 않았다.
나중에 스님께 들은 이야기 이지만 예전에 조선의 이씨 왕조를 피해서 왕건의 후손들이 숨어 살았던 곳으로 이 깊은 산에 닭 울음소리가 들리니까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이곳을 닭재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서 깊은 곳이란다.
적당히 넓은 마당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법당과 요사채, 그 사이 조그만 약수터가 있고, 노나무가 한 그루 있는 봉불사는 소박함 그대로였다.
부처님전 공양으로 준비해간 초가 맞지 않아 상단에 올려만 놓고(여기 봉불사는 기름등이다...!)삼배를 드리고 스님이 계시는 요사채에 들어갔다.
산 속 맑은 공기 덕분인지 스님께서는 몇 년 전 서울 불광사에 계실 때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고 더 젊어 보이셨다. 한 쪽 벽에 걸려있는 스님의 젊은 시절 흑백사진을 보며 감탄할 사이도 없이(참 잘생기셨다!^^) ...
<밑의 사진임........스님 젊었을때의 사진입니다.>
여기 저기 탐나는 사진들과 그림들을 감상하고 디카에 담으며 점심 공양부터 했다.
스님께서 좁다란 나무 상 위로 푸성귀 가득 상을 차려 놓으셨다. 물론 공양주 보살님이 계신다.^^ 스님께서 당신이 직접 가꾼 채소들이라며 마음껏 먹으라고 하셨다. 연하고도 부드러우며 쓰디쓴 맛 가득 즐기며 밥 한 공기를 거뜬히 비웠다. 사실 비빔밥 그릇에 담아 주셨는데 많다며 덜어 둔 밥마저 다 회수했다.^.^ 그리고 커피타임을 가졌다.
여기 봉불사라는 절 이름은 스님이 지으셨다고 한다. 스님 속가 성이 봉씨인데 봉씨인 내가 부처님을 잘 받들겠다는 뜻으로 봉불사라고 했다고 한다. 낙성식 때에는 광덕 스님도 오셨는데 절 명칭을 듣자마자 그 뜻을 바로 아시고는 말씀 하시더라며 옛 일을 회상하며 웃으시는데 살짝 주름진 웃음에서 그리움이 묻어난다. 굳이 지정스님께서 당신을 ‘촌노(村老)’라고 말씀 하시지 않아도 시골 할아버지에게 놀러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스님의 말씀은 스님 당신의 이야기였다.
지정스님은 1942년 진관사 태고종 스님이셨던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23세에 출가를 결심하고 소개장을 들고 능가스님을 찾아가게 되었다. 능가 스님은 그 때 제자를 받아들일 상황이 되지 못했고 대신 사제지간으로 평소에 친분이 두터웠던 광덕스님을 소개해 주었다. 광덕 스님은 그때 강남 봉은사 주지 스님으로 계셨고 봉은사에는 행자들이 4~5명 정도 있었다.
지정스님은 곧바로 행자생활을 시작하였고 3년 동안 공양간일을 보게 되었다. 어려웠던 시절이라 쌀이 떨어지면 밀가루를 묽게 게어서 상추전을 두툼하게 만들어 공양을 올리며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었다고 한다.
한 날은 밥 뜸을 빨리 들이려는 마음에 밥솥 뚜껑에 물을 부었는데 그만 김이 온 부엌에 가득 하게 되었고 그것을 마침 지나가던 광덕스님이 보시게 되었다. 그 때 광덕 스님 말씀이“곰이 대가리를 햝았구만!”... ?
광덕스님은 원래 상자를 두지 않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쉽게 상자로 받아 주시지는 않았다. 행자생활을 마치고도 지정스님이 떠나지 않으니까 광덕스님이 능가스님에게 가서 이름을 받아오라며 보내셨다. 아마도 소개 해준 능가스님에 대한 예우상 광덕스님이 그렇게 하셨을 거라고 한다.
그런데 능가스님에게 갔더니 능가스님께서는 광덕스님께 받으라며
돌려보내셨고 광덕스님은 다시 능가스님에게로 보내시고 그렇게 탁구공마냥 왔다갔다 세 번을 한 연후에 광덕스님에게서 이름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지(至), 깨끗할 정(淨)....지정!...
불국세계에 들어왔다는 뜻이란다. 그리고 광덕스님에게는 동국대에 다니던 상자가 있었는데 나중에 그 상자스님이 환속하시는 바람에 지정스님이 맏상자가 되었다.
봉은사 행자 생활을 마치고 지정스님은 해인사 강원에서 4년간 공부를 하고 해인사 선방에서 3년간 머물게 되었다. 그 때 광덕스님이 해인사에 2달에 한 번씩은 오셨는데 그러면 지정스님은 광덕스님의 고무신과 양말을 빨아드리고 차(茶)를 대접했었다고 한다.
해인사에는 광덕스님과 잘 지내시던 사형과 사제들이 많았는데 성철스님, 법정스님, 보성스님, 일타스님등이 계셨다고 한다. 그리고 광덕스님은 라면을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해인사 선방에 있을 때 장춘사를 소개받고 주지스님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때 해인사에 계시며 아껴주셨던 지월스님께서 “지옥문이 열리는 거야~”라며 말리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몸도 좋지 않았을 때라 장춘사로 가게 되었고 9년간 있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봉불사가 있는 곳의 아랫마을에 있는 절이다. 광덕스님도 장춘사에 오셔서 100일간 용맹정진을 하고 가시기도 하셨단다. 그 때에 장춘사 공양주보살님이었던 분이 자신의 농가가 절터로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정스님께 시주하게 되었고 나중에 그 곳에 봉불사 불사를 하게 되었다.
장춘사에서 9년간 보내고 잠실 불광사로 오시게 되었는데 그 때가 80년대 초반으로 불광사 초창기 때였다고 한다. 그 때는 특별한 소임이라고 할 것도 없이 스님이 회계를 맡아서 직접 헌공함도 비우고 장부를 기록했는데 그러면 광덕스님은 항상 한 달에 한 번씩 전표와 장부를 대조해 보시고 꼭 도장을 찍으셨다고 한다. 지금처럼 사무원이 없었을 때라고 한다.
한 번은 돈이 맞지 않아서 30만원이 남았다고 말씀드렸더니 네가 제를 빠뜨린 것이겠지!라며 지정스님을 탓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유치원 기공식 때에도 살림이 빠듯했을 때라 불단위의 음식을 가져다가 차렸는데 지정스님은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는데 그것을 본 신도분이 광덕 스님께 일렀고, 광덕스님께서 “지옥간다!”며 지정스님을 나무라셨다고 한다. 광덕 스님은 항상 신도편이 되어 신도의 말을 들어 주셨고 꼭 신도분이 보는 앞에서 나무라셨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번은 불단에 놓을 음식을 신도들에게 나누어서 가져오게 했는데 한 신도분이 어려운 일을 지정스님이 시키셨다며 광덕스님께 일렀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날도 광덕스님 방에 불려 가셔서 신도 분이 보는 앞에서 잘못을 비셨단다.
광덕스님 옆에 있는 것은 즐거웠지만 나중에는 이 모든 것에서 떠나고 싶으셨단다. 그래도 광덕스님은 지정스님 당신을 인정하셔서 주지 소임을 맡기려고 서류를 준비를 하고 계셨는데 그것도 모른 체 스님은 2년이 지난 뒤에 마하사로 떠나셨다고 한다. 지정스님이 떠나고 난 뒤에 광덕스님이“지정이가 갔구나~ 지정이가 갔구나~ ”라며 슬퍼하셨다는 이야기를 뒤에 전해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하사에서 5년간 주지로 계셨고 그 뒤에 한 6개월 정도 범어사 옆에 있었는데 이때에도 광덕스님은 오셔서 살짝 정황만 살펴보고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함안에서 봉불사 불사를 하게 되었고 낙성식 때 광덕스님을 모셨다.
광덕스님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우셔도 여간해서는 찾지를 않으셨는데 딱 한번 지정스님을 찾으셨다고 한다. 그 때가 봉불사에 있었을 때인데 광덕스님 말씀이 봉불사를 포기하고 불광사로 올라 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정스님께서는 여기 봉불사를 포기할 수 없어서, 불광사와 봉불사를 오갈수는 있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광덕 스님께서 “그럼 됐다”는 말씀만 남기셨다고 한다. 그 때 상황을 좀 더 잘 알았더라면 올라갔을 텐데 그러지 못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광덕스님이 열반하시고 난 뒤에 지정스님은 불광사에 오셔서 제 2대 법주스님이 되셨다.
여기까지가 지정스님께서 담담히 들려주신 스님의 이야기이다.
사실...지정스님의 말씀 중간 중간에 회한이 느껴져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봉불사를 나설 때 스님께서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실 때에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본공 스님과 미디어팀이 함께 갔다왔습니다.
스님께서 불광사 법주스님으로 계시는 동안 봉불사 보살님들도 많이 줄었고, 근래에는 불광사 식구들도 자주 찾아뵙지를 못하는 것 같은데, 스님께서는 오히려 불광사 중창불사를 더 염려해 주셨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는 못했지만 문도 스님을 찾아뵙기로 기획하고 그 첫 번째로 찾아 뵌 지정스님과의 시간은 의미가 깊었던 것 같다. 함께 갔던 미디어팀과 본공스님과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을 보냈고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