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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암의 여인들, ‘연(緣)’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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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7.10.07 조회10,0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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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自我)란 무엇인가?

자(自)도 ‘나’요, 아(我)도 ‘나’인데 도대체 내가 나를 찾는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스스로를 자신으로부터 일탈(逸脫) 시키고픈 때가 있다. 이따금 내가 싫은 것도 같은 이유 일게다.


10월의 마지막 날 일요일 문득 새벽 5시에 일어나 주방에 들러 아이들이 먹다 남긴 빵 한 조각에 어설픈 끼니거리로 김밥 하나를 사들고 ‘설악’을 찾아 나섰다. 봉정암에 오르고파서였다.

 

 

 

 절은 절이되 절 같지 않은, 그러나 절 같지 않되 엄연한 절인 중생의 구법처(求法處)를 찾아 나섰다.


“왜 내가 여기 있지? 무엇을 하고 있지?”


그러나 그 물음에 답은 필요 없을 듯싶다.

모든 행위에 연(緣)이 있잖은가.

그러니 선도 연이요, 악도 연이고, 우연도 연이며 필연도 연이다.

산을 오르다보니 뛰쳐나온 연이 하나하나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수시간. 오후도 아물 무렵 발걸음 옮겨진 곳은 어느새 수렴동계곡이 되었다.


낙엽 흩날리는 깊은 산중, 일요일 반나절 후딱 지나니 인적으로 신음하던 이곳이 어느새 숲 속 가득 ‘한가을’을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아이웃음’이 흘러나옴을 느꼈다.

잰걸음으로 다가가니 승복차림의 여인네들이었다.


가끔 승복을 입은 불자나 보살님들이 많이 있는 터라 이 역시 그렇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비구니스님 한분에 시자(侍者)로 따라나선 보살님 한분이었다.


원래 부처님께 귀의한 해로부터 손꼽는 법람 외에는 나이를 묻지 않는게 불자의 관행인지라 얼추 예순 안팎으로 어림짐작한 두 분의 얼굴은 ‘해맑음’그 자체였다.


낯빛 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동정인지라 수행으로부터의 얻음은 ‘천진’이 근본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보살님은 어디를 가세요?”


나를 접한 두 분의 물음에 선뜻 “봉정암 가는 길이에요”라며 나도 모르게 낭랑한 목소리가 터졌다.


“호호, 우리 이 보살님 따라 갑시다”스님은 영시암에서 점심 공양이나 하고 다시 백담사로 내려가실 양이었다.


나 참, 이렇게도 순진하시기는…. 두 분의 발아래를 물끄러니 쳐다보니 딱도 하였다. 두 분이 신고 있는 신발은 겨울용 털 고무신이었다.


“아유, 봉정암이 어딘데요. 이런 차림으로는 가시기 힘들어요.”


괜스레 실없는 소리를 했다는 생각에 손으로 입술을 가렸다.


괜찮아요, 우리는 발 닿는 대로 가는 곳이 못가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대뜸 이런 대꾸에 자신이 무안하기만 했다.


어느덧 ‘나 홀로’를 즐기려던 사욕이 이처럼 새로운 인연으로 나를 묶었는가 싶더니 이윽고 다시 새로운 기연을 접하게 한다.


봉정암을 바라보는 순간, 헐레벌떡 하산을 하는 젊은 아가씨가 있었다.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었는데 지금부터 부지런히 가도 3시간은 족히 넘을 하산 소요시간을 모르고 이 아가씨는 겁도 없이 홀홀단신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산중암흑이 얼마나 빨리 오고 얼마나 무섭던가.

우리 일행은 자칫 일어날지 모를 사고를 막고자 ‘불쌍한 이 중생’(?)을 부지런히 설득했다.

그리고 손을 잡고 봉정암에 함께 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텅 빈 봉정암에 닿았다.

 


 

 많을 땐 700~800명이 칼잠을 청하는 이 곳 봉정암은 단풍철 지난 늦가을(적어도 이곳은 이미 초겨울로 접어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스라치는 바람결과 함께 적막한 산사의 정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눈이 몇 길이나 쌓일 이곳은 접근 불가의 설경이 된다.

짐을 풀고 먼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내가 가지고 간 공양은 쌀 외에도 의약품.

정진수도하시는 스님들의 건강이 하도 허해 보이고 잔기침을 많이 하시는지라 오래전 이곳에 들릴 때 비타민 등 영양제와 초기 감기에 쓰일 일반약을 주섬주섬 싸오리라 작정했던 것이다.


주지스님께서 오시더니 나를 보고 낯이 익다 하셨다.

그런데 이런저런 말씀 끝에 감기에 걸려 함께 저녁 예불을 못하시게 되었으니 우리 일행 중의 비구니 스님더러 예불을 맡아 주십사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스님 제가 약을 좀 갖고 왔어요.”하면서 불전을 가리켰다.


스님은 놀라시는 표정으로 “약이요?”하고 되물으시더니 얼른 부처님께 예를 표하고 공양더미를 끌어내리셨다.


이윽고 봇짐 속에서 꺼낸 약 하나를 들고(트로키류였다.) 너무 기뻐하시는 얼굴이 되었다.


“이거 내게 참 잘 맞는 약입니다. 허허, 이 약을 보살님께서 가지고 오시다니…”하시는 게 아닌가.


저녁공양을 끝낸 우리는 많은 대화 끝에 서로를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약사임을 모두가 알았고 속세를 등지신 분들은 그저 스님 그 자체였으며 서둘러 하산하려던 아가씨는 외국의 유명의류브랜드 점장이었다.


그 아가씨와 나는 서로의 스트레스를 피해, 또 무의식적인 생존경쟁의 삶에 부대끼며 살아온 자신을 외면하려 이곳을 찾은 공통점이 있었고 나머지 한분의 비구니스님과 또 다른 한분의 보살님은 발 닿은 무위의 연을 즐기며 이곳에 와 계신 것이다.


우리는 예불을 들인 후 잠을 청하기보다는 다시 공양의 향을 사르는 심정으로 대화의 꽃을 피워나갔다.


그리고 먼동이 튼 후 아가씨와 나는 속세를 향한 덧없는 ‘유턴(?)-걸음-’을 재촉했다.

어느덧 나는 다시 크랙션 소리와 먼지 자욱한 도심을 깔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무엇이 못 마땅했을까.

비교적 큰 지역약사회의 회장이란 중책을 맡아 하는 일마다 하늘의 도움으로 회원의 성심으로 성황를 이뤘으며 결실을 거뒀는데 그런 보람은 어디가고 어찌 빈터 같은 공허함이 나를 짓눌렀단 말인가.


사람은 때로 먼지처럼 보이는 연을 털어내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나 결코 털어낼 수 없는 것은 정작 다름 아닌 연이다.


중생도 스님도 부처님도 심지어는 새들도 짐승도 풀잎도 모든 것이 연으로 이어진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순간의 공허함이 참으로 부질없는 투정이었음을 실감한다.


그 실감 속에서 내가 다시 ‘나’로 정리되었음을 발견한다.

 

 

 글을 쓰신 문수혜 보살님은 성남구법회 활동 중이시구요, 현재 성남시 신구대 앞에서 20년이 넘게 약국을 하고 계십니다. 약국 이름은 수약국이구요, 현재 성남시 약사회 회장을 수년째 맡고 계십니다.(수약국 031-734-7784)

 이 글은 성남구 법회 명등 보살님께서 전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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