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여행을 회향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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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8.11.08 조회16,510회 댓글0건본문
스리랑카에서
돌아오면서 또 가고 싶은 여행지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시간이 흐를수록 여운이 많이 남는 나라입니다. 스리랑카에 다시 간다면 더 잘 보고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맛난 홍차도 많이 사오고 싶고요! ^ ^
스리랑카까지의 거리가 멀었고 그 곳에서도 이동거리가 있었기 때문이 체력적인
부분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느낌이 미얀마처럼 화려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볼거리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인상에 깊이 남습니다.
검은 피부의 해맑은 눈동자가, 그저 잘 웃어주는 순박한 웃음이, 마냥 수줍기만 한 여인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스리랑카는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3/1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나라이며 한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때 인도에서 홍차 농장에 착취되어온 타밀족은 아직까지도 소수민족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스리랑카 내전도 그들과의 싸움인데 더 깊은 내막은 아름다운 해변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세계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리랑카 바로 옆에 몰디브가 보입니다. 그 몰디브만큼이나 아름다움 해변이라고 합니다. 그 동안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고 지금의 스리랑카정부는 강경하게 그들을 진압하고 있는데 그러한 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70%가 불교이며 흰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인도 있습니다. 순례하는 곳마다 개발하지 않고 자연그대로 남겨져 있는 불교 유적을 만나볼 수 있으며 그 훼손 정도도 적어서 그들의 문화를 마음껏 느껴볼 수 있습니다. 성지에서는 맨발로 다녀야하며 꼼꼼한 가방 검사와 몸수색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은 내전 때문에 혹시라도 모를 위험으로부터 대비입니다.
농업국가라 논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삼모작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길가에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야자수에도 코코넛이 먹음직스럽게 주렁주렁 매달려있는데 어디 하나 버릴 것 없다는 야자수에도 주인이 있는지 농장을 갖고 있으면 부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집 있고 차있으면 부자! 월급은 대략 20만원에서 30만원이라고 합니다.
교육은 5살부터 이루어지며 무상이고, 대학까지는 3번의 시험을 치르며 올라가게 되는데 3%만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공부만 잘하면 식사제공에 책이며 옷이며 모두가 공짜라고 합니다. 여자 남자 학교가 분리되어 있으며 흰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은 공교육기관에 다니는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버스도 빨간색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이라는군요. 차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중고로 수입해온다고 합니다.
가이드였던 ‘싱’도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습니다. 한국에서 3년간이나 있었다는군요!
아직 한국말이 서툴긴 했지만 무척 친절한 분이었습니다. 중매로 결혼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캔디에 갔을 때 커다란 호숫가가 있었는데 그 곳이 데이트장소로 각광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곳에 갔을 때 정말 우연찮게 연인이 서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는데요, 보살님들과 차 안에서 좋아라고 손을 흔들어 댔습니다. 물론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올려보이면서요. 참 스리랑카에서는 만난 젊은 그들의 모습이 왜 그렇게 예쁘게만 비춰지는지요!
인구의 52%가 여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결혼을 하려면 지참금이 있어야 한답니다. 16살만 되면 결혼을 할 수 있고 32살이 넘으면 할머니소리를 들어야 된다는군요! 언젠가 TV에서 보았는데요, 홍차 밭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30대 초반 아가씨가 지참금을 마련해서 시집가게 되었다고 환하게 웃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동안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간호에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홍차 밭에서 하루 종일 차 잎을 따서 받는 품삯이 우리나라 돈으로 이천원이었습니다.
홍차 맛은 단연 으뜸이었습니다. 제일 형편없다는 티백도 떫지도 않고 맛있었습니다. 레몬 한 조각으로 더 맛을 낼 수도 있고 우유를 적당히 섞어서 마실 수도 있습니다. 홍차가격도 너무나 저렴해서 많이 사왔는데 이리저리 나눠주고 겨우 1달러짜리 하나 남았는데 우려먹는 그 맛이 너무 좋아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홍차를 ‘실론티’라고도 하는데요, 실론이 스리랑카의 옛 국가명이라고 합니다.
스리랑카의 음식들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함께 간 아제여행사 사장님이 매번 우리나라 쌀밥에 김치를 제공해주신 배려도 감사했지만 스리랑카의 다양한 볶음밥도 맛있었고 커리며 닭고기요리 등등 음식들이 별로 낯설지 않았습니다. 회주스님께서도 차 안에서 마지막 인사말로 어쩜 그렇게 다들 맛있게 먹고 많이 먹느냐고 하셨지만 식탐을 낼만 했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과도를 별로 사용할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열대과일들을 기대하며 여행지에 처음으로 과도를 챙겨왔다고 불은화보살님은 즐겁게 말씀하셨는데요, 열대과일도 제철이 있었습니다! 5.6.7월에 수확한 것이 아주 맛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있는 축제도 그쯤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축제 때 캔디의 불치사에서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공개된다고 합니다.
불치사 경내에서 새벽 일찍부터 기도하고 있던 스리랑카 사람들이 문이 잠깐 열리자 우루루 몰려가서 눈부신 사리함을 향해 열심히 반배를 하더군요! 우리는 문 안으로 들어가서 불치사리함을 제대로 볼 수 있기를 바랐는데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스리랑카사람들도 3년 전부터 예약해야지만 안에 들어가서 사리함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이 나라사람들의 열정을 보고 온 것만도 큰 수확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약을 한 줄에는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 대신 불치사리함에 보시하려고 가슴에 품고 있던 100불을 한 보살님으로부터 대학원기금으로 보시 받았습니다. 대학원졸업 때 감사헌공금으로 뜻 깊게 쓰기로 했습니다.^ ^
머나먼 타국 불교 국가에서 대학원생들만 모여 조용히 마지막 밤을 불태웠습니다. 교육에 힘써 주시는 불광사를 돌이켜보며 대학2년에 이은 대학원2년 마지막도 뜻 깊게 회향할 수 있도록 다 같이 마음을 모으자고 했습니다. 멋지죠?!
스리랑카에 있으면 더불어 소박함에 삶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보다 물질적으로 뒤처지지만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 그들의 미소가 한동안 그리울 것 같습니다. 늘 출근길에 동네 어귀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께 먼저 기도를 올리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스리랑카 사람들, 누군가가 죽으면 플랜카드나 벽보를 부쳐 동네 사람들이 함께 그 사람을 기리는 그들...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뿌리고 온 추억을 생각하며 기쁨에 훈훈한 미소를 지을 날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음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졸업여행에 동참해주신 회주스님과 대학원7기생들 그리고 대학동창, 대학원선배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즐겁고도 뜻 깊은 여행이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