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스님 불교동화--비둘기와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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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8.11.12 조회16,562회 댓글0건본문
비둘기와 쥐
히말라야의 산줄기가 느릿느릿 뻗어내린 남쪽 언덕 밑에 아름다운 숲이 있었습니다.
그 숲속에는 한 떼의 비둘기가 살고 있었습니다. 비둘기떼의 왕은 목에 금빛 무늬가 있었으므로 “금반왕”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금반왕은 착하고 어질고 슬기가 많았습니다. 비둘기들은 평화스럽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봄날 금반왕은 비둘기떼를 모아놓고 얘기했습니다. 늘 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얘들아, 내 말을 잘 듣거라.
맛있는 콩이 흩어져 있다고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함부로 덤비다가는 화를 입게 된다.
자식은 버릇을 잘 가르쳐야 한다.
아내는 정숙하여야 한다.
왕이라도 신하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말은 생각한 후에 하여야 한다.
모든 일을 할 때 서둘러서는 안 된다.“
비둘기들은 조용히 앉아서 임금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둘기 한 마리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평소 자기는 꾀가 많다고 믿고 있는 비둘기였습니다.
“임금님 말씀은 모두가 옳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임금님 말씀대로만 했다간 살지 못합니다. 먹을 것을 위해서는 모험이라도 해야 합니다. 위험하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 비둘기는 콩밭으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늘 듣는 말이어서 지루하게 생각하고 있던 비둘기들은 동무 비둘기의 말에 용기를 얻고, 임금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제히 콩밭으로 달려갔습니다.
비둘기들은 금반왕의 가르침을 잊어버렸습니다. 오직 먹을 것에만 정신을 팔다가 사냥꾼이 쳐놓은 그물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비둘기들은 꼼짝 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비둘기들은 앞장선 비둘기를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놈아, 모든 게 너 때문이다. 네가 모험할 것을 충동질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하지만 우리가 죽기 전에 널 죽일 거야.”
비둘기들은 소리소리 지르며 충동질한 비둘기를 쪼아댔습니다. 금방 털이 뽑히고 온 몸에서 피가 났습니다.
그때 웬 비둘기 한 마리가 그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금반왕이었습니다. 콩밭으로 달려간 비둘기들이 걱정되어 뒤쫓아 왔던 것입니다. 금반왕이 말했습니다.
“그 친구를 놔줘라. 살다보면 나쁜 뜻은 없으면서도 친구에게 불행을 끼치게 되는 수도 있느니라. 그리고 이번엔 너희들 스스로가 만들어 받게 된 일이 아니냐? 아무리 욕해 봐도 소용없는데 친구를 미워하기만 해서는 무엇 하겠느냐? 예부터 성인들은 말씀하셨느니라. 남보다 뛰어나게 되려면 졸음과 약함과 두려움과 성냄과 게으름과 주저함, 이렇게 여섯 가지 잘못을 없애야 된다고. 혼자서는 힘이 없지만, 여럿이 힘을 모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 자, 너희들도 힘을 합쳐라. 그리고 날개를 활짝 펴고 높이 날아올라 발톱으로 그물을 찢어라!”
금반왕의 말씀에 힘을 얻은 비둘기들은 높이 날아오르며 발톱으로 그물을 찢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사냥꾼이 비둘기떼가 그물에 걸렸다고 좋아하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금반왕이 소리쳤습니다.
“사냥꾼이 너희들을 잡으러 달려온다. 이제 시간이 없다. 자, 힘차게 날아보아라. 힘차게!”
비둘기들은 죽을 힘을 다해서 힘차게 날아올랐습니다. 그러자 이제까지 자기들을 둘러 씌우고 있던 그물이 거뜬히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비둘기들은 그물을 머리에 인 채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하늘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비둘기들은 금반왕에게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이 그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될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더 가자. 그러면 강이 있고 그 근처에 산이 있는데 그 산에는 나의 친한 벗인 ‘금모왕’이 살고 있다. 그리로 가서 그물을 쏠아달라고 하자.”
금모왕은 쥐의 임금님이었습니다. 그는 금반왕 못지않게 성격이 침착했고 모든 일을 조심스럽게 처리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 아주 겁쟁이기도 했습니다. 금모왕의 궁전은 웅장했는데 만약을 생각하여 도망갈 구멍을 백 군데나 뚫어놓고 있었습니다.
금모왕이 궁전에 앉아 있는데 비둘기떼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조그만 눈을 크게 뜨고 뾰죽한 귀를 바짝 세웠습니다. 그때 금반왕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안녕하시오. 금모왕. 비둘기 가족이 왔소. 어서 우리들을 맞아주시오.”
그때서야 금모왕은 세웠던 귀를 내리며 숨을 내쉬었습니다.
“오, 나의 친구 금반왕이요? 어서 오시오. 나는 또 독수리떼가 오는 줄 알고 굴속으로 숨으려는 참이었소. 참 오래간만이요.”
금반왕은 지금까지의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쥐왕은 친구 비둘기왕이 부하와 함께 그물에 걸려 죽게 되었다가 그물채 도망쳐온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금반왕이 말했습니다.
“모든 게 눈앞의 먹이에 눈이 멀어 가볍게 움직인 탓이오. 부탁하노니 대왕께선 그 잘 드는 이빨로 이 그물을 잘라서 우리의 몸을 자유롭게 해주시오.”
“걱정마시오. 그런 것쯤 쉬운 일이요.”
금모왕은 먼저 금반왕의 머리 위에 걸려 있는 그물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금반왕은 “내 부하들을 먼저 구해주시오.”하는 것이었습니다.
금반왕이 부하를 먼저 구하려고 하는 마음을 쥐의 왕인 금모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금모왕은 부하 쥐들에게 명령하여 비둘기들을 구해주게 하고 자기는 금반왕의 그물을 쏠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비둘기들은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금모왕은 비둘기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잔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금반왕이 부하 비둘기들에게 말했습니다.
“욕심부리지 말아라.
모든 일에 차근차근하고 조심하라.
어려운 때일수록 힘을 합쳐 움직여야 한다.
언제나 성인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그 말씀에 따라 움직여야 하느니라.“
이번에는 아무도 대꾸하는 비둘기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