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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새로운 삶의 모색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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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09.12.07 조회19,6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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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새로운 삶의 모색을 위해

  지난여름 헤쳐지고 무너진 잔해들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스며든다. 번거로운 일상사 속에서도 외로움, 쓸쓸함이 묻어남은 어쩔 수 없다. 얽히고설킨 삶들, 그 사이사이를 놓치지 않고 끼어드는 바람 같은 고통들, 그 여름의 끝에서 나는 여행을 떠났다. 내 生 앞에 오롯이 혼자 서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사방에서 몰려드는 외로움에 나는 형체도 없는 듯하다. 만났다 헤어지는 인연사(因緣事) 속에서 같이 했던 시간들이 남기고 간 다하지 못한 아쉬움들, 삶 속에서 하나씩하나씩 빛을 잃어간 내 지난 시절의 꿈의 파편들, 언젠가 닥쳐올 죽음(死)이 불러일으키는 未知에의 불안…, 가슴 한복판에서 서걱서걱 마른 바람이 인다. 부서진 것들이 모래알처럼 서걱대는 가슴을 안고 강가에 서 있는 중년이 되었다. 중년의 나이란 세상의 중심에서 조금은 떨어져, 내면을 향한 또는 세상을 향한 깊이 있는 시선을 던질 때가 아닐까.

  『진리는 그대 내면에 있다. 그것은 그대 내면의 핵심이다. 그대만이, 그것을 꿰뚫을 수 있다. 다른 누구도 그대와 함께 갈 수 없다. 길은 완전히 홀로 있음 속에서 여행해야 한다. 그리고 스승은 그것을 알기에 그대를 홀로 남겨질 여행 속으로 밀어 넣는다.』

                      -사십이장경-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홀로 내면의 아름다운 공간에 이르러, 그것을 모든 존재와 나누는 일이라고 한다. 완전히 홀로 남겨질 이 작업은 지난至難하고 외로울 것임에 분명하다. 세상살이 또한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사람은 태어나고(生) 또 나이를 먹어(老) 병이 들고(病), 죽고(死) 하는 삶의 여정 속에서 철저하게 혼자 놓이게 된다. 모든 존재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가며 사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이라 하지만 같은 시간과 공간을 어느 누구와도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생의 고비마다 홀로 남게 됨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여진 삶의 실재實在이며, 진리이다. 세상살이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이 같은 만남과 헤어짐, 또 홀로 남는 일에 길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이제 기대서지 않는 나무처럼 홀로 서야 한다. 이때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바람처럼, 또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거울처럼 아주 가볍게 일상 속에 홀로 섬은 아름다운 삶의 결을 이룬다. 그 사이사이 배어드는 쓸쓸한 느낌조차 우리 생에 중후重厚한 무게를 싣는다.

  세대 차이를 들어 부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아이들, 또 그 사이에서 소외되는 노인들, 뿐만 아니라 종교, 성격, 가치관 등의 차이로 함께인 듯하지만 외롭게 자기만의 성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 요즈음 사람들의 모습은 아닌지.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자기를 주장하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들 간에도 애증과 갈등으로 소원疏遠하다. 조금도 손해보려하지 않는 마음, 닫힌 마음으로 수많은 관계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늘 혼자인 것 또한 요즈음 우리들이다. 혼잡한 도심의 거리 혹은 지하철, 구원(救援)을 외치는 사람들, 누가 누구를 구원한다는 것일까. 대중가수에 열광하는 10대 어린 소녀들, 그들의 꿈은 어디에 있을까. 부조리한 삶 속에서 정의를 위한 절규로 사라져간 젊은 영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세상은 아직도 온통 모순투성이일까, 50년이 넘은 긴 세월을 올올이 쌓아두었던 그리움 끝에서의 짧은 만남, 그리고 곧 이은 또 하나의 이별, 이산가족들에게 또 하나의 상처로 남지는 않을까.… 소중한 것들은 다 어디로 가고 껍데기만 남은 듯한 우리들의 분주한 일상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쓸쓸하다. 도망칠 수 없는 생의 소용돌이에 이르러 온전히 홀로 서지 못함이, 또 본능적인 이기심에 갇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온전히 하나 되지 못함이 불러일으키는 인간에 대한 비애, 그리고 그 안에서 일렁이는 쓸쓸한 느낌은 잠재울 수 없다. 

 『그대의 가슴이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대가 삶과 삶 속에 있는 괴로움을 체험했을 때, 그대가 삶에서 고통 받고 절망을 이해했을 때 그대는 건너편 언덕으로 움직여 갈 준비가 된 것이다. 성숙한 사람이란 삶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꿈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사십이장경-   

  삶을 들여다보고 그 밑바닥까지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갖추어져 있을 때, 이기적인 욕망에 허둥대지 않는 한가로운 마음이 되어 세상사에서 자유로울 때, 피안(해탈)에 이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때론 행복하고, 때론 괴롭고 쓸쓸한 바람을 일으키는 삶이지만, 그것은 이쪽 언덕(此岸)에서 저쪽 언덕(彼岸)에 이르는 길목 위에 엄연히 실재한다. 우리는 지금 외롭게 그 길목을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대중가요 가사가 떠오른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아마 이 같은 광기로도 밀려드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일까. 혼자이기가 외로워, 양어깨를 내려 누르는 생의 무게가 버거워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거리는 그들의 혼란스러운 외침과 광기 어린 행위로 난무한다. 나 또한 늘 생각한다. 그때 능숙하고 아주 유연했어야 했다, 내 생이 여울목을 지나 한적한 곳에 이를 때마다 뒤따르는 회한(悔恨)이 있다. 인사동 거리를 온몸으로 기어 생을 체감(體感)하는 장애인, 그가 도피를 일삼는 나의 비겁한 삶 앞에 빨간 신호등을 켠다. 나는 멈춰서야 한다, 그 타성으로부터의 대전환을 위해. 한겨울 내면의 충일(充溢)을 위해 맨 몸이 되어버린 나무, 나는 그 앞에서 허울의 옷을 벗어야 한다.

  철저하게 혼자라는 절망의 늪에 빠져볼 일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생을 위해 가슴에 깊은 우물 하나를 마련해 놓아야만 한다. 거기에 잦아들 줄 모르는 생의 고통들을 하나하나 갈무리해야 한다. 이제 조만간 닥쳐올 죽음(死)까지도. 세상을 사는 일은 하늘을 날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새의 관념(觀念)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 같이 버러지처럼 온몸으로 기어 느껴야만 한다, 삶이 투명해질 때까지….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는 허욕(虛慾)의 허물을 벗는다. 이때 비로소 비록 생로병사의 고통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서로 따뜻한 배려와 위로로 살아가는 진정 사람 사는 세상 안에 살게 된다.

  깊어진 가을, 낙엽이 다 져버린 오솔길을 따라 홀로 길을 떠나본다. 내면으로의 길고 긴 여행을…. 헤어나기 힘든 외로움(孤獨)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어느덧 가슴 가득한 평온으로 외로움은 형체도 없고, 거기서 진정한 나를, 삶의 용기를, 또 진실한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외로 난 길을 바랑 하나 짊어지고 홀로 걷는 수행자가 있다. 그는 바람이 두드리는 문소리에도, 시야를 어지럽히는 잎새들 사이에서도 홀로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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