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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0.01.22 조회20,1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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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과 우리나라

대만(타이완)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제가 무조건 항복할때까지 51년간 식민지로 있었고,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대한민국과는 여러모로 닮은점이 많은 것 같다. 근대화 과정. 전직 대통령의 사건.사고등 정치.경제적으로 우리나라와 엇비슷하게 살아오고 있는 곳이다. 다른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광복후에 무혈입성으로 기독교가 자리잡아 다원종교 국가(종교의 자유에 있어서는 최고선진국)를 구성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유일의 땅이 된 것이다.    대만도 중국 국민당 정부 초기에는 그리스도교의 활동이 왕성하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약5% 정도만이 그쪽 종교에 심취하고 불교,유교,도교의 혼합이 93%라고 하니 그 변화 상황이 매우 흥미롭다. 우리는 불광사 중창불사의 실시설계를 앞두고 그들의 하드웨어(불당.건축물)와 소프트웨어(전법.포교)를 직접 답사 견학하여 반영하고자 이번 대만 사찰답사를 떠나게 되었다.

  당초 목적지로 선택한 곳은 대북(타이페이)과 대중 지역인 포리에 위치한 보천정사, 대중의 중태산사, 대남지역의 고웅시(카오슝)에 있는 불광산사 포교원 격인 남팽별원, 불광산 불광사, 대북시내 위치한 선도사이다. 올라오는 길에 따로이 추가한 청화의 복산사까지 총 여섯 사찰이 우리네가 답사한 곳이다. 우리나라의 이동거리 및 지역으로 비교한다면 서울에서 공주를 거쳐 대전 찍고 부산을 돌아 안동으로 해서 서울로 올라오는 여정이라 하겠다. 


 3박4일의여정

영하14~5도의 서울 날씨에서 두 시간여 공간을 이동하여 도착한 대만 타이페이는 영상16도 늦가을 정도의 날씨에 가랑비가 내린다. 온도차가 심하여 따뜻 할 줄 알았지만 바람이 불어 매우 쌀쌀했다. 한시간 시차가 있어 시간이용엔 득이다.

  점심공양 후에 바로 3시간 거리인 포리의 보천정사로 이동했다. 소규모 도심 사찰인데 외관부터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인구 이십만명 정도의 중소도시에 위치한 보천정사는 전체적인 형상이 탑형식으로 20층 정도의 건물이다. 붉은색조의 화강석 버너마감으로 외장을 처리하였고 탑신상부 형상인 앙와 복발 보륜 등을 형상화 하였다. 나중에 숙소인 호텔에서 보니 외관조명을 아름답게하여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확실하게 담당하고 있었다. 송파잠실에서도 우리 불광사가 랜드마크가 되어 있을 훗날을 마음속으로 기대하여 본다.

 내부 공간에는 간접조명을 이용한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로 신비감을 더욱 강조한 디자인을 채택하였는데 중,소규모 선방이나 법당 디자인에 고려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저녁공양 시간에 오늘 답사와 준비된 안건들에 관하여 논의하였고, 로비에서 2차 난상토론을 펼치다 대만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둘째날 숙소인 포리에서 한시간 정도 이동하여 이른아침 중태산사에 도착한 답사팀은 규모의 장대함에 위축(?)되었는데 우리 규모에 비추어 전체적인 것 보다는 부분적인 공간마무리 재료와 구조미에 관한 부분에서 답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따로이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화강석의 가공으로 광배의 표현, 옥대리석을 이용한 부처님 친견공간 등은 우리네 절 문화와는 많이 달랐다. 전시공간을 방불케 하는 마감들에선 약간의 위화감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되었으나, 건축물 기둥을 이용한 사천왕상 4면 조각. 외장재료를 동판 연꽃잎으로 형상화 한 것들은 참신한 발상이라고 여겨졌다. 

  오후엔 불광산사 포교당 역할을 하는 고웅시(제2대 도시) 남팽별원으로 이동했다. 대지면적은 우리 잠실 불광사와 비교하여 1/3 정도 큰 것으로 보였는데 이곳은 대법당.미술관.교육관.어린이도서관.학습실 영어.일어등 봉사자들로 구성된 어학교실.저렴한 비용의 전통악기배우기 교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또한, 호텔급의 신도숙소.기념품 판매 및 다실. 오픈공간의 개방으로 담소 및 청소년들의 자유독서 공간 이용등 생활에 밀접한 사회복지센터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도심 사찰이었다.  아! 이곳이다... 답사팀 모두들 이러한 느낌을 받으신 것 같다. 처음 도착 하였을때 주지스님의 반가운 환대와 자상한 안내 그리고 봉사하시는 보살님들의 정갈한 움직임과 그들에게서 배여 나오는 정중함에서 그네들의 신심을 읽을 수 있었다. 서울국제 불광산사회에서 몇 년 계셨다는 보살님이 한국어로 보완 설명해주시니 더 반갑다. 우리 불광 다실에도 가끔 오셨다는 그분이 한국 온다면 또 뵙기로 했다. 봉사보살님들의 통일된 옷 매무새와 친절한 자세등은 우리 불광에서도 본 받을 부분이 많다고 생각되었다. 저녁 공양후엔 토론 대집회로 오늘도 새벽 한시다. 매일 이동숙박이라 짐 풀고 싸는게 조금 번거롭다. 습기가 많고 난방이 안되는 이곳은 잠잘땐 매우 춥게 느껴져 따뜻한 우리 온돌바닥이 그리워 진다.  


  셋째날, 성운대사가 처음 이곳에 자리잡아 터를 일구어 전체를 불광산이라 했던 불광산사 로 이동이다. 입구에서 안내하시는 의일스님이 주신 한역판 “기꺼이 원해서 하는 마음”이라는 소책자를 보니 그분의 위대함과 함께 같은 꿈으로 비슷한 삶을 살다가신 우리 광덕 큰스님이 뵙고 싶어진다. 입구에 위치한 정토동굴의 현재상태는 조잡한 마감의 것으로 보여지나, 그 시절에 지하공간을 이용하여 부처님의 이야기를 스토리화하여 쉽게 전달해 주려하시었던 사려가 깊다. 동굴을 나오니 기념품 판매점이다. 언젠가 용인 자연농원을 갔다가 구경하고 나오니 기념품점으로 연결하는 공간구성이랑 같아서 재미나게 생각하였다.

  대웅보전에서 회주스님의 목탁에 맞추어서 삼귀의 반야심경 사홍서원으로 우리 중창불사 원만성취 발원예불을 올리니 한층 책임감과 원대한 목표가 생긴다. 부처님 치아사리를 보관하고자 불사를 일으키고 있는 산등성이 넘어 현장으로 소형버스로 이동하니 12만평 규모의 땅에 건립되는 장대한 역사물로서의 가치를 지닌 현장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박물관 정도의 규모라 해도 견줄 것 같았다. 1백만명의 사경지를 함께 매장한다하니 그들의 불사에 대한 열기가 식지 않을 것 같다. 국민적 관심을 일으킨 행사를 통해 불사에의 참여 유도등은 진정 대단한 일 임에 틀림없다. 공사 상황을 구경오신 많은 시주공덕 신도들을 위해 직접 설명을 하시는 스님도 이채롭지만 계속해서 버스가 당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루의 일과인 것으로 보일 정도다.

  이젠 다시 6시간여 이동하여 대북으로 간다. 가는 길에 청화에 있는 불광산사 말사인 복산사를 들려 가기로 일정을 조금 변경하였다. 불사가 현재진행중이며 도심 사찰로서의 규모가 우리 불광사와 가장 비슷한 규모라고 하니 기대가 되었다.  1층에 대웅보전이 있는데 우리의 신축 보광당 규모와 비교해서 좌우는 같고 전후는 우리가 조금크다. 중층인 2층으로 구성된 것은 같으나 좌석수는 우리보다 두배나 많다. 벽면을 이용한 전시공간 활용. 중층 좌석의 극장식 설계(좌석에 책상). 강의실 공간의 다양화와 국제회의 및 세미나실. 교양강좌. 취미교실등 생활에 접근하고 있는 대만 불교의 현재를 보여준다. 답사팀은 또 한번 많은 공감을 하는 눈치다. 실내디자인의 방향성 그리고 우리 전통과 현대를 어찌 구현해서 차별화 하는 공간으로 만들까... 많은 숙제가 머리를 맴돈다.

  복산사에서 사찰식으로 준비해주신 저녁공양을 맛있게 하였다. 접견실로 이동해서 궁금한 이야기로 인해 시간이 많이 지났다. 우리도 접견실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역시나 반갑게 맞이 해주고 버스가 멀리 떠날때 까지 노래와 함께 연꽃모양의 손 인사를 멈추지 않았던 스님과 자원봉사자 거사님.보살님.... 가슴 뭉클한 형제애 같은 마음을 간직하고 우리 또한 손을 내릴 줄 몰랐다. 안보이실때까지.... 늦게야 도원시에 있는 숙소에 여장을 풀고서 답사  이야기로 마지막 밤 아쉬운 시간 달랜다.


  넷째날, 타이페이 시내에 위치한 선도사를 끝으로 우리의 공식 답사는 마친다. 선도사는 왕복4차선 도로에 인접하여 위치한다. 서울의 교회건축 디자인과 같이 도로에서 계단식으로 접근하여 곧바로 대웅보전으로 안내된다. 접근성에선 단연 돋보인다. 쉽게 대웅전 부처님도 뵐 수 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 도심의 포교당에도 적용해 봄직한 건축디자인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좌우측면의 공간을 입식의자를 두어 공간을 활용하고 있었고, 이동용 의자 및 테이블을 계단실에 쌓아둔 것도 보였다. 기물창고 시설도 필요한 것이니 실시 설계시에 적극 반영할 부분이라 생각되었다. 내부공간은 대웅보전을 제외한 다른 곳은 미공개라고 한다. 로비 한쪽 면에 접수공간을 두어 짜투리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 눈에 띄었다. 불광산사처럼 개방적이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쉬웠지만 그것 또한 도심 사찰의 한계라 생각되었다.


우리의 마음가짐

   오늘날 그들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룩한 불법의 포교와 생활화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기에 대만은 훌륭한 곳이다. 서구화의 물결속에서도 불법을 호지하고 널리 펼친 성운대사의 원력이 피부로 와 닿는다. 광덕 큰스님께서도 아직 계셨다면 우리나라 불교의 자리 또한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해본다. 일본 도심사찰의 경우 또한 비교해 볼만 하다고 회주스님께서 말씀하신다. 동북아에서 우리만이 유일하게 종교선진국(?)이므로 그들도 또한 한국을 연구대상을 삼을 것이라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도 주거지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송파에 자리한 불광사는 우리가 가꾸어 나가야할 많은 불법의 전법.포교도량의 중심이다. 대만의 그분은 불광산에서 첫삽을 뜨셨듯이 우리는 불광사 잠실법당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만답사를 통해 일상생활과 함께하는 것이 불국토를 만드는 길 임을 알게 되었고, 도심포교 사찰의 나아갈 방향으로 깨닿게 되었다. 불광사 중창불사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실시계획과 내부설계 그리고 공사 등 관련일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지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많은 생각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오니 대만에서의 시간보다 한시간 더 빠르게 지나갔다.. 

 마음이 바쁘다.

 

사진 자료는 많아서 별도로 보관합니다. 기회되면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서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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