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57년 6월 호법법회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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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3.06.09 조회30,294회 댓글0건본문
불기 2557년 6월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오늘은 즐겁고 행복한 호법날입니다. 우리의 본래생명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무량공덕생명임을 확인하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밖에서보면 불광식구들은 얼굴이 틀린다고 합니다. 불광사에 다니면서 늘 마하반야바라밀을, 진리를 열심히 염송하다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처럼 얼굴이 밝고 환해진다고 합니다.
불광사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며, 양산이 필요 없는 깊은 숲속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송파나루공원에서 유일하게 흙을 밟을 수 있고 돗자리를 펴고 쉴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매화밭 옆에 있습니다. 시멘트 속에서 잠자고 하루종일 시멘트만 밟고 사는 우리들로서는 이런 자연의 공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절에 오시면 길 건너 숲에 안겨 숲과 하나됨을 느끼고 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법발원
저희들은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법성 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옵니다
자리를 함께한 형제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이 6월의 호법법회 날인데 6월은 신록의 계절이라 새신 (新)자 푸를 록(綠) 자 새롭게 푸르렀다. 온통 신록으로 가득 합니다. 형제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이렇게 푸르름이 감도는 그런 한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습니다.
우리는 지금 부처님 전에 함께 모였고, 부처님 전에 함께 모였다는 것은 믿음을 함께하고 있고, 원을 공유하고 있는 그런 인연들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인연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수승하고 소중한 인연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달 호법하신분이 17분입니다. 그리고 지금 11208분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물론 호법발원하고 이사를 가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나오지 않는 분도 계시는데 그러나 적어도4~5천명은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호법발원 하신분 가운데 꾸준하게 불광에서 신행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은 그 원과 행이 크고 수승한 분들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지난달 호법하신분과 더불어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직장이나 일로 사업이나 이해관계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 관계가 끝나면 소원해지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벗들을 다 만나기 힘들고, 이렇게 세상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인연이 많은 사람인가? 역시 믿음을, 불교를 같이 믿는 믿음을 같이한 사람의 인연이 가장 소중하고 수승한 인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달에 최소한 일요법회, 호법법회, 법등모임 등 서너번은 만나는데, 한 달에 최소한 서너번은 만나는 사람이 부모도 아니고 자녀도 아니고 믿음을 같이한 사람, 이 자리에 앉은 여기 형제들 여러분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가깝고 소중하고 고맙고 큰 인연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인연을 갖고 우리 모두는 원을 발하여 마침내 이 땅이 부처님 나라가 되고 이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즐겁고 유쾌하고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고 서원을 세우고, 이렇게 봉납금을 내며 마하반야바라밀을 함께 염송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무한으로부터 얻는 방법
법회보의 “법당의 메아리”는 불광사상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불자로써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 를 그대로 적어놓은 핵심적인 사상이 법당의 메아리이고, 그리고 법당의 메아리를 있게 하는 교리적인 것이 다음에 나오는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하는 것입니다. 법당의 메아리는 불광사상의 핵심입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이것이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악에 물든 그런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이 충만한 내가 여기에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모르는데 기인하는 것, 그냥 태어나서 탐욕을 부리다가 얻었으면 보존하고 확대시키는 데에만 신경 쓰고 그렇게 하고 살았습니다. 인간이 무엇인가 모르기 때문에 자식에게 한번도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이 무언가? 내가 무언가? 왜사는 것일까? --- 인간이 흙덩어리인가? 돌덩어리인가? 금덩어리인가? 이것을 분명히 밝혀야합니다. 우리는 불자이면서 불교를 믿고 신행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 불교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네가 무엇인가? 하는 데에 답이 있습니다.
너는 금덩어리다, 너는 마하반야바라밀 한량없는 진리생명을 그대로 이어받은 신령스러운존재, 모든 기쁨과 모든 환희심을 모든 능력을 다 가진 그런 존재다 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렇게 금덩어리로 살면 됩니다. 그러나 내가 금덩어리라는 말이 안되는 것 같고, 금덩어리가 아닌 것처럼 생각이 들 겁니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일단 우리는 여기서 심술이 있건 말건, 본래 내 생명은 금덩어리이고 모든 공덕을 다 가지고 있는 부처님생명이라는 그 사실을 믿는 것. 그것이 불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두 가지 읽은 것이 있는데 첫 번째는 나쁜 것 거짓된 것 허망한 것 장애된 것 다 끊어버리는 것 즉 반야바라밀은 나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 말이 있고, 두 번째 이 모든 것을 끊어버리니까 진리의 본래생명 내 생명이 반야바라밀 이란 것을 알게 된다. 내 생명이 한량없는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이라고 그렇게 법문을 하는 그런 도량은 이 불광사 밖에 없습니다. 다른데서는 아무리 들을래야 들을 수가 없습니다. 내 생명이 금덩어리 부처님공덕과 똑 같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여러분은 깨달아야합니다. 아! 참 행운을 만났다는 이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저도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서 이 반야바라밀을 만났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처음에는 공을 만났고 나중에는 공이 반야바라밀이고, 반야바라밀이 공이고, 반야바라밀이 부처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가? 민족을 구했는가? 어떤 복을 지어 이 반야바라밀을 만났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통은 수행을 해서 부처를 이루는데 한량없는 시간이 경과해야한다. 인간은 범부고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두 참회하고 천년만년을 털어내야 마침내 부처가 된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야불교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너가 본래 부처다.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임을 타고난 것이다. 다만 그것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눈을 뜨면 된다. 수행을 했던 안했던 지금 이 자리에서 눈을 뜨면 그대로 부처님생명이다. 그리고 부처로 살면 된다. 반야바라밀을 염송하는 것은 내가 부처임을 확인해가는 것이고, 눈이 떠진 상태에 있는 것이다. 눈이 떠진 상태에서 나를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무언가? 그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반야바라밀염송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반야? 참선이 더 수승한 것인데.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선을 해서 밝혀진 사실이 내생명이 바로 마하반야바라밀 부처구나! 이것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때 반야에 눈이 열렸다 하는 겁니다.
우리는 내가 지금 번뇌가 본래 없는, 업보중생이 아닌 한량없는 공덕이 가득 차 있는 삶이라는 것을 입으로 그대로 읊어내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염하는 것이고, 생각생각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임을 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은 관세음보살이 열쇠를 주는 것이 아니고, 관세음보살이 가지고 있는 한량없는 공덕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관세음보살 기도법이다. 그러면 마하반야바라밀기도란 무엇인가? 내 생각생각 속에 마하반야바라밀 공덕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차를 타든,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그냥 내 생각에 내가 한량없는 무량공덕생명임을 놓지 않으면 그때는 춤을 추어도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조석으로 예불하고 사시에 공양 올리고, 신도들도 일과정진을 지키라고 합니다. 금강경과 반야심경 독송하고 발원문하고 기도하는 것은 내가 지금 부처님 무량한 공덕생명속에 놓여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불이고 그것이 기도입니다. 내 생명 무량공덕생명임을 놓지 않고, 잊지 않고 있으면 그것이 기도입니다. 모든 종교의 기도라는 것은 이 도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치를 알고 나면 아주 쉽습니다.
일체지혜 무한공덕 반야바라밀을 염할 때 그 자리가 반야바라밀이다.--- 내 생명이 한량없는 공덕생명이 있는 믿음을 아무런 의심 없이 철저해야만 자연스러운 공덕이 나타난다. 이것을 모르고 업보중생 이라하고, 벌을 받아야 하는 그런 존재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런 사람이 된다. 이것이 일체유심조다. 내 마음에 있는 것이 현실로 나타나 내 환경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 있는 것이 나타난 것이다. 그 나타날 때, 내 마음을 반야바라밀로 꽉 잡고 있어야한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삼라만상이 전부 공했다 비었다. 공이란 무언가? 공(空)이라는 말은 비었다는 뜻이다. ‘하늘이 비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반야심경의 공은 무(無)다.-----공이 반야바라밀이다. 이 공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텅 비었다는 것은 죄가 본래 없다. 그럼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부처님이다. 한량없는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이다.
(1)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다섯 가지 모임은 모두가 공하였음을 분명히 보고 일체의 고액을 건넜다.<반야심경>
이것이 불교수행의 근본입니다. 우리가 현재 불교를 믿고 수행을 한다는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위해 절에 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내 삶에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자재보살이 만약 색. 수. 상. 행. 식 전부 공한 것을, 고액을 건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일단 내 생명이 공이란 것을 깨닫는 것이고, 공이 부처님이고, 공이 마하반야바라밀 입니다.
공이 한량없는 공덕이 꽉 찬 것이다. 원래 입장에는 공이 아닌 불공처입니다. 이 텅 빈 공 속에는 온갖 것이 다 있다. 지금 허공에서 모든 것이 다 있다. 이것을 지금 내어 쓰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에서 저 나쁜 것을 제외하면
신록을 내어 쓰는 것이고
달빛을 내어 쓰는 것이고
별빛을 내어 쓰는 것입니다.
지금 이자리에서 내가 부처님의 공덕을 가졌음을 눈 떠야합니다.
눈을 뜨면 기뻐지고, 환희심이 나고, 즐거워지고, 굳세어져서 매사에 힘차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 주변에 모든 생명이, 부처님의 자비공덕이 나를 온통 감싸고 있구나! 마하반야바라밀을 일심으로 해야 합니다. 일심으로 염할 때 부처님의 공덕이 확 다가옴을 느낄것입니다.
관자재보살의 이것이 진실 된 말임을 알게 된다. 눈을 뜨고 보면 이 세상이 극락세상이다. 극락세상을 알아챘을 때 극락세상이 나타난다. 마하반야바라밀 사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이 지구상에서 이루어야지 죽어서 극락 그것 믿지 마세요.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 현재 불국토에 살고 있어요. 한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란 말이 있듯이, 한번 불국토는 영원한 불국토라 지금부터 2500여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셨으니 한번 불국토는 영원한 불국토 입니다.
우리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일심 염송하여 확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즐겁고 환희롭고 굳세고 강해지는 그런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부디 일심으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고 정진해서 하루빨리 내가 사는 세계가 부처님 나라구나! 하는데 눈을 뜨시길 바라면서 마치겠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