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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7년 7월 호법법회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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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불광사 작성일2013.07.07 조회30,5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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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7년 7월 호법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오늘은 호법법회날 하늘이 맑고 햇살이 밝은 좋은 날씨입니다.

 덕분에 호법법문을 들으러 오시는 보살님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볍습니다. 어제는 시원한 소나기가 와서 좋고 오늘은 맑게 개어서 좋은날~ 거룩하신 스님께 우리의 본래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임을 확인하는 거룩하신 법문을 들어서 더욱 좋은날입니다. 오늘 법문은 내일 백중기도 입재 날을 맞이하여 불광사 선덕 혜담스님께서 “불자는 기도로써 성장한다”에 대해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호법발원

저희들은 이 땅에 감로법을 널리 펴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겨레와 국토를

법성 광명으로 빛낼 것을 굳게 서원하옵니다.

 

 

 

<법문요약>

 날씨도 더운데 이렇게 호법발원법회에 참석하여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호법이란 원래 부처님 법을 수호한다. 혹은 부처님 법을 두호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호법발원은 발심가운데 최상의 발심이고 수행 가운데 마지막 가는 단계의 수행이라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호법발원한 불자들은 부처님 정법이 영원히 머물며, 모든 사람이 부처님 품에서 청정을 이루고 평화와 행복을 이루고 마침내 이 세계를 부처님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러한 지고한 원을 발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최상의 수행을 하는 분들이라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불자들은 마지막 원이 성불이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들은 성불한다는 것은 부처가 된다는 것을 아주 멀리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불이란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삶 자체를 이루는 겁니다. 모든 장애가 사라지고 내가 원하는바 건강과 재물, 명예가 내 생각대로 되고 즐겁게 하루하루 산다는 이것을 내 것으로 하는 바를 믿는 것입니다.

 성불을 하기 위해서 내 삶 자체가 장애가 없고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즉 심일자가 필요합니다.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부처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부처님을 믿는다함은 인격적인 부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2600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인류역사상의 많은 모범이 되시고 가장 완벽한 인격을 갖춘 어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경에서는 부처님은 법이고, 법신이고, 진리자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은 법이 부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법불일여”, 법과 석가모니부처님은 한 몸이다. 이런 믿음이 서야 부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이 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믿음은 부처님은 진리다. 하는 것에 눈을 떠야합니다. 진리에는 원래 형상이 없고, 형상을 넘어선 진리이신 부처님 그걸 법이라고 합니다. 그 부처님을 믿는 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진리이신 부처님, 법인 부처님을 볼 수가 없지만, 그러나 그 믿음이 확실히 서면 온 몸으로 부처님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 부처님을 느끼고 볼 수 있을 때 우리들은 바른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내일은 계사년 백중을 49일 앞두고 입재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불자는 기도로써 성장한다.” 라는 제목으로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불자들의 많은 특권 가운데에서도 가장 으뜸 되는 특권은 기도를 할 수 있고, 기도로써 모든 필요한 것을 이루고, 성취한다. 이것이 불자의 특권이다. 그러나 말은 같아도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요. 신을 믿는 사람들의 기도 개념은 신이라는 여호아라는 그런 절대의 인격체를 두고, 그 인격체에게 돈도 내고, 자꾸 매달리면은 그 인격체가 선물을 하나 던져준다. 라는 것을 기도라고 말하는 겁니다. 불자 가운데에서도 부처님을 인격체로 보고 계속 매달리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자의 특권인 불자의 기도와는 다른 겁니다.

 

그럼 불자의 기도는 어떤 것인가? <내 생명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임을 믿는 반야바라밀 기도가 바른 기도입니다. 내가 범부가 아니고 한량없는 공덕에 놓여 있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믿고 꺼내어 쓰자. 하는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의 기도이고, 불자의 기도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열심히 염송해서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생명이, 병이 없고, 고가 없는 모든 것이 이루어져 있는 그런 생명이라는데, 눈을 떠가는 것이 반야바라밀을 염하는 사람입니다.

 

 백중 49일 지장기도를 하는데 지장보살을 자꾸 염하고 매달리면 지장보살이 우리 부모님의 영가를 극락세계에 보내주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은 형상이 아니고 진리자체입니다. 내 스스로가 모든 공덕을 지닌 진리생명임에 눈을 뜨는 것을 기도라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생명 자체는 금덩어리라는 것에 착안을 하고, 어둠이 왔을 때 어둠을 보지 않고 바로 밝음을 보는 것이다. 우리 바라밀기도를 하는 형제들은 어두움이 왔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어둠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마음을 바로 반야바라밀로 돌이키는 겁니다. 밝음의 등불을 바로 켜는 거라. 그러면 내가 밝아지고, 주변이 밝아지는 겁니다.

 그게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와서 중생들에게 일러준, 다른 말로 일체유심조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 마음이 나타난 바다. 그러나 기쁘다. 짜증이 났다.하는 그런 마음은 마음의 그림자이고, 그 생각을 넘어선 삼라만상을 창조해 내는, 마치 창조신과 같은 그게 반야바라밀이에요. 그런데 그 마음이 나한테 있어요. 다만 눈을 뜨지 못해 안 보이는 거야, 노력하다 보면은 신기하게 그 마음이 보여, 그게 눈을 뜨는 겁니다. 더 깊게 깊게 계속 파고 들어가면 저 밑바닥에 이것이 나와요.

 

 그래서 반야심경에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아제아제는 간다간다 이 육체를 넘어서는 육체를 만든 근본이 나온다. 그게 반야바라밀이라, 그기에서는 내가 지금 원하는바 전부 이루어지는 거야.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할 때 그기까지 가야합니다. 이것은 공짜가 아니고 열심히 했을 때 그 경계까지 가요. 그런 경계가 나에게 오게 되고 눈이 떠지면서 아! 이 육체가 내가 아니고, 완벽한 지혜의 자리, 진리의 자리에 가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하늘에 그름이 끼어 있어 그것을 벗겨 내면은 푸른 하늘이 나타나듯이 내 마음이 나타나, 그 자리는 한없이 평화롭고 기쁘고 즐겁다는 겁니다. 이 도리를 알아서 우리들이 노력하는 것이 바로 기도라고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 부처님의 무한공덕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라는 말이 나옵니다. 부처님 무한공덕에 대한 철저한 신뢰 이것이 곧 부처님의 자리입니다. 이 실상의 긍정의 자리를 알고 우리는 믿어야 됩니다. 주로 이런 말들이 불자는 기도로써 성장한다는 내용입니다.

 

<호법월보에 1번부터 3번까지 다같이 합송>

 기도에 대한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합송한 이 말들이 기도에 대한 완벽한 표현이고, 대한민국에 지금 2천만 불자가 있지만, 이 도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얼마나 다행을 얻은 사람인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법을 내가 들었다. 이거야말로 선택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생각 생각에 이 생각을 놓지 않을 때 우리들은 감사를 알게 됩니다. 그럼 감사하다 감사하다 하고 있으면, 감사한 일들이 자꾸 생기게 됩니다.

 

 *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

 ‘재가 불자의 길’이라 되어 있는데, 이것은 불자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 믿음이 근본인데, 불 법 승 삼보를 믿는 것이 바로 불자의 믿음의 기본이고, 이 믿음에 의해 힘이 나옵니다. 진리이신 부처님,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믿는 것이고, 그 믿는 것이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그 믿음에 의해 행이 나타나는 것이고, 제일 첫째 행이 계행을 지킨다는 것이고, 그 전에 삼보 가운데서 스님들을 믿는다는 말이 있는데, 근래에 학자들 가운데서 재가신도도 승가라는 말이 있는데, 재가 신도는 승가라는 말에 포함이 안 됩니다. 승가는 원래 출가승이고, 출가한 스님들은 바로 부처님이 말씀한 진리를 자기 것으로 삼고 생활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재가 신도로서도 부처님 말씀을 진리로 삼고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분들은 재가 신도입니다.

 

 스님들 가운데 좀 잘못된 스님들도 있지만, 조선시대 500년 동안 유교가 득세하고 불교를 말살하려해도 불교가 유지된 것은 무식하고 못 배운 그런 스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혹 잘못된 승려들이 있을지라도 그런 스님들을 포함해서 스님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세대에서 다음세대로 불교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님들 한사람 한사람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행 가운데서 제일 먼저인 계행을 지킨다는 것은 살. 도. 음. 망. 주 이렇게 다섯가지를 말하는데, 그것은 계행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근본은 무엇인가? 근본은 두가지인데 첫째는 살생하지 말라. 자비심을 행하라.

불교는 자비입니다. 모든 사람은 사랑이 근본인데, 그 자비심이 뭐냐?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모기나 바퀴벌레를 죽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다른 동물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한다면 불자라고 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중요한 것이 자비심이고 비심입니다.

 

 두 번째 중요한 것이 정진입니다. 힘쓰고 노력하는 겁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이렇게 노력하는 것인데, 그래서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노력을 하며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정진이 아니고,

 불교의 정진은 깨닫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인데, 아침에 일과기도를 열심히 지키자. 반야심경을 읽고 마하반야바라밀 열심히 염송 했을 때, 어느 날 기쁨이 확 오는 것이지, 말만 그래서는 안 되고, 불교 책을 열심히 뒤져봐도, 본래부처라는 기쁨이 안 옵니다. 그래서 내가 노력함에 가능하지, 기도에 대해서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가슴이 후련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기쁨이 솟지는 않아, 그 기쁨이 솟는 것은 마하반야바라밀을 했을 때 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계목을 지키는데 있어서 내가 자비한 가운데 정진하는 것, 내 소리를 내 귀로 그 마하반야바라밀을 들을 수 있어야하고, 말의 작용이 있으니까, 그럴 때 우리의 삶은 밝아지는 것이고 내가 기뻐지고 주변이 기뻐지는 그런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특히 이제 우리 조상님들을 천도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이 지장보살이 되었을 때, 지장보살이 된 내가 지금 현재 지장기도를 해서 우리 조상들이 좋은 곳에 태어나겠다 했을 때, 그 마음이 가는 것이지 지장보살이 조상님들을 극락세계로 들여주는 게 아니고 내가 그리 만들어야해. 내가 지장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번 백중49일기도를 그 자세로 해서, 모두가 성취하는 불광형제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은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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